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스포츠 약소국 블로그 기자단이 본 아시안게임

해암도 2014. 9. 22. 07:05

한·일 뺨치는 라이벌 파키스탄·인도 "남자하키 꼭 이긴다"


인천 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은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다. 그런데 영어 슬로건은 다르다. ‘Diversity Shines Here(다양함이 이곳에서 빛난다)’다. 두 가지 슬로건은 이어 붙여 해석해야 한다. 다양함이 빛을 발할 때 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도 빛나리라.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소속 45개국이 모두 출전한다. 중동·서아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동북아시아….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넓고 활기가 넘치는 땅이다. 인천은 다음 달 4일까지 아시아의 중심이 된다. 본지는 아시아 각국의 아시안게임 조직위 영문 블로그 기자단을 만났다. 27개국 35명의 기자단이 활동 중이다. 전직 기자부터 학생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그들이 바라보는 아시안게임은 팔면경처럼 다채롭다.
 

  파키스탄에서 온 파카르(29)는 크리켓 전도사다. 안산 한양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인천크리켓협회 심판으로도 활동 중이다. 주말마다 대회에 참가해 크리켓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한 크리켓은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서아시아 지역에서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배트로 공을 때리는 방식은 야구와 비슷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다. 파카르는 “크리켓은 공정한 스포츠다. 크리켓은 심판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내 생각에 이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1억9600만 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여섯째로 인구가 많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3개를 따 종합 20위를 차지했다. 파키스탄은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스포츠에도 그 유산이 남아 크리켓·하키의 인기가 높다. 지난 광저우 대회에서 파키스탄 크리켓 여자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남자는 동메달을 땄다. 하키·스쿼시에서도 금메달이 나왔다. 파카르는 “2010년 대회 때 하키와 스쿼시에서 하루에 금메달 2개가 나왔다”며 “파키스탄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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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은 이번 대회에서도 여자 크리켓과 남자 하키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파카르는 “여자 크리켓은 세계 최강이다. 이번 대회 남자 하키에서 인도와 결승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큰데, 반드시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본래 한 국가였지만 영국 식민지 지배를 거쳐 정치적·종교적 문제로 갈라졌다. 이후 카슈미르 지역 영토 분쟁 등으로 세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 두 나라의 맞대결 분위기는 한·일전 이상이다.

 역시 인도에서 독립한 방글라데시는 지난 대회 남자 크리켓에서 금메달을 땄다. 남자 크리켓은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실력이 엇비슷하다. 방글라데시 출신 데바브라타(26)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이번 대회에 불참해 스리랑카가 가장 큰 라이벌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영웅 타밈 이크발(25)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아프가니스탄도 복병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거둔 성과에 많은 이가 박수를 보냈다.

 인도와 중국 사이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 잡은 부탄은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다. 규모는 작지만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행복지수(GNH)를 국가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쁨보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부탄은 몰디브·동티모르 등과 함께 아시안게임에서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한 나라다. 부탄 출신인 귀엘첸(24)은 “부탄에선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지만 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부탄 체육회 홈페이지에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지만 글을 읽은 사람은 100명을 밑돈다.

아시안게임 조직위는 지난해 10월부터 3기에 걸쳐 영문 블로그 기자단(IAG Crew)을 운영해 왔다. 사진은 2기 기자단. [사진 아시안게임 조직위]
 귀엘첸은 “부탄 선수 중에서 2회전에 오르는 선수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부탄은 이번 대회에 복싱·골프·사격·태권도·양궁·테니스·육상 등 7개 종목에 선수단 16명을 파견했다. 부탄은 이번 대회에서 역사상 첫 메달을 꿈꾼다. 스포츠 약소국을 후원하는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비전 2014’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김재휴(50) 감독이 2009년부터 부탄 복싱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그 이후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했다. 부탄 복싱선수들은 지난 7월에는 한국에서 3주간 전지훈련을 했다.

 중국은 아시아 체육계에서 공공의 적이다. 일본은 수영·육상 등 기초 종목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뒤 아시아에서 한국에도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크레스티(26·인도네시아)는 “중국이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말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4·은7·동13개를 따 종합 15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는 배드민턴이 국기(國技)다. 지난 대회 배드민턴 남자 복식 키도 마르키스-세탸완 헨드라 조는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중국세가 막강하다. 지난 대회 배드민턴에 걸린 7개의 금메달 중 중국이 5개를 가져갔다. 한국의 이용대-유연성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벽도 넘어야 한다.

