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흉악범들의 침입을 원천봉쇄해드립니다"

해암도 2013. 2. 15. 06:55

 

가스관 덮개, 20만원만 들이면 털릴 걱정 없는데…

[공동주택 설치 10% 안돼… 가스배관 이용 '고층털이' 잇따라]
"설마 우리집에 도둑 들까" 입주자들 대부분 무관심
"대피에 방해" 지적 나오자 서울 강서구, 의무화했다 폐지
강화군 등 일부 지자체 의무화 "비용 부담 적지만 예방 효과 커"
지난 5일 오후 6시 45분쯤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경남 창원시의 한 고층 아파트에 침입해 진주 반지와 금목걸이 등 귀금속을 털어 달아났다. 범인은 이 아파트에서만 총 4가구를 털었다. 모두 10층 이상에 있었지만, 범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에겐 '사다리'와 같은 가스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이 양손으로 가스배관을 붙잡고 1개층 위로 올라가는 데는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최근 가스배관을 이용해 고층아파트에 침입하는 이른바 '고층털이범'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고층털이범들의 '먹잇감'은 도처에 널려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공동주택이 일반화된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고층털이범들이 저지른 범행은 지난 1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경우만 400여건에 이른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 가스관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방범용 가스 배관 덮개’가 설치돼 있다. 왼쪽 위의 작은 사진은 지난 6일 가스배관을 타고 경남 창원의 21층 아파트를 올라가는 용의자가 CCTV에 잡힌 모습. /이명원 기자
고층털이범들이 활개 치는 바람에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주택과 아파트는 고층털이범들이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스배관과 아파트 외벽 사이에 철판을 3면으로 덮거나, 윤활유를 바르는 자구책을 쓰고 있다. 뾰족한 철심을 가스 배관 주위에 설치해 범인이 가스배관에 오르는 것을 막는 곳도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가스배관 덮개'를 입력하면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만 수십곳이 검색된다. 이 업체들은 "시각적 위협을 주고, 범인이 신변의 위험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흉악범들의 침입을 원천봉쇄해드립니다" 등의 문구로 광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 층에 4가구씩 있는 아파트의 경우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의 설치 비용은 20만~30만원 정도다. 1.5~2m 정도에서 2층 높이까지만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를 설치하기 때문에 층수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입장에서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를 설치한 곳에 침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2층까지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데, 주민들은 '설마 우리집에 도둑이 들까' 하는 생각에 실제 설치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다세대 빌라의 가스 배관에 설치된 ‘철제 가시옷’.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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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과 달리 인천광역시 강화군청은 지난해 12월 건축 허가조건에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 설치를 포함시켜 설치를 의무화했다. 강화군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지만, 군 차원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방범용 가스배관 덮개 설치를 의무화했다"면서 "이후 가스배관을 이용한 절도, 성폭행 등의 범죄 예방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201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