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은 ‘통증의 왕’으로 불리는 질병이다. 몸 한쪽에 불이 붙은 듯한 통증이 생기고, 발진이 지나간 뒤에도 신경통이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래서 50세가 넘으면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라고 의료진은 권고한다. 하지만 대상포진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게 발진과 이로 인한 통증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이하 수두 바이러스)의 위력은 그저 화끈거리는 통증에만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포진은 피부 통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연구들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재활성화가 치매 위험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Gemini AI 생성 이미지.
이 바이러스는 대개 어릴 때 감염되고, 수두로 나타난다. 수두로 인한 물집은 결국엔 사라지지만,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다. 신경계에 잠복해 오래오래 머문다. 코넬리아 판 뒤인(Cornelia van Duijn)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수두 바이러스는 어린 시절에 처음 노출된 이래 우리 몸에서 60년 넘게 잠복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엔 촘촘한 방어 체계인 면역이 있는데,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죽지 않고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걸까.
수두 바이러스는 헤르페스 계열의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 집안 특성이 일당이 소탕되도 잔당이 숨죽이고 납작 엎드려 오래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특히 수두 바이러스가 더 악독한 건 신경세포 안에 숨기 때문이다. 신경세포는 몸에서 매우 중요한 세포이므로 면역세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그렇게 살아남은 수두 바이러스는 나이가 들고 면역이 떨어지면 다시 튀어나온다. 그게 신경계를 타고 발진을 일으키는데, 이를 대상포진이라 한다.
문제는 그저 피부 발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염증, 혈관, 신경계 쪽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픈 건 피부이지만, 더 타격을 입는 건 뇌가 될 수도 있다. 판 뒤인 교수는 “오랜 시간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 매우 불쾌한 질환인 대상포진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치매에도 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수두 바이러스는 치매 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잔인한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이러스와 치매 분야 세계 석학인 판 뒤인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상포진 바이러스를 막고 치매로부터 우리 뇌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목차
① 79세와 80세의 운명을 가른 하루
② 대상포진의 위험성
③ 치매 막는 백신, 언제 어떤 걸 맞아야 하나
④ 바쁜 분들을 위한 세 줄 요약
🎂79세와 80세의 운명을 가른 하루
사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증명이 쉽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일이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걸 보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백신을 맞는 사람은 원래 건강관리에 더 적극적이고, 병원도 더 잘 가고, 생활습관도 더 좋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건강한 사용자 편향 때문에, 그동안 백신과 치매의 연관성 연구는 늘 흥미롭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런데 2025년 실린 네이처 논문은 이 문제를 아주 절묘하게 비켜갔다. 연구팀은 웨일스에서 2013년부터 시행된 대상포진 백신 프로그램 참가자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당시 웨일스는 1933년 9월 2일 이후 출생자에게만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이로 79세 이하인 사람들은 백신을 공짜로 맞고, 이보다 하루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백신을 돈 주고 맞아야 했다.
이 차이는 접종률에 있어서도 절벽과 같은 격차를 낳았다. 공짜 백신 그룹의 접종률은 47.2%였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은 고작 0.01%에 불과했다.

웨일스 연구의 힘은 출생일 기준이라는 우연한 정책 덕분에, 거의 무작위시험처럼 백신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작 하루 차이로 백신 접종률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민서 그래픽.
나이는 거의 비슷하지만, 대상포진 백신 접종률만 크게 차이 나는 자연 실험의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차이는 7년 뒤 치매 진단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쪽은 새롭게 치매에 진단될 위험이 3.5%포인트 낮았다. 상대위험으로 보면 20% 감소했다. 이 효과는 여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치매 발생은 큰 차이를 보였다. 박지은 그래픽.
연구팀이 교육 수준, 다른 예방접종, 당뇨·심장병·암 같은 질환, 예방을 위한 행동 등의 변수를 모두 고려했지만,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는 뚜렷했다. 이 논문은 백신 맞은 사람이 원래 건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치매 보호 효과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대상포진의 위험성
웨일스 연구가 백신이 치매를 줄일 수 있다는 걸 인과에 가깝게 증명해 냈다면, 2025년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코넬리아 판 뒤인 교수팀 논문은 그 이유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이 연구는 미국 1억명 이상 전자의무기록을 바탕으로, 수두 바이러스의 재활성화가 치매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추적했다.
연구팀은 인구통계, 사회경제적 요인, 동반질환, 약물, 의료 이용 행동 대리 지표 등 거의 400개 변수까지 통제했다. 그리고 핵심 가설을 다섯 단계로 나눠 검증했다.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되는 일이 잦을수록 치매가 늘어나는가”, “백신으로 재활성화를 막으면 치매도 줄어드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대상포진에 두 번 이상 걸렸던 사람은 한 번 걸렸던 사람에 비해 치매 위험이 더 높았다. 대상포진에 많이 걸릴수록 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는 의미다. 박지은 그래픽.
결과는 꽤 일관됐다. 대상포진을 한 번만 앓은 사람보다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앓은 사람은, 두 번째 발병 뒤 3년에서 9년 사이 치매 위험이 7~9% 더 높았다. 반대로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은 대조 백신인 폐렴구균 다당류 백신(PPSV23)을 맞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낮았다.
특히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RZV, 싱그릭스)을 1회만 맞은 경우보다 2회 접종을 완료한 경우, 치매 위험이 더 감소했다. 연구팀은 “수두 바이러스 재활성화 자체가 치매의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대상포진은 그저 통증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는 일이 누적될수록 뇌에 더 큰 흉터를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싱그릭스를 맞은 사람들은 대조군인 폐렴구균 백신을 맞은 사람에 비해 치매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다. 특히 백신 접종 후 3년까지 보호 효과가 컸다. 박지은 그래픽.
판 뒤인 교수는 “대상포진과 치매의 연결 고리가 단일 경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혈관염이나 미세혈관 손상을 통해, 일부는 신경퇴행 경로를 통해 작동할 수 있고, 특히 바이러스가 타우 단백질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쪽이 알츠하이머병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밀로이드가 많이 쌓여 있어도 타우 대사가 무너지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있지만, 타우가 꼬이기 시작하면 치매로 가는 마지막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대상포진은 뇌에서 이미 진행 중이던 병리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존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신경계를 따라 나타나는 대상포진은 발진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이러스 재활성화로 뇌에 부담을 주는 게 핵심이다. 이민서 그래픽.
💉치매 막는 백신, 언제 어떤 걸 맞아야 하나
그렇다면 치매를 막기 위해 아무 대상포진 백신이나 맞으면 될까.
모든 대상포진 백신이 다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효과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재 미국 기준으로 조스타백스(Zostavax) 같은 생백신은 2020년 이후 더는 사용되지 않고, 표준은 싱그릭스(Shingrix) 같은 재조합 백신이 자리잡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50세 이상 성인에게 싱그릭스 2회 접종을 권고하고, 면역저하가 있거나 예정된 19세 이상 성인에게도 2회 접종을 권고한다. 2차 접종은 보통 2~6개월 뒤에 맞는다.

