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병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Pixabay)
어제만 해도 모든 게 괜찮았어요. 그런데 악마가 당신의 기억을 가져가 버렸죠. (Things were all good yesterday. And then the devil took your memory.)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에드 시런은 2014년 발표한 노래 ‘어파이어 러브(Afire Love)’에서 20년 동안 알츠하이머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할아버지를 이렇게 추모했다.
치매 환자의 기억을 앗아가는 이 ‘악마’는 과학적으론 ‘아밀로이드 베타(Aβ)’라는 독성 단백질로 설명된다. 치아에 치석이 끼어 치아 건강을 해치듯 이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며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 다행스럽게도 아밀로이드 베타는 자는 동안 뇌에서 씻겨져 배출된다.
하지만 수면 중 아밀로이드 베타가 얼마나 잘 빠져나가는지는 뇌를 열어 관찰해야 하는 실험 특성상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윤창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와 배현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공동 연구팀이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잠든 사이 뇌 속에서는 치매를 막는 ‘뇌 청소부’가 깨어난다. 이 청소부가 가장 활발히 일하는 때는 언제일까? ‘잠’ 하나로 뇌를 치매로부터 지킬 수 있다면 어떨까.
치매라는 병마(病魔)와 수면의 연결 고리를 이번 연구 책임자인 윤창호 교수에게 물었다.
🧠치매 막는 ‘수면 중 뇌 세척’이란
뇌에 단백질이 왜 쌓이는 것인가.
뇌는 체중의 1.5%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의 20%를 사용한다. 에너지 소비량으로 따지면 몸 전체의 약 5분의 1을 뇌가 쓴다는 뜻이다. 요리를 하면 주변에 부산물이 생기는 것처럼 뇌 활동이 많아질수록 아밀로이드 단백질 같은 노폐물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이런 단백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은 뇌에 이상(異常) 단백질이 과도하게 쌓이면서 발생한다. 이들은 너무 많이 만들어졌거나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지나치게 축적된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은 청소가 잘 이뤄지지 않아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윤창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지난 9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노폐물이 청소되나.
요리를 마친 뒤 설거지를 나중에 하듯 뇌도 낮에는 청소하지 않고 밤에 잠잘 때 청소한다. 낮 동안 활동하며 쌓인 노폐물이 수면 중 배출되는 것이다.
청소는 어떻게 이뤄지나.
뇌와 머리뼈 사이에는 뇌척수액이라는 맑은 액체가 있다. 잠이 들면 이 뇌척수액이 혈관 주위 공간을 따라 뇌에 스며들어 노폐물을 씻어내고, 뇌수막 림프계와 경부 림프절을 통해 배출된다. 이 과정을 ‘아교 림프계(Glymphatic System)’라고 한다. 이런 기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떨어진다.
💡뇌 찌꺼기 치우는 ‘아교 림프계’
윤 교수에 따르면 잠이 든 지 30분 안에 세포 간질액(세포와 세포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액체)의 양이 60% 증가한다. 이는 뇌척수액이 그만큼 스며들었다는 뜻이다. 이후 이 액체가 빠져나가면서 뇌를 계속 씻어낸다. 이처럼 아교 림프계는 뇌 속 찌꺼기를 제거해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윤 교수는 “아교 림프계는 깨어 있을 때가 아니라 잠잘 때 활성화된다. 그래서 잠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무선 근적외선 분광기. 이마에 부착해 수면 중 뇌 수분량을 측정하면 아교 림프계 활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하지만 최근까지는 아교 림프계가 수면 중 시시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어려웠다. 뇌를 열고 내부 변화를 직접 관찰할 수는 없고,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위해서는 뇌척수액에 조영제를 투여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수면 시간(7~8시간) 동안 이를 지속해서 관찰하기도 쉽지 않았다.
윤 교수 연구팀은 수면 중 뇌의 수분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단서로 삼았다. 이후 근적외선으로 뇌 수분량,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무선 근적외선 분광기’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뇌 내 체액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장치는 근적외선을 두개골 내부로 투과시키기 때문에 뇌를 열지 않고도(비침습적으로) 내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 결과를 설명해 달라.
건강한 성인 41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더니 잠이 든 뒤 깊은 잠인 ‘비(非) 렘수면(NREM)’으로 진행하는 동안 전두엽 수분량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분량은 자다가 깨면 떨어졌다.

무선 근적외선 분광기로 5분마다 측정한 뇌 수분량 변화.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할수록 뇌 수분량이 뚜렷하게 증가하며, 아교 림프계에 의한 뇌 세척 활동이 활발해졌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언제 수분량이 가장 많이 증가했나.
사람은 잠자리에 들면 깊은 잠(비 렘수면)에 빠졌다가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면 렘 수면(REM) 단계에 도달한다. 렘 수면은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어있을 때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다. 따라서 뇌의 수분량은 깊은 잠에 처음 진입하는 수면 초반에 가장 많이 증가한다. 이 역시 이번 연구에서 입증됐다.
깊은 잠을 자고 싶다고 자게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깊은 잠을 억지로 자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자면 된다. 다만 커피나 술, 늦은 시간 스마트폰 사용처럼 깊은 잠을 방해하는 요인을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술이나 멜라토닌 영양제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자는 게 낫나.
일부러 안 자는 것보다 입면(入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술은 수면의 질을 나쁘게 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아교 림프계 활성이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잠은 ‘짝사랑?’ 잘 자고 싶다면 기억할 것들
윤 교수는 잠을 ‘짝사랑’에 빗댄다. “내가 좋다고 매달려도 그 대상은 오지 않고, 오히려 도망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잠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건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걱정이 오히려 잠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뜻이다.
치매와 잠의 연관성을 설명해 달라.
수면의 양이나 질이 좋지 않으면 수면 고유의 기능이 방해 받아 뇌 건강에 영향을 준다. 아교 림프계 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혈압이 오르고 체중이 늘며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 우울증 발병 위험도 커진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은 게 없다. 치매 발병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떤 잠이 좋은 잠인가.
자신에게 맞는 수면의 양과 리듬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주말에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주말에 몰아서 자며 ‘수면 빚’을 갚으려 하면 평일의 수면 리듬이 오히려 무너질 수 있다. 주말에 몰아 자지 않도록 평소에도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오전 2시에 자서 오전 10시에 일어나더라도 그 패턴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늦게 자는 사람은 자꾸 더 늦게 자려는 경향이 생긴다. 업무나 약속으로 부득이하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수면 부족이나 일주기 리듬 장애를 겪을 수 있다.
윤 교수는 “잠은 쟁취하는 대상이 아니다”며 “무엇보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에게 맞는 수면 리듬을 찾고, 수면의 질이 문제라면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며 “규칙적인 운동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깊은 잠' 자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네 가지 조언

윤창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지난 9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수면 의학 전문가인 윤창호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규칙적인 수면 습관’이다. 이를 위해 명심해야 할 네 가지를 정리했다.
1️⃣잠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
“자야 한다”는 강박과 “못 자면 내일 힘들다”는 불안은 잠을 더 멀어지게 한다. 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잠이 찾아올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2️⃣리듬 유지가 기본
주중과 주말의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처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수면 건강의 핵심이다.
3️⃣잠자리에서는 ‘잠’만
침대에서 휴대전화나 TV를 보는 습관을 피해야 한다. 깬 채로 오래 누워 있으면 뇌가 침대를 각성의 공간으로 인식해 수면을 방해한다.
4️⃣낮잠은 ‘조삼모사’
낮 동안 쌓인 졸림이 밤의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긴 낮잠은 밤의 수면 욕구를 줄여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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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채혜선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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