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가회동 소담떡방 vs 삼성동 자이소

해암도 2013. 9. 18. 08:47

서울에 형제 떡카페 두 곳이 있다. 종로구 가회동의 ‘소담떡방’과 강남구 삼성동의 ‘자이소’이다. 주인들 나이? 젊다. 떡집 형제들의 평균 나이는 30세다. ‘소담떡방’이 예스러운 정취의 공간에서 전통 떡을 고집스레 선보인다면, ‘자이소’는 현대식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퓨전 떡케이크 위주로 공략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입에 착착 감기는 떡을 내놓는 젊은 형제들의 떡카페에 젊은층과 외국인 등 새로운 고객층이 몰리고 있다. 두 떡카페의 추석 준비 현장을 찾아갔다.

 

 

‘소담떡방’

아버지의 비밀 레시피 삼형제가 훔치다

 

 

 

거친 나무 대문에 둥근 쇠 손잡이가 달린 ‘소담떡방’의 문은 잠겨 있었다. 지난 9월 9일 오전 10시 최대로(31) 대표는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게 헐레벌떡 나타났다. 추석 대목이라 주문이 밀려서 늦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포구 망원동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떡집 ‘경기떡집’에서 갓 쪄내 가져온 따끈한 떡들을 차 트렁크에서 내리는 최 대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떡카페 ‘소담떡방’에서 이날 손님들에게 판매할 제품들이었다. 떡집 형제들의 하루는 이미 전날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출근했는데 동생들은 어젯밤 11시에 출근했죠. 추석 전주부터 완전 비상이에요. 잠이요? 하루 2~3시간 정도? 다음주가 더 바빠요. 추석(19일)까지는 이 모드로 갈 것 같아요. 추석 때는 뭐니뭐니 해도 송편과 제사용 절편이 가장 많이 팔리죠. 추석 대목에는 하루 평균 4000~5000㎏ 정도의 떡을 만들어요.”
   
   망원동의 ‘경기떡집’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떡집 명소다. 1969년부터 떡을 만들어온 최길선·김영애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이들의 셋째 아들 최대한(26), 막내아들 최대웅(24)에 이어 2년 전 큰아들 최대로(31)까지 합류했다. 특히 최연소 떡명장 배출 떡집이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작년에 경기도와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주최하는 떡명장 선발대회에 셋째 최대한씨가 떡명장에 뽑혔다. 40~60대 일색이던 떡명장의 세계에 새롭게 탄생한 20대 떡명장에 업계는 흥분했다. 10대 때부터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심하고 손기술을 익힌 그의 우직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떡카페 ‘소담떡방’은 아버지의 꿈을 아들 삼형제가 구현한 공간이다. 아버지의 비밀 레시피 노트를 발견한 큰아들 대로씨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가 만들고 싶은 떡을 하나하나 적어놓은 레시피. 비밀 레시피는 아버지의 소망이자 미래였다. 재료 선별에 대한 기준이 유독 까다로운 아버지의 떡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현되지 못했다. 당시 경기떡집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봐야 적자가 불보듯 뻔하고 판매 루트도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떡카페였다.
   
   삼형제는 “아버지가 만들고 싶으신 떡, 저희가 제값 받고 팔아보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소담떡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단호박소담떡, 검은콩현미떡, 콩영양찰떡을 비롯해 소담떡방에서 파는 떡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급 재료만 쓴다고 한다. 최대로 대표는 “쌀은 ‘김포 금쌀’로 알려진 고시히카리, 밤은 공주밤, 잣은 가평잣, 검은콩은 영주 서리태만 쓴다”고 말했다. 쌀의 경우 여주 이천쌀, 철원 오대미 등도 시도해 봤으나 너무 차지지도 퍼석거리지도 않아야 하는 떡의 식감상 김포 고시히카리를 낙점했다고 한다.
   
