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장 악한 종이자 가장 선한 종이다"

해암도 2020. 12. 10. 05:11

리처드 랭엄의 인간 본성 탐구서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독일의 정치가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편의를 위해 수백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반려견 블론디가 죽었을 때 깊은 슬픔에 잠겼을 정도로 동물 학대 혐오자였다. 비서였던 트라우들 융게는 히틀러가 쾌활하고 친절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캄보디아의 지도자 폴 포트 역시 국민의 4분의 1을 죽이는 폭압 정책을 폈지만, 지인들한테는 부드럽고 친절한 프랑스 역사 선생님이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또 어떠했던가. 18개월 동안 교도소에 있으면서 항상 조용했고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지 않은 모범수였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렇듯 인간은 선과 악이 조합된 생명체다. 수십만 년 동안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음식을 나눠 먹고, 분업을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특히 빙하기의 우리 조상들은 여러 면에서 관대했고 평화로웠다. 그러면서도 나치처럼 잔인무도하게 약탈, 강간, 고문, 처형 등의 숱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미덕과 악덕에 대해 동일한 성향을 보여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루소의 성선설과 홉스의 성악설은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반쪽짜리 진리였다. 모든 사람은 선하면서도 악한 잠재력을 지닌 두 얼굴의 생명체다. 하기에 따라 한없이 선할 수도 있고, 한없이 악할 수도 있는 모순적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리처드 랭엄 교수는 저서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으로 인간 본성의 수수께끼를 진화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역설적인 인간 본성을 탐구키 위해 고고학, 고생물학, 심리학, 생화학, 신경생리학, 뇌과학, 해부학, 근대 사회사상, 형법학 등을 넘나들며 우리 인간의 어제와 오늘을 오간다.

책의 미덕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이분법적 입장의 한쪽에 서는 대신에 인간은 선한 동시에 악하다는 본성의 역설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자기 길들이기', '반응적 공격', '주도적 공격' 같은 흥미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폭력과 이타주의, 전쟁과 협력, 사형과 도덕 등의 주제에 다가간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할 때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낮은 수준의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전쟁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높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나, 한번 시작되면 침팬지나 다른 영장류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른 속도로 서로를 마구 죽인다.

이 같은 모순적 불일치를 '선함의 역설'이라고 명명한 저자는 공격의 두 가지를 전술한 바처럼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이라는 용어로 설명해나간다. 반응적 공격은 어떤 자극이나 위협에 대한 즉각적이면서 감정적인 반응으로, 화를 버럭 내거나 몰아세우는 '화끈한' 형태인 반면, 주도적 공격은 특정 목적을 달성키 위한 목표 지향적 공격으로, 정교하고 계획적인 '냉정한' 형태다.

인간은 아주 특이하게도 반응적 공격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 사회적 관용을 베풀지만, 동시에 주도적 공격성이 높은 성향을 지니고 있어 악하고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더없이 관대하고 때로는 한없이 사악한 두 얼굴의 존재인 것이다.

'길들이기'는 특정 동물종에서 공격성이 줄어들고 참을성이 증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에 더해 '자기 길들이기'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야생동물의 공격성이 줄어드는 등의 '행동 변화'와 두개골 크기 감소 등의 '신체 변화'를 나타낸다.

저자는 인간 또한 이런 길들이기 과정을 거쳤다고 말한다.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사회화됐으며, 스스로 덜 공격적인 방향으로 동물적 본성을 억제해왔다는 얘기다. 과거에 우리 조상은 쉽게 이성을 잃었고, 빠르게 서로를 위협하며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상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관용성을 보여준다. 자기 길들이기의 힘이다.

랭엄 교수는 과거에 늑대와 같았던 우리 조상의 행동이 현재 인류에 이르러 개와 같이 변했다며 이런 길들이기 과정에서 우리는 해부학적 변화를 겪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길들이기 된 인간이 반응적 공격을 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인류가 반응적 공격성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형이었다고 한다. 공격적이고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사형을 통해 사라지면서 길들이기가 이뤄졌다는 것. 사형은 수렵 채집 사회, 농업 혁명, 국가 발생을 통해 제도화돼 인간 사회 안에서 이타주의, 협력, 친사회성, 질서, 도덕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공동체 내에서 반응적 공격을 많이 사용하는 침팬지와 달리, 인간은 반응적 공격을 억제한 반면에 이처럼 주도적 공격은 높게 유지했다.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주도적 공격성은 '연합'이라는 형태로 계속 이어져 왔다. 이런 주도적 연합 공격은 처형, 전쟁, 학살, 노예제도, 약탈, 고문, 숙청 등과 같은 권력 남용을 낳았는데, 특히 전쟁은 인간이 보여주는 주도적 공격성의 가장 극단적인 예다.

저자는 "맹목적 낙관론은 냉담한 비관론만큼 어리석은 것"이라며 우리가 본성적으로 '천사' 같고 '악마' 같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근거로 보여준다. 나아가 이를 염두에 둘 때 우리 미래에 대한 진정한 숙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중요한 목표는 협력의 장려라기보다 조직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유 옮김. 480쪽. 2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입력 2020.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