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의 꿈, 현실로 성큼…어모털족이 뜬다
어모털리티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퍼플카우·2만원
<어모털리티>에서 나이를 잊고 사는 어모털리티족의 전형으로 제시된 유명 인사들. 왼쪽부터 영화감독 우디 앨런(77) 배우 메릴 스트립(63), <플레이보이> 발행인인 휴 헤프너(86)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발상을 바꾼
조금 앞선 광고라고 생각했다.
엄연한 실제인 나이를 한마디 말로 뛰어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소비하는” 이른바 ‘어모털(amortal)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모털리티>는 “원하는 나이에 머무르는 사람들”인 어모털족의 등장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 현상인 어모털리티(amortality)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어모털리티는 ‘영원히 살 수 없는’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모털’(mortal)에
부정을 뜻하는 ‘a’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미국의 주간 <타임> 유럽 총괄 편집장인 지은이가 만든 조어의 명사형으로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뜻한다.
어모털리티는 “사회의 풍요가 낳은 부산물”로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스펙트럼”에 걸쳐 있고
더불어 “젊은 세대에서 노인 세대까지를 망라하여 그 행동에 영향”을 준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모털족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어모털족의 급속한 증가는 고령화 때문이다.
의학기술의 진보는 젊음을 사기 위해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들을 낳았는데
결국 나이의 혼란과 함께 나이의 의미마저 바꾸고 있다.
어모털리티 시대에는 “나이에 어울리는 행실에 대한 규범이나 제한”은 더는 미덕이 아니다.
어모털리티 사회에서 전통적 권위란 거추장스러운 외피일 뿐이다.
한편 어모털리티 시대에는 가족의 재구성이 필연적이다.
외동아이와 입양은 흔하디흔한 일이고, 심지어 원하는 정자를 선택해 아빠 없이도 엄마가 될 수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부모들은 수직적 가족 모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자녀들의 독립이 늦어질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동등한 힘을 가진 부모와 자녀가 동일한 성취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관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젊은 세대와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한국 사회도 그런 점에서 어모털리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어모털리티 시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만큼, 사랑과 섹스의 경계도 흐지부지된다.
결혼은 더는 섹스를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며, 길어진 수명만큼 섹스 수명도 그만큼 늘어난다.
“사랑을 하면 눈이 멀고, 어모털적인 사랑을 하면 나이에 눈이 먼다”는 지은이의 표현이 흥미롭다.
위안과 위로의 근원이었던 종교의 약화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종교의 자리를 채워줄 세속적 위안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어모털리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오늘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힐링 열풍’을 소개한 부분이다.
지은이는 어모털리티 시대에는 “조건 없는 자기수용을 강조하는 치유 문화”가 과잉될 것이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유명 인사들이 이런 행태를 조장한다고 질타한다.
버라이어티쇼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한 힐링 열풍은 바로 어모털리티적 삶의 한 단면인 것이다.
이외에도 <어모털리티>는 일과 직업, 소비와 나이, 과학 등 다양한 관점과 사례를 통해
현대 사회가 어모털리티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어모털리티 시대가 마냥 미덕만 존재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지은이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어모털리티 시대에 던지는 비평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들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나이를 잊고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노화와 죽음의 공포는 생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며, 그 간극에서 느끼는 우울함으로 어모털족은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새삼 귀 기울여야 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에필로그에서 지은이가 말한 것처럼 “죽음의 공포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마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건강을 비롯해 공동체의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치환해야 한다.
나이가 사라진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향과 덕목은 무엇일까. <어모털리티>는 그 기초부터 다시 고민하게 한다. 장동석/출판평론가 한겨레 20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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