   소담떡방 최고의 인기 떡은 최대한씨가 떡명장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단호박소담떡. 생단호박과 호두, 완두를 넣어 저온숙성해 만든다. 이 떡은 ‘맛의 균형’의 진수다. 너무 달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쫀득하지도 퍼석하지도 않다. 튀는 맛 없이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북촌한옥마을을 찾는 외국인 중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는 이들이 꽤 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가장 많고 오스트리아·헝가리·폴란드·네덜란드인 등 많은 외국인이 다녀갔다. 외국인들은 꿀떡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떡집 삼형제의 역할 분담은 분명하다. 첫째 대로씨는 떡카페 소담떡방을 도맡아 운영하면서 경영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은 셋째 대한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기떡집의 떡맛을 우직하게 지켜내고, 막내 대웅씨는 대한씨가 놓치고 가는 세세한 일들을 담당한다. 대로씨는 “셋째는 걸음걸이까지 아버지와 똑같을 정도로 아버지 판박이이고, 막내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고 했다. 셋째와 막내는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첫째는 2년 전에 뒤늦게 합류했다.

 

큰아들 대로씨가 떡을 하겠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반대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대로씨가 가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하나같이 말렸다. “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형은 의지가 약한 편이니 힘들 거다”라며 떡판 선배인 동생들이 특히 말렸다. 대로씨는 포기하지 않고 1년간 피땀어린 노력과 설득 끝에 가족의 동의를 받아냈다. “나도 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생들 밑에서 설거지, 음식쓰레기 버리기, 청소, 배달 등 잡일을 1년간 묵묵히 해 낸 끝에 인정을 받았다. 대로씨는 “추석 때 일하다 쓰러진 적도 있다”며 웃는다. 형제 중 둘째는 떡과는 무관하게 대림산업에 근무한다.
   


   성격도, 역할도 제각각인 삼형제는 떡에 대한 철학에서는 일치한다. 전통을 복원하고 지키고 싶다는 것. 최대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떡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은 두 종류다. 생업을 위해 종사하시는 분과 연구하시는 분. 연구자들은 기술이 없고, 기술이 있는 분들은 연구를 안 한다. 우리는 기술이 있고 어리니까 대한민국의 사라져가는 전통 떡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전통 떡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게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전통 떡 중에는 분명히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최근에 우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 삼해주를 가지고 콜라보로 만든 ‘삼해인삼주악’이 한 예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다 좋아하셨다. 이런 것들을 발굴해서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떡 한류를 만들어보고 싶다.”

 

 

‘자이소’

4년 만에 연매출 20억 꼴찌형제 일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자이소’는 떡카페 명소다. 코엑스와 선릉 사이의 큰길가에 있다. 무방부제·무색소를 내세우고 떡의 주원료는 국내산을 원칙으로 하되 부재료까지 원산지를 하나하나 밝힌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착한 떡집’으로 소문나면서 고객층이 한층 두꺼워졌다. 이곳의 특제품은 ‘즉석 떡케이크’. 주문과 동시에 1인용 떡케이크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데, 포슬포슬한 백설기를 베이스로 만들어내는 케이크는 떡케이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증맞고 화려하다.

 

가장 인기 많은 ‘치즈는 블루베리를 싣고’는 떡케이크의 진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설기 가운데 달콤쫄깃한 찰떡을 심고 위에 부드러운 치즈를 듬뿍 올린 후 새콤달콤 블루베리를 얹었다. 위에서부터 뭉텅 크게 잘라 물면 고소한 치즈와 새콤한 블루베리, 달콤한 찰떡 사이사이로 담백한 백설기가 조화를 이루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일본과 대만에서 여러 번 방송 촬영을 해갔고 지도를 들고 찾아오는 일본 관광객도 많다. 자이소는 떡카페의 이름인 동시에 인터넷 쇼핑몰의 이름. 창업한 지 4년이 채 안 됐지만 연매출 20억원이 넘는 떡가게로 훌쩍 컸다. 송파구 가락동 본사에 자체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생산직 직원까지 합쳐 17명 정도이니 1인당 생산 매출액이 1억원이 넘는 셈이다.
   
