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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연남수제비 … 강동진 사장님, 완판 비결 뭡니까

해암도 2013. 9. 23. 06:43

 

'하루 120인분만' 분당 연남수제비 … 강동진 사장님, 완판 비결 뭡니까

일수로 버티며 쓴 1000일의 요리 일지, 수제비 살렸다

연남수제비 강동진 사장이 최고급 천일염을 넣어 직접 만든 수제비 반죽을 잡아당겨 보이고 있다. 매일 아침 4시간 걸려 만드는 ‘귀한’ 반죽이지만 어린 손님이 오면 갖고 놀라고 뚝 잘라준다. 김상선 기자


자본금 1500만원에 맞추려 수제비했죠. 요리법은 동네 종업원에게 대충 배워 주먹구구로 시작하니 월 매출 100만원 왜 안될까, 일지 쓰며 나만의 비법 완성. 오후 2시에 다 팔려 문 닫아도 할 수 없다. 품절 마케팅? 제맛 내는 최대 분량일 뿐 식당, 돈 있어도 2년은 직접 해봐야죠. 주인이 맛을 모르는데 성공하겠나요

한 그릇에 6000원인 ‘하루 120인분만 파는 수제비’와 매일 담그는 겉절이(위 사진). 가게에 들어왔다가 “벌써 다 팔렸느냐”며 실망하며 돌아서는 손님이 많아지자 문 앞에 거는 안내판을 주문 제작했다(아래 사진).

 

갑자기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가장의 ‘새 출발’은 대개 요식업이다. “먹는 장사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와 체념이 뒤섞인 결과다. 6년 전, 라면이나 겨우 끓일 줄 알던 강동진(58) 사장이 빚을 끌어 모아 경기도 분당에 33㎡(10평)짜리 ‘연남수제비’를 차린 것도 같은 이유다.

 그리고 그 역시 ‘묻지마 식당 창업’을 택한 다른 수많은 가장들처럼 실패의 길을 걸었다. 한 달 매출 100만원, 일숫돈을 끌어다 써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3년을 그렇게 고생했다. 그런데 요즘은 스무 명 겨우 앉을 수 있는 가게 문 앞에 점심시간마다 긴 줄을 선다. 비 오는 토요일이면 오후 2시에도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기 일쑤다. 인터넷 맛집으로도 오르내린다. 매출은 30배쯤 뛰었다.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평범한 가장의 좌충우돌 식당 창업기를 강 사장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사무실을 두고 부동산 투자업을 20년 넘게 했어요. 사기 당해서 망했죠. 자본금 0원이었어요. 신용불량이라 은행 대출도 안 돼서 알음알음으로 겨우 1500만원 빚을 냈어요. 수제비 해 먹어본 적도 없었지만 돈이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대치동 상가에 수제비집이 있었는데 거기 종업원에게 치킨 대접하며 대충 만드는 법을 배웠죠. 국물 내는 멸치는 세 번 우려라, 다시마·무·양파·대파 뿌리 들어간다는 정도였어요. 그 가게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부동산은 잘 아니까 보증금 1000만원에 목 좋은 곳으로 구했어요. 여기가 미금역에서 5분 거리인데 분당 아무데서나 쉽게 올 수 있는 데다가 아파트 몰려 있고 사거리도 가깝고…. 그런데 수제비 맛이 매일 달라요. 황당하더라고요.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계량까지 해가면서 매번 똑같이 해도 맛은 들쭉날쭉하고…. 장사가 안 됐죠, 당연히 안 됐죠. 한 3년은 먹고 살기 힘들 정도였어요.

 

 

계속 고민하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맛집도 가보고, 시장 재료상들도 찾아다니고. 나중에야 멸치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1주일에 한 번씩 농협 마트에 가서 멸치를 쓸 만큼만 사왔거든요. 그러다 보니 멸치 상태가 매번 달랐던 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였던 거죠. 그리고 요리란 게 종합예술이고, 맛은 조립식이 아니더라고요. 재료 하나가 빠지면 딱 그만큼의 맛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확 바뀌어버려요. 사실 가게 처음 열 때부터 매일 일지를 썼어요. 오늘은 무슨 재료를 얼마만큼 넣어봤는데 이런 맛이 났다고. 무 한 조각만 더 들어가도 국물 맛이 다르더라고요. 멸치 육수 끓이는 것도 1분 단위로 쓴 맛이 결정되고요. 일지는 요즘도 써요. 지금까지 한 7권쯤 돼요. 보고 싶다고요? 집에 모셔놨어요, 하하.


 지금은 ‘나만의 레시피’가 있죠. 육수도 수천 번 해보고, 겉절이도 수천 번 해봤어요. 다 일지에 기록했고요. 계속 고쳐가면서 3년쯤 걸렸나 보네요. 레시피가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와 손님이 몰리기 시작한 시기가 비슷해요.

 

10월에 잡히는 오사리멸치(햇멸치)만 써요. 멸치만 30년 경매한 분께 배웠지요. 1년치를 섭씨 영하 30도 이하로 보관해 놓은 걸 매번 공수해서 써요. 국물 한 번에 2300g을 보자기에 넣어 세 번 우려요. 첫 번째는 물 양을 반만 넣고 찬물부터 끓기까지 17분, 끓고 나서 8분 우리고, 다시 나머지 물을 붓고 끓이는 식인데 항상 타이머를 켜놓아요.


