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마셨다, 그래서 살았다” 말기암 이긴 의사 ‘항암 생존법’
국내 스포츠 재활의 선구자로 통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나영무(64) 솔병원 원장. 그는 누구보다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예방만큼 중요한 치료는 없다고 믿었다. 특히 나 원장이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간암과 폐암으로 모두 돌아가셨기에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해왔다.
그랬던 그도 암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발견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증상 때문이었다. 젊을 때부터 이어진 변비와 설사, 과민성 대장 증후군. 늘 겪던 증상이라 나이가 들며 예민해진 정도로 여겼다.
지나고 보니 그건 몸에서 보낸 ‘구조 신호’였다.
젊을 땐 며칠 지나면 낫던 증상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된다면 그건 더 이상 ‘체질’이 아니라 어떤 병에 가까울 수 있는 거죠. 근데 그땐 이걸 깨닫지 못했어요.
대가는 컸다. 2018년, 직장암 4기. 항문 위쪽 직장에서 시작된 암은 간과 폐까지 번져 있었다. 생존율 5%.

2018년 직장암 판정을 받고 첫 수술을 받은 나영무 원장의 모습. 사진 나영무 원장 제공
‘살도 안 쪘고 술도 육식도 즐기지 않는데 왜?’ 천천히 삶을 되짚자 놓친 것들이 보였다. 의사인 그도 간과했던 게 있었다.
자책을 뒤로하고 그는 버텼다. 매일매일 악착같이 컨디션 관리를 했다. 그러나 암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한, 2020년 재발 소식은 그를 무너뜨렸다. 이미 간의 75%를 잘라냈고, 직장과 오른 쪽 폐 일부도 절제한 상태. 고통스러운 항암을 다시 할 엄두가 안 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삶의 의지를 짓눌렀다.
다른 차원의 마인드 셋이 필요했다.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암세포를 공격하는 주체가 되자.’ 환자의 의지와 참여가 중요한 재활의학에서 힌트를 얻었다. 생활 습관, 운동, 반복 훈련으로 몸의 회복력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지옥 같은 통증 속에서 그는 단순히 ‘암을 참는 법’이 아닌 ‘이기는 몸을 만드는 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2021년 암 세포가 모두 죽은 상태인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지금 그는 매일 러닝을 할 만큼 건강하다.
나 원장은 어떻게 생존율 5%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딛고 암을 이겨냈을까? 4년간 6번의 수술, 항암 치료 36번을 버티며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오늘 〈뉴스 페어링〉에선 직장암 말기를 극복한 나 원장의 ‘항암 생존 로드맵’을 전격 공개한다.
그는 항암을 할 때 ‘착한 음식’만 먹지 않았다. ‘항암 중엔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는 파격적인 식이요법 철칙부터, ‘통증은 피하는 게 아니라 장비로 이기는 것’이라는 투병 노하우까지 샅샅이 물었다. 의사인 그도 수년간 간과했던 암 전조증상과 건강검진 할 때 빠뜨린 치명적인 실수도 다뤘다.

김연아, 축구 국가대표팀, 최가온 선수 등의 재활을 책임져온 나영무 솔병원 원장은 직장암 4기를 겪으며 본인 스스로 재활할 수 있는 '항암 생존 로드맵'을 만들었다. 김경록 기자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변비·설사, 그리고 ‘이것’ 암 신호였다
📌 건강검진서 빠뜨린 것, 뒤늦은 후회
📌 항암치료 극복 치트키 ‘사이다’
📌 항암에 가장 도움 된 의외의 음식
📌 술·육식 안 한 의사, 암 걸린 이유
📌 병이 잘 낫는 사람들의 특징
변비·설사, 그리고 ‘이것’ 암 신호였다
직장암을 발견하기 전까지, 발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요?
네. 젊었을 때부터 변비와 설사가 잦았는데, 사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잘 겪는 일이잖아요. ‘난 원래 장이 약해’ 이런 생각이 어쩌면 암을 의심 못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암을 결정적으로 발견한 건 2018년 치질 수술 이후였어요. 그전에 건강검진에서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검진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죠.
어떤 실수가 있었나요? 또 변비·설사는 일반적인 증상인데, 다른 전조 증상은 없었나요?