차세대 백신인 싱그릭스가 기존 사용되던 조스타박스에 비해 치매 보호 효과가 더 컸다. 박지은 그래픽.
예방력 자체도 강하다. CDC에 따르면 싱그릭스는 건강한 50~69세에서 대상포진 예방효과가 97%, 70세 이상에서도 91% 수준이다. 대상포진 뒤 신경통(PHN) 예방효과도 89~91% 수준으로 높다.
장기 지속성도 꽤 좋다. 현재 CDC 면역이 7년 이상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치매 연구를 진행한 판 뒤인 교수는 인터뷰에서 “싱그릭스의 치매 보호 효과가 3년차에 가장 강력하므로 5년이 지났을 때 부스터 차원에서 재접종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대상포진의 위험을 피하고 치매 보호 효과를 얻으려면 대상포진 백신 중에서도 싱그릭스를 맞되 2회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다.

판 뒤인 교수는 “수두 바이러스는 미세한 뇌졸중도 유발할 수 있고, 혈관성 치매에도 강력히 관여한다”며 “알츠하이머병과 관련해서도 해마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지은 그래픽.
재조합 백신이 왜 효과가 더 강력해 보이는지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2024년 네이처 메디신 연구는 미국 전자의무기록 데이터를 이용해, 재조합 백신을 맞은 사람이 생백신을 맞은 사람보다 치매 진단 없이 사는 시간이 17% 더 길고, 나중에 치매가 생긴 사람 기준으로는 평균 164일 정도 진단이 늦춰졌다고 보고했다. 여성에서 효과가 더 컸다.
판 뒤인 교수는 “싱그릭스 2회 접종은 면역 시스템을 두 번 깨워 더 강하게 경계 태세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신 연구들은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를 나타내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예방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결과를 그저 일부 관찰 연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축소할 필요도 없다. 웨일스 자연 실험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인과에 가까운 증거이고, 뒤이은 미국 1억명 분석 연구는 대상포진이 여러 번 걸릴수록 더 위험하고, 백신이 재활성화를 줄일수록 치매도 줄어든다는 뚜렷한 밑그림을 보탰다.
따라서 50세를 넘었고 아직 대상포진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최소한 한 번은 접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여성, 만성질환자, 면역저하 상태이거나 대상포진을 이미 한 번 앓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대상포진 백신은 원래도 맞을 가치가 큰 백신이었다. 평생 3명 중 1명은 대상포진을 겪고, 나이 들수록 위험은 올라간다. 여기에 뇌까지 지킬 가능성이 추가됐다면, 이제 이 백신은 단순한 통증 예방 주사가 아니라 노년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50세 이후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보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Higgsfield AI 생성 이미지.
3️⃣바쁜 분들을 위한 세 줄 요약
① 웨일스 자연 실험은 대상포진 백신이 7년간 신규 치매 진단 위험을 약 20% 낮췄다는 강한 근거를 제시했다.
② 판 뒤인 교수 연구팀의 미국 1억명 분석에선 대상포진이 여러 번 재발한 사람이 치매 위험도 더 높았고, 백신 접종자, 특히 재조합 백신 2회 접종자에서 치매 위험이 감소했다.
③ 특히 50대 이상이거나 면역이 약한 사람에게, 재조합 백신인 싱그릭스를 2회 맞는 것이 대상포진 예방뿐 아니라 치매 보호 효과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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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정봉 정수경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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