 예, 120인분 레시피예요. 하루 120인분만 만드니까요.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요. 오후 4시 이후엔 전화해보고 오셔야 돼요. 토요일은 서울에서도 많이 오시기 때문에 특별히 170인분을 만드는데도 대개 오후 3시면 끝나요. ‘품절 마케팅’? 그런 건 아니고요.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어 보니 이 규모로 혼자서 잘 만들 수 있는 한계가 120인분이더라고요. 육수·반죽·겉절이까지 매일 새로 만드니까 미리 해둘 수가 없어요. 사실 처음 1년은 잔치국수도 했었어요. 멸치국물 냈던 게 남으면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그걸로 국수를 만들었죠. 그런데 하루만 지나도 국물 맛이 좀 덜하더라고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요. 6시쯤에 가게에 나오죠. 이때부터 겉절이 배추 절이고, 육수 우리고, 반죽하고…. 점심 손님이 끝나는 오후 2시까지는 전쟁이에요. 의자 한 번 앉을 시간, 말 한마디 할 틈 없어요. 오후 3시쯤부터 한숨 돌리죠. 일찍 문 닫으니까 좋겠다고요? 재료 주문하고 레시피 연구해야지요. 놀러 못 다녀요. 매일 푹 쉬지 않으면 다음날 집중해서 일할 수가 없어요.

 나처럼 식당 차리려면? 음, 우선 부부가 함께 2년은 할 수 있는 자세와 각오가 있어야죠. 좋은 직장 있다가 나왔으니까, 나는 돈이 좀 있으니까 남을 시켜서 해야겠다? 그럼 안 하는 게 나아요. 주인이 자기가 파는 음식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맛이 좋아지겠어요. 몇 년 해봐도 바뀌는 게 없으니까 그만둬버리는 거지요. 직접 힘든 일을 해보지 않으면 안 돼요. 부부가 해야 하는 이유? 일단 인건비가 절약되잖아요. 아내(47)와 둘이서만 쭉 하다가 이제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파·호박 써는 아주머니, 서빙하는 청년 이렇게 두 사람 써요.

 나한테도 체인점 내자고 많이들 찾아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돈 많이 벌겠지. 하지만 대량으로 국물 낸 걸 가져다가 얼려놓고 쓰는 게 맛이 나겠느냐고요. 국물 색깔 보면서 순간순간 불 조절 해야 하는데.

 사실 우리 수제비 맛은 지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아직도 공부하면서 재료를 계속 더 좋은 걸로 바꿔가요. 밀가루도 전문점에서 받고, 소금도 비싼 천일염을 써요. 액젓도 좋은 걸로 바꿨고. 고춧가루도 믿을 만한 울산 재배자한테서 공수하고. 이익이야 줄어들죠. 재료비 따지면 안 돼요. 가장 맛있는 것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해요. 내년쯤에 가격은 7000원으로 1000원 올리려고요.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맛만 있으면 손님이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더라고요.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일부러 찾아올 만큼 맛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국물은 멸치가 생명 … 보관비 들어도 '10월 오사리멸치'만 1년치 구입

외관은 정말 소박함 그 자체다. 경기도 분당 미금역 뒤편에 있는 연남수제비에 갔을 때 느낀 첫인상. 말 그대로 그냥 동네 밥집이다. 위치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알기 힘든 곳에 있다. 그런데도 수제비 하나로 적지 않은 매니어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 점포의 성공 비결은 뭘까?

 최고를 만들겠다는 열정과 정성으로 차별화된 수제비를 지향해 온 것이 첫 번째 성공 포인트다. 이 가게의 수제비는 육수가 남다르다. 그 핵심은 멸치에 있다. 강동진 대표는 매년 10월 잡히는 ‘오사리 멸치’만 사용한다. 1년치를 한꺼번에 구입해 보관 비용까지 비싸게 치르면서 이 멸치를 쓰는 이유는 영양분과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육수가 다소 심심한 듯하면서도 맛이 깊고 뒤끝이 시원하다. 연남수제비를 찾은 몇몇 손님들에게 이 가게를 찾는 이유를 물어봤다. 수제비 자체도 맛있지만 육수가 시원하고 든든해서 자주 온다고 한다. 연남수제비는 매일 뽑는 육수(평일 기준 120인분)가 다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는다. 밀가루·육수, 그리고 김치를 만들 때 쓰는 소금을 천일염,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만 고집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밝고 정갈한 가게 분위기와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최대 스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아담한 점포에 들어서면 우선 주방이 훤히 보인다. 손님에게 왠지 모를 믿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다. 내부 인테리어도 밝으며, 형광등과 매립등으로 구성된 조명도 편안함을 준다. 식당 한편에는 월간잡지와 당일 신문 몇 종류가 가지런히 비치돼 있다. 신문은 일일이 스테이플러로 찍어 놓아서 손님이 읽기 편하게 해 놓았다. 작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강 대표는 지금의 수제비를 만들기까지 500번도 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득도(得道)하면 개인도 행복하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법이다.
                                                                                           중앙 2013.09.23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