(암 진단 3~4년 전부터) 변을 보고 나서 치핵처럼 뭔가 튀어나온 듯한 느낌, 그리고 잔변감이 있었어요. 만약 분비물이 나오거나 출혈이 있었으면 바로 검사를 했을 텐데 그런 증상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치질 수술을 몇 년 미뤘어요. 알고 있는 병이기에 무시한 거죠. 그런데 치질 수술을 했는데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그제서야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암 덩어리가 발견됐어요.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건강검진은 2~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저희 부모님이 폐암,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요. 그래서 그 부위를 위주로 검사했어요. 그러니까 암이 장에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한 거죠. 건강검진을 할 때도 대장내시경은 보질 않았어요. 분명히 변비나 설사, 복통이 있었는데도 증상을 간과하고 검사조차 안 한 거죠. 제 실수였어요.
항암 치료 극복 치트키 ‘사이다’
6번의 수술과 36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항암 치료를 7번 하고 나서 첫 번째 수술을 받았는데, 10시간에 걸친 수술이었어요. 수술 이후 항암을 다시 하는데 못 견디겠더라고요. 토사곽란 증세가 나타났어요. 토하고 구역질 나고, 배 아프고 설사도 했고요. 수술한 이후 몸무게가 60㎏에서 50kg까지 빠졌으니까 체력이 바닥이었겠죠.
어떻게 견디셨어요?
제가 직접 세보니, 항암 할 때 나타나는 증세가 30가지가 넘어요. 구역질도 나오고, 어지럽기도 하고, 입술이랑 혀가 헤지기도 하고요. 목구멍도 아프고 손끝이 까지고, 손가락·발가락에 피가 나고, 발바닥도 아파요. 그때그때 증상별로 대처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입이 아파서 밥을 못 먹으면 영양분을 섭취를 못 해서 회복을 못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입이 아플 때는 사이다를 먼저 한 잔 마시고, 감각을 마비시킨 뒤에 밥을 먹는 식으로 대처를 했어요.

나영무 원장은 항암치료 중 식사를 할 수 있었던 비법으로 '사이다'를 꼽았다. 중앙포토
탄산음료가 몸에 나쁘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뭐라도 먹는 거였어요. 꼭 사이다가 아니어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해요. 중요한 건 아픔을 그대로 방치하는 게 아니라 이를 줄일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거예요.
(항암 부작용으로) 손끝이 아프고 피가 날 때는 면장갑을 끼면 훨씬 괜찮았어요. 그래서 면장갑이랑 골무를 끼고 생활했습니다. 출근해서 타이핑할 때도, 골무를 끼고 천천히 독수리 타법으로 쳤던 기억이 나요. 배가 아플 때는 핫팩을 대는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작은 증상 하나라도 방치하면 전체 컨디션이 무너지기 때문에, 계속 관리하면서 버텼습니다.
항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
일단 체력이 중요하고, 체력이 되려면 영양분이 있어야 합니다. 영양분이 있어야 우리 세포들이 그걸 먹고 힘을 내는데, 운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조건 잘 먹어야 합니다. ‘흔히 고기가 나쁘다’ ‘기름이 나쁘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항암 치료를 할 때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따질 상황이 아니에요. 나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먹어야 합니다.
항암에 가장 도움 된 의외의 음식
자주 먹은 음식이 무엇일까요?
그때그때 달랐어요. 오늘은 잘 먹었던 음식이 다음 날 가면 또 구역질이 나고, 먹고 싶어서 차려놨다가도 막상 먹으면 못 먹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계속 반찬을 바꿔가며 먹었던 기억이 많이 나요. 중요한 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는 거였어요. 심지어 햄버거도 먹고 돈가스도 먹었어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 (연세대) 학생회관에 들러서 돈가스를 먹고 집에 가곤 했어요.

나영무 원장은 항암 치료 중에 기운을 차리기 위해 돈가스를 즐겨 먹었다. 중앙포토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도 먹었던 건가요?