   ‘자이소’는 학창 시절 꼴찌를 도맡아 하던 연년생 형제 박호성(32)·박경민(31) 공동대표의 합작품이다. ‘자이소’라는 상호에 회사의 콘셉트와 운영철학이 담겨 있다. 고급스럽고 글로벌한 어감의 이 상호는 ‘드셔 보십시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대구 출신인 개구쟁이 형제 둘이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면서 상호를 고민하던 중에 건진 이름이다. ‘자이소’에서 만난 형제는 “자이소(慈利笑)에는 자애롭고 이로운 미소라는 뜻이 있는 데다가 받침이 없어 외국인들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다”며 으쓱해했다. 형제는 주로 가락동 본사를 지키고 카페에는 누나처럼 보이는 어머니가 상주한다.
   
   형제는 ‘회사놀이’ 하듯 자이소를 운영해 왔다. 떡카페에 있는 떡케이크 메뉴는 고정관념을 깬다. ‘갈릭을 기다려’ ‘블루베리 마돈나’ ‘바람난 버거’ 등. ‘바람난 버거’는 빵 대신 쌀과 합쳐졌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제품 개발 후 형제 둘이 카페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다가 ‘이거다’ 싶은 이름을 고른다고 한다. 제품 개발 과정 역시 진지함이나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다. 먹다 남은 백설기 위에 편의점에서 산 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녹여 잼을 발라 먹으니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것. 그때부터 치즈 종류와 잼 종류를 바꿔 가며 퍼즐 맞추듯 실험을 해보면서 최상의 하모니를 찾아갔다. 이렇게 해서 자이소 최고의 베스트셀러 ‘치즈는 블루베리를 싣고’가 탄생했다.
   
   형제는 본인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 모르는 겁니다.”(형 박호성)
   
   “완전 인생 역전이죠.”(동생 박경민)
   
▲ ‘자이소’의 박호성(32·오른쪽)·박경민(31) 형제.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형제는 공부를 심하게 못했다. 형은 “얼마 전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 봤는데 딱 하나만 ‘우’였고 전부 ‘양’ ‘가’였다. ‘우’는 체육이다”라고 말했다. 동생은 “꼴찌였다. 50명 중 50등. 게다가 (학교폭력조직) 일진의 꼭짓점이었다. 중학교 때 정학도 받았다”고 웃었다. 형제는 고졸이다. 형제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형제에 대해 어머니는 공부로 채근하지 않았다. “공부 못해도 괜찮다. 뭘 해도 그 분야 1등이면 된다. 구두닦이도 괜찮다”며 여유를 줬다. 형제는 둘다 집중력 없고 산만하기로 유명하지만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게 바로 떡이었다.
   
   형 박호성 대표가 먼저 떡판으로 뛰어들었다. 대구에서 이름난 떡집을 운영하는 외삼촌을 보면서 탄력받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맛있는 떡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군대 제대 후 외삼촌 떡집에서 5년간 일을 배웠다. ‘호프집 사장’이 꿈인 동생도 떡판으로 끌어들였다. 동생 박경민 대표는 “호프집 면접을 보면 외모 때문에 다 떨어졌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못생겼다. 지금은 많이 고급스러워진 거다. 받아주는 호프집이 없어서 형을 따라 떡을 만들게 됐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이소’의 떡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게다가 맛까지 갖춰 젊은 여성들에게 호응이 높다. 쇼핑몰 고객의 70~80%는 20~30대 젊은 주부. 한 유명 육아카페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백일과 돌 케이크와 답례떡 등 행사용 떡집으로 인기몰이를 해 갔다. 휴일이나 밤낮 없이 근무해야 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형제가 함께 즐기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형제의 목표는 떡집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느리게 가고 싶어 한다. 떡카페 자이소 분점을 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서울을 넘어 수원, 심지어 중국 상하이에서도 분점 요청이 있었지만 동생 박 대표는 “아직은 품질 관리에 자신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꼴찌 출신의 형제는 꿈이 생기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자이소, 하면 ‘좋은 회사’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와 담을 쌓았는데 요즘에는 경영학 공부가 진짜 재밌습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 공부, 경영학 공부를 통해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느리게 갈 겁니다.”(동생 박경민 대표)
   
   “예전에는 꿈도 없고 희망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고 앞이 안 보였습니다. 꿈을 찾으면서 앞도 보고 옆도 봅니다. 요즘 진짜 행복합니다.”(형 박호성 대표)

 

                                                                                             
김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