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복국. 조상 대대로 복어를 좋아했던 습관에 일본의 발달된 복 조리법이 가미되며 만들어진 음식이다. 사진 송원섭 기자
우리 조상들이 복어, 특히 복국 국물을 좋아했던 기록은 굉장히 많습니다. 조선 순조의 장인이며 안동 김씨 세도를 시작한 김조순(1765~1832)은 복어에 대한 시만 네 편이나 쓸 정도로 복어를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그중 한 시에선 어쩌다 먹는 싸구려 막걸리의 맛이 ‘목숨 걸고 먹는 복어 맛에 비할 만하다(猶謂河豚一死當)’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국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그 맛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바쇼(芭蕉, 1644~1694)도 ‘아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어제도 무사히 지나갔네. 복어국을 먹었는데도(あら何ともなや 昨日ハ過て ふくと汁)’라고 읊었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복을 먹는 자세는 한국과 일본이 꽤 비슷하죠. 전 세계에서 이 정도로 복 요리를 즐겨 먹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을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부산의 맛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복국을 빼놓을 수 없죠. 이번 주의 식당은 복국은 물론이고 복어 회와 샤브샤브를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은근히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이 식당의 복국은 설렁탕 같은 질감으로, 다른 식당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강렬한 개성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복국 하면 부산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우연은 아닙니다.

부산 공동어시장 건너편 골목 안.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에 '남해복국' 간판이 보인다. 사진 송원섭 기자
300년간 복어가 금지됐던 일본
부산이 복 요리로 특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일본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복 맛을 즐겼지만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출병을 앞두고 병사들 사이에서 복어 중독 사태가 벌어지자 전국에 복 섭취 금지령을 내립니다.
이 금지령은 거의 300년 동안 이어집니다. 물론 저 위에 소개한 하이쿠를 쓴 바쇼도 이 금지령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니, 당시 사람들은 정부의 처벌과 목숨의 위협이라는 두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복어를 먹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복 산지로 유명한 야마구치현에서는 복어를 먹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독을 제거하는 손질법과 조리법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1888년, 총리 이토 히로부미가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를 방문했을 때 식당 주인은 복어 요리를 대접합니다. 이토는 그 ‘고향의 맛’에 감동했고, ‘야마구치현에 한해서 복 섭취 금지령을 해제한다’는 명령을 내립니다.
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내용은 야마구치현 관광연맹에서 널리 홍보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당시 이토가 복어를 먹은 슌판로(春帆楼)라는 식당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어 요리법이 발달한 시모노세키는 관부연락선을 통해 1905년 부산과 연결되죠.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최단 경로인 이 뱃길을 통해 부산은 일본 문물이 수입되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많은 복 요리사들이 부산으로 넘어와 일본인 거주 구역에 복집을 차렸고,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회, 샤브샤브를 비롯한 다양한 조리법이 들어와 부산의 복 요리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복어 회와 복 껍질 무침, 밑반찬이 깔린 상차림. 사진 송원섭 기자
복어회와 샤브샤브가 두당 6만원
남해복국은 부산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은근히 소문난 식당입니다. 남포동이나 중앙동 같은 구도심도, 해운대·광안리·수영처럼 최근 각광받는 지역도 아닌,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전국 최대의 수산물 경매장입니다) 건너편 좁은 골목 안에 있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끊이지 않습니다.
복국도 복국이지만 복어 회와 샤브샤브를 묶은 ‘코스’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식당입니다. 저도 처음엔 한 택시 기사님의 추천으로 이 식당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요즘 참복으로 복국이나 지리(맑은 탕)만 먹어도 3만원 이상씩 한다 아입니까. 그 집 가서 6만원 코스 한번 시켜보이소. 본전 생각 안 납니다.”

미나리에 돌돌 말아 폰즈에 찍어 먹는 복어회. 쫄깃한 식감이 그만이다. 사진 송원섭 기자
코스(복어 회, 복어 샤브샤브, 복어 튀김, 죽)를 주문한 다음 쫄깃한 껍질 무침을 맛보며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금세 복어 회 접시가 등장합니다. 사실 일본 복 전문점의 우스즈쿠리(薄造り: 접시의 바닥 문양이 보일 정도로 얇고 정교하게 회를 떠 늘어놓는 기술)처럼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맛을 느끼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복어 회 특유의 단단하고 쫄깃한 살 맛이 미나리와 함께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복 샤브샤브는 뼈를 우려낸 육수 냄비에 채소와 복어 살을 넣고 살짝 데쳐 먹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 딸려 나오는 복어 껍질이 그야말로 별미입니다. 껍질은 등껍질과 배껍질로 나뉘는데, 다소 거친 등껍질과 야들야들 보드라운 배껍질 모두 끈적끈적한 콜라겐의 식감이 제대로 살아납니다. 데친 껍질은 폰즈나 소금에 찍어 먹고 초장에 비벼 먹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살코기보다 더 매력적인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국이나 맑은 탕을 주문했을 때, 복어 살이 얼마 되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렇게 살코기로 포식할 수 있는 기회가 더없이 반가울 겁니다. 이미 배는 터질 듯 부르지만 복어 튀김을 맛보지 않을 수 없고, 죽으로 마무리가 이뤄집니다.