네. 그때는 입맛이 없고 구역질이 나고 입이 아프기 때문에, 오히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이 더 잘 들어옵니다. 밋밋한 음식은 거의 손을 대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간이 세고 매운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매콤한 국수 전골도 자주 먹었어요. 약간 매콤하게 해서 먹으면, 면이라서 잘 넘어가고 고기도 같이 들어 있으니까 비교적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거든요.
여러 가지를 먹을 수 있는 뷔페 같은 곳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물론 비용 부담은 있지만, 가서 이것저것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영무 원장이 항암치료 중 병원에 출근했을 당시 챙겨 먹었던 식단.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골고루 챙겨 먹었다. 위 사진은 오리고기, 브로콜리, 무나물, 김치, 황태국, 밥, 수박. 아래 사진은 김, 무나물, 백김치, 총각김치, 제육볶음, 가지나물, 호박전, 청국장, 밥, 갈치구이. 사진 나영무 원장 제공
결국 음식 조절보다 체력 강화가 중요하다는 의미일까요?
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려야 암세포와 싸울 수 있습니다. 항암제라는 게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함께 죽이거든요. 그래서 더 힘든 건데, 결국 다시 회복하려면 정상 세포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잘 먹는 게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암을 이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재발을 막기 위해 음식 조절을 하는 게 맞습니다. 정리하면, 항암 치료 중에는 무조건 잘 먹고, 치료가 끝난 뒤에 조절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영양소는 무엇이었나요?
단백질이죠. 근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근육에 필요한 단백질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근육을 쓰기 위해서는 탄수화물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어떻게든 많이 먹으려고 애를 썼어요.
술·육식 안 한 의사, 암 걸린 이유
지금 돌이켜보니 암에 걸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비만도 아니고 육류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업무량이 상당히 많았어요. 무리하게 일했던 것,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이 크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식습관의 영향도 크지 않았나 생각해요. 규칙적으로 먹긴 했지만, 가끔 기름지고 맵고 짠 음식을 먹긴 했거든요. 여러 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순하고 싱겁게 먹고 있는 편이에요.
항암을 할 때 어떤 마인드가 필요할까요? 긍정적인 생각도 안 들 때가 있잖아요.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안 받을 수 있지?’ 싶죠. 그런데 암에 걸리면 병 자체로도 스트레스인데 일상생활에서도 못 하는 게 많아지니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를 완전히 피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나영무 원장은 긍정적인 마인드셋의 비결로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관리하라"고 강조한다. 김경록 기자
그래서 중요한 건 관리예요. 저는 ‘안 될 일은 어쩔 수 없다, 또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포기라기보다는 약간의 체념, 달관이라고 할까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훨씬 편해져요. 계속 한 가지 생각에 꽂히면,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걱정이 커지게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도움이 될 게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좋아질까’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하면서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지도 생기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안 되더라도 ‘할 수 있어’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이 방향으로 가보자’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식으로 계속 생각을 바꾸는 게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의사가 지켜본, 잘 낫는 환자 특징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땐 직장암 4기라서 거의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 이거 빨리 치료해야 되겠다’ ‘치료하면 될거야’ 하는 단순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태도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환자분 중에서도 걱정을 많이 하는 분이 있고, 강한 의지를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긍정적인 분들은 거의 다 좋아지세요. 그걸 보면서 은연중에 ‘아,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무기력이 크게 찾아오는 날은 어떻게 버티셨나요?
항암 치료를 하면 몸이 완전히 처져서 휴대폰을 들 힘도 없을 때가 많아요. 그냥 누워서 숨만 쉬는 상태, 사람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친구들한테 전화도 안 와요. 다들 겁이 나서 못 하는 거죠.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요. 그러다 보면 집 안에서 혼자 고립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일을 하려고 했어요. 하루에 환자 한두 명이라도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의욕도 생기고, ‘빨리 나아서 다시 제대로 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프더라도 요양원 같은 곳에 숨을 게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병과 함께 싸워나가는 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집에 누워만 있는 건 진짜 휴식이 아닌 거네요.
그렇죠. 보통 쉬라고 하면 가만히 누워 있는 걸 떠올리는데, 그것만이 휴식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밖에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4월 27일(월) 발행하는 2편에서는 나영무 원장의 항암 운동 비결이 이어집니다.
정세희·전율 기자 중앙일보 발행 일시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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