 229명의 선수단을 파견하는 싱가포르는 볼링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벽이 만만치 않다. 싱가포르 출신 자헤르(33)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볼링에서 3관왕을 차지한 레미 옹의 신화를 이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경제력에 따라 스포츠 성적도 시소를 탄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안게임에서 인도 등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게임에서 1위는 일본, 2위는 인도였다. 그 뒤를 이란·필리핀·스리랑카·미얀마가 따랐다. 인도네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은 1회 대회부터 아시안게임에 개근하고 있다. 하지만 더딘 경제 성장으로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시들해졌고 중국의 물량 공세가 이어지면서 아시안게임의 주변국으로 전락했다.

 필리핀에서는 농구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캐롤리나(29·필리핀)는 필리핀과 한국의 남자 농구 대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과거 신동파가 활약했던 시절 한국과 필리핀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다”며 “지금은 이란이 강하지만 한국과 필리핀도 금메달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동티모르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캄보디아는 비전 2014 프로그램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서 파견한 진정추 코치가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맡아 지도하면서 금메달을 향한 꿈을 이어 가고 있다. 2009년부터 30명의 선수를 지도한 진 코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8강에 2명을 올려 보냈고, 2011년 동남아시안게임에서 금1·은4·동8개를 따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알 샤이마(30)는 “두바이에서는 오직 축구 이야기뿐”이라며 “남자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한국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UAE가 속한 중동 지역에서는 축구의 인기가 절대적이다. 로열 패밀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축구클럽 시스템이 정착됐고 많은 유명 선수가 중동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동의 스포츠 강국은 이란이다. 이란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한·중·일 다음으로 많은 금메달(138개)을 땄다. 여러 인종이 섞여 살지만 이란에서 인구 구성비가 가장 높은 페르시아인은 유럽인과 체격과 체질이 유사하다. 전통적으로 레슬링·복싱 등 투기 종목과 축구·농구·배구 등 구기에서 강세다. 바레인·카타르·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아프리카의 유망주를 대거 귀화시킨 덕분이다.

 중동은 경기력보다는 스포츠 외교력이 더 강하다. 중동의 쿠웨이트는 아시안게임을 총괄하는 OCA 회장국이다. 셰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51) 회장은 91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왔다. 그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계를 쥐락펴락하는 실력자다. OCA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박민호(30)씨는 “OCA에서는 스포츠 약소국에 대한 지원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OCA에서 개최하는 청소년(유스) 대회, 실내 대회 등을 보면 선수들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을 많이 가미하고 있다”며 “경기 룰 변경, 다양한 종목 선정 등으로 일부 국가의 메달 독식을 막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색 종목인 카바디·세팍타크로·공수도·크리켓 등이 아시안게임에서 자리를 지키는 배경이다.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은 1200억 위안(약 2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경기장을 건립했다.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4월 베트남 하노이가 2019년 아시안게임 개최를 포기했을 때 중국 난징시가 개최 의사를 밝히자 중국 내에서 반발이 거셌다. 인천 아시안게임의 예산은 2조5000억원 정도다. 광저우 대회의 10분의 1 수준이다. 김영수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은 “인천이 스포츠 약소국이나 개발도상국도 아시안게임을 치를 수 있는 롤 모델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S BOX] 한·중·일 3국 금 67%, 10개국은 노메달 … 약소국 훈련 등 지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중국·일본이 따낸 금메달은 323개로 전체(477개)의 약 67%를 차지했다. 45개 참가국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6개국은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아예 메달을 따지 못한 나라도 10개국에 이른다. 세 국가의 비중이 너무 높자 일부에서는 아시안게임이 한·중·일을 위한 대회로 전락했다는 쓴소리를 하기도 한다.

 인천시는 대회 유치 전부터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묘안이 스포츠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인천시는 2000만 달러(약 208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스포츠 약소국 지원에 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인천의 제안은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인천의 대회 유치가 확정된 이후 인천시와 OCA는 스포츠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인 ‘비전 2014’를 본격 가동했다. 비전 2014는 지도자 파견과 장비, 전지훈련 등의 지원을 통해 OCA 45개 회원국 모두가 색깔에 관계없이 한 개 이상의 메달을 따 스포츠의 감동을 공유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30개국 스포츠 유망주 653명이 혜택을 받았다. 비전 2014의 지원을 받은 선수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29·은22·동39개를 따는 성과를 올렸다. 인천시는 14개국 선수들을 국내로 초청해 전지훈련을 돕기도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