샤브샤브 차림. 큰 접시 가득한 복어 살과 껍질, 채소가 육수와 함께 제공된다. 사진 송원섭 기자
까치복과 참복만 고집하는 이유
이 코스의 회와 샤브샤브는 모두 참복을 사용합니다. “국내 어디를 가도 이 가격에 이런 복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신유심(52) 대표의 장담. 당초 남해복국은 신 대표의 어머니가 1993년 현재 위치보다 살짝 큰길 쪽에서 창업했던 식당입니다. 이 최초의 남해복국은 2006년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문을 닫았다가 2017년 맏딸인 신 대표가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을 딴 뒤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본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공동어시장에서 복어 유통을 맡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복집을 하신 것도 당연히 좋은 재료를 좋은 조건으로 받을 수 있어서였죠. 잘 되던 식당이 문을 닫은 게 아쉬워서 제가 자격증을 따고 다시 문을 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저희는 냉동하지 않은 자연산 생복만 사용해요.”

샤브샤브용 뜰채에 담긴 재료들. 어느새 국물도 진국이 된다. 사진 송원섭 기자
어머니의 남해복국은 복국과 수육만 팔던 식당이었지만, 신 대표가 맡으면서 회와 샤브샤브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복어에는 밀복, 은복, 까치복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신 대표는 일단 까치복과 참복만 사용합니다. 까치복 복국(1만3000원)이나 참복 복국(2만5000원) 모두 가격은 확실히 저렴한 편입니다. ‘원가’를 잘 아는 공동어시장 관계자들의 단골집이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밀복이나 은복은 제 느낌으론 끓여 놓으면 살에서 살짝 시큼한 맛이 나는데 제가 그걸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 식당에선 쓰지 않아요. 손님들에게도 복국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까치복 이상은 드셔야 한다고 권하죠.” 신 대표의 취향에 따르면 ‘까치복은 시원하고 깔끔한 맛, 참복은 시원한 맛에 살짝 단맛이 더해진 맛’입니다.

데쳐낸 샤브샤브 재료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나리, 등껍질, 배껍질, 살코기. 껍질의 단맛이 역시 일품이다. 사진 송원섭 기자
왜 복국이 뽀얗고 끈적하지?
남해복국의 비결은 복국과 샤브샤브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기본 육수에서 시작합니다. 복어 대가리와 뼈에 무, 대파, 양파를 넣고 푹푹 고아 진국을 만드는 거죠. 이 육수에 마지막으로 마늘을 넣으면 샤브샤브용 육수가 되고, 다시 재료를 넣고 복국을 만들기도 합니다.
“복국은 육수에 고기, 콩나물과 미나리를 넣고 다시 끓이는 거죠. 그리고 저희 복국에는 이리(정소)가 듬뿍 들어가는 게 다른 식당들과 달라요. 처음부터 다른 재료와 함께 넣고 끓이는데, 한번 냉동했던 이리는 다 끓여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얼리지 않은 생이리는 국물에 녹아들어서 걸쭉해지죠.”

건더기를 건져낸 복국 국물. 설렁탕처럼 뽀얗고 진득하다. 사진 송원섭 기자
그래서 많은 손님이 남해복국의 복국을 ‘설렁탕 같은 복국’이라고 부릅니다. 젓갈과 조기가 통으로 들어간 이 식당의 김치와도 잘 어울리는 맛이죠. 점심이면 해장을 위한 복국 손님이, 저녁이면 술 한잔을 곁들이기 위한 코스 손님이 주 고객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복어 회를 잔뜩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 요즘은 일본에서 예약하고 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복어가 언제 제철인지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저희는 이리가 제일 맛있는 11~2월이 제철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오시면 저희 식당의 복국이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 생각나는 복국,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쩍쩍 붙는 진득한 식감을 또 한번 느껴보기 위해 겨울이 깊어지면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P.S.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동안 [송원섭의 식판]에서 소개된 식당들을 모두 지도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도로 들어가 좌상단의 [문 그림]을 누르시면, 전체 식당 리스트가 보입니다.

[송원섭의 식판]의 모든 식당이 들어 있는 [식판 지도]
중앙일보 송원섭 선임기자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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