인물

獨 회사 '백지수표' 제안도 받았다…12시간 칼 가는 부자 [장人들]

해암도 2021. 6. 5. 14:36

전만배(64), 전종렬(32)씨는 대장장이 부자다. 부친 전씨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대장장이 일을 했다. 벌써 4대째. 그 역사가 120년의 세월을 훌쩍 넘는다.  

 

(장)진영이 만난 사람(人), 4대째 대장장이 부자 전만배, 전종렬씨

 

전만배, 전종렬씨는 4대째 이어지는 대장장이 부자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아들은 노량진에서 각각 만났다. 부자가 함께 할 수 없어 두 장의 사진을 합성해 같이 자리하게했다.

 
아버지는 자연스레 대장장이가 됐다. 어릴 적부터 대장간을 놀이터 삼았던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50년 넘게 쇠를 달궈 연장을 만들었다. 동물 사육사를 꿈꿨던 아들은 버티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며 “이러다 아버지의 유산이 사라지겠다”는 생각에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4대째 대장장이가 탄생했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칼을 만들고 아들은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칼 연마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함께하지 못한 관계로 아버지와 아들을 각각 만났다.
 

아버지의 이야기

경력 50년차 대장장이 전만배씨가 화덕앞에 섰다.

 
“중학교도 안 가고 열네 살 때 망치를 들었지. 꼬맹이 시절부터 풀무질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겠어”
 
아침 먹기 두세 시간 전부터 일을 시작해 해가 넘어가고도 한참 후에 일을 마쳤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남들은 한 우물 파는 거 대단하고 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목적이었어”

전만배씨가 대전에 위치한 한밭대장간에서 칼을 망치로 두드리며 제작하고 있다.

 
육체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몸 쓴다고 하면 못 배우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겼지”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농사일이 기계화되면서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도 줄었다.

 

“돈벌이가 줄어들면서 혼자 잘할 수 있는걸 찾아야 했지. 그때 칼 하나만 하기로 선택한 거야” 칼 연마를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비싼 칼을 들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선택을 확신했다. 독일의 한 회사로부터는 ‘백지수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전만배씨가 대전에 위치한 한밭대장간에서 칼을 망치로 두드리며 제작하고 있다.

 
상처 되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 현장 학습차 동행한 부모에게 “너희들 말 안 듣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여기 아저씨처럼 이런 일밖에 못 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 정중하게 부탁하고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그래야 돈 받았을 때 떳떳해” 받는 것 이상의 실력으로 돌려주기. 그의 운영 철학이다.
 
“아들은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했어”

 

전만배, 전종렬씨는 4대째 이어지는 대장장이 부자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아들은 노량진에서 각각 만났다. 부자가 함께 할 수 없어 두 장의 사진을 합성해 같이 자리하게했다.

 
대를 잇겠다는 건 고마웠지만 고된 삶이 펼쳐질 걸 알기에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내가 하는 그대로를 습득하게 했지” 대전 본점(한밭대장간)과 서울 지점(한칼)을 오가며 10년을 함께했다. “한 번도 말해준 적은 없는데 칼 연마에 있어서는 이미 나를 넘어섰어. 인정해” 이후 서울 지점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대전으로 내려와 칼 제작에 몰두했다.  
 
그는 ‘고급 칼 국산화’로 제2의 전성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한칼에서 출시한 각종 칼들.

 
“물러지지 않고 오래 쓰는 칼을 만들고 싶었어. 좋은 칼 써보고, 재료 찾고, 공부하면서 17년을 매달렸어” 일본산 VG-10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해 30여 종의 칼을 완성했다. “요리사들이 쓰다가 몇 달 후에 들고 왔는데 칼이 그대로인 거야. 뭐가 불편해서 안 썼냐고 물어봤더니 계속 썼다고 하더라고. 나도 못 알아본 거지. 예상을 뛰어넘은 칼이 나온 거 같아”

전종렬씨가 제자 황덕환씨와 함께 칼을 제작하고 있다.

 

경력 50년차 대장장이 전만배씨가 자신이 만든 브랜드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그의 곁은 제자 황덕환(30)씨가 지키고 있다. 함께 쇠를 달구고 두드리며 칼을 만들고 있다. “제자 하나 제대로 키우려면 앞으로 10년 동안 같이 일하며 가르쳐야 할 거 같아. 이후에는 아들과 제자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뤄줬으면 좋겠어. 세계를 무대로 우리의 기술을 보여주고, 그에 걸맞은 대우받으면서 일했으면 해”
 

아들의 이야기

 
“아버지 안 계시는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그렇게 10년. “이제서야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 것 같아요”
 

전종렬씨는 앞으로도 같은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칼 연마의 장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주차장 3층 A-19 번 기둥 뒤. 날카로운 쇳소리가 가득한 그곳에서 아들 전종렬씨를 만났다. “처음엔 멀리서 보고 아버지가 없으면 발길을 돌리던 분들도 많았죠. 얼마 전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들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전종렬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씨 집안의 4대째 대장장이가 됐다.

 
아버지는 자상하게 아들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만남은 일주일에 한 번뿐. 잘 연마된 칼 하나 던져주면 같은 모양이 나오도록 스스로 연습했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노량진에서 새벽 3시부터 매일 열두 시간씩 칼을 갈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손님을 맞았다. “아버지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세요. 저는 최대한 많이 들어주려 해요. 작은 요구사항 하나도 놓치지 않았죠. 그 센스가 우리 둘의 차이점인 거 같아요”

연마에 사용되는 연마용 스톤은 전만배씨가 직접 개발한 것이다.

 
 

연마를 마친 칼들. 날이 매끈하다.

 
그는 하루 평균 100여 자루의 칼을 연마한다. 각 지역의 횟집, 정육점, 일식집과 수산 시장 내 가게들, 조리 전공 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처음 찾으면 칼 한 자루에 12000원 이상을 받는다(두 번째부터는 3300원). “칼 연마만큼은 자신 있기에 정한 가격입니다. 칼의 값어치에 맞게 대우해 주는 거죠”  

전종렬씨의 작업장은 노량진 수산시장 주차장 3층 A-19번 기둥 뒤에 위치한다.

 
“칼 연마에 있어서 '원조'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는 10년 단위의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10년 차에 기술자 소리를 들었으니, 20년 차에는 장인, 30년 차에는 원조로 남지 않을까요”  

 

추천영상 더보기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