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첨단재생의료법 개정안 시행
일본처럼 부작용만 없으면 임상시험 단계 치료제 환자 시술 허용
항노화·미용 목적 불가
관절염, 자가면역질환, 파킨슨병, 암 등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자가 개발 단계에 있는 줄기세포나 면역세포 치료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다음 달 열린다.
그동안 국내는 규제에 막혀 환자가 임상 연구에 참여하는 것 외엔 개발 중인 세포·유전자 치료법을 쓸 수 없었다. 이에 이를 허용한 일본으로 원정 치료를 가는 환자도 적지 않았는데, 법을 손질해 다음 달 시행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첨단재생바이오법(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 법률안’이 오는 2월 21일 시행된다. 줄여 ‘첨생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나 중대·희귀·난치질환에 세포·유전자 치료법 같은 새로운 첨단 재생의료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하고자 2020년 8월 제정됐다.
그동안 개발 연구 단계에서 안전성·유효성이 확인된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연구 목적으로만 쓸 수 있고 치료 목적으로 쓸 수 없었는데, 이를 허용하고, 병원과 기업이 일부 수익화할 수 있도록 한 게 개정법의 핵심이다. 줄기세포나 T세포·자연살해(NK) 세포 등 면역세포를 활용한 세포 치료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유전자 치료제를 활용한 치료가 대표적이다.
현재 국무조정실과 법제처는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관련 하위 법령을 심사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첨생법이 시행되는 2월 21일 전 하위 법령을 공표할 예정이며, 복지부가 설명회도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의원, 치료계획 심사 거쳐 치료 시작
법이 시행되면 환자가 곧장 병원에서 줄기세포 주사 치료 같은 재생의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동 산하의 재생의료심의위원회를 통해 안전성과 치료계획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
재생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의원이 치료 계획을 제출하면, 심의위가 이를 검토해 승인 여부를 정한다. 이후 의료진이 환자에게 치료법을 적용하는 식이다.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인 만큼 환자 안전을 위한 절차를 둔 것이다.
정순길 보건복지부 재생의료정책과장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심의위원회를 열어 임상 연구계획의 적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같은 방식으로, 개정된 법 시행일인 2월 21일부터 재생의료기관이 각각 치료계획을 신청을 시작하면 3월 심의위부터 이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심의위는 김동익 삼성서울병원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주요 대학과 대학병원 소속 교수, 환자단체장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심사를 거쳐 지정된 재생의료기관은 전국 주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원 등 총 112곳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시장이므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는 의료기관마다 다르다.
◇관절염·자가면역질환, 치료 수요 클 것
대상 질환에 대한 제한은 거의 없다. 정순길 재생의료정책과장은 “이 법은 환자마다 다양한 치료 접근 기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나 중대·희귀·난치질환을 대상으로 둬, 적용 범위를 넓게 열어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건강한 사람이 단순히 젊어지고 싶어서, 즉 항노화(역노화)를 위한 예방·미용·성형 목적으로 개발 중인 세포·유전자 치료 시술을 받기는 어렵다. 정순길 재생의료정책과장은 관련 질의에 “(첨생법은) 법률상 중대·희귀·난치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항노화 같은 예방 목적이 치료계획에 당장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환자 수는 많은데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질환군에서 재생의료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관절염이 꼽힌다. 관절 연골이 파괴되고 염증성 변화가 일어나는 관절염은 약물을 주입해 통증을 줄이거나 수술로 인공관절을 넣는 정도가 현 치료법의 전부다.
줄기세포·엑소좀 치료제를 개발 중인 최승호 파나셀바이오텍 대표(선이고은성형외과 원장)는 “관절염 영역에서 줄기세포 치료 수요가 가장 클 것”이라며 “손상된 연골조직에 줄기세포를 주입해 줄기세포가 연골 조직으로 분화하도록 돕는 원리인데, 관절 스케일에 따라 적용하는 기술과 세포를 넣는 방식, 비율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자가면역질환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환자가 늘어난 폐 섬유화,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 영역도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을 활용한 치료법이 새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난소의 호르몬 균형이 깨져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고 배란 장애가 나타나는 다낭성난소증후군,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인 전신홍반루푸스(SLE, 루푸스병), 머리·가슴·팔다리뼈의 변형과 성장 장애를 일으키는 선천성 구루병 등이 줄기세포와 줄기세포에서 뽑아낸 엑소좀을 주사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엑소좀은 세포에서 유래된 지름 50~200nm의 작은 물질로,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돕는 역할을 한다. 최 대표는 “엑소좀은 다양한 생체 활성 물질들을 포함하고 있어 세포 재생, 활성 산소 제거를 비롯한 다양한 효과를 낸다”며 “여러 연구에서 치료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손을 떨거나 움직임이 둔해진 파킨슨병 환자의 증상을 완화, 개선하는 데 줄기세포 치료제를 쓰고, T세포·자연살해(NK) 세포 등 면역세포를 활용해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시도도 할 수 있다.
◇ “치료제 개발 탄력… 재생의료 시장 확대 기대”
법 시행으로 환자 데이터가 쌓이면서 치료제 개발이 촉진될 수 있고, 일본처럼 국내외 수요가 늘어 새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자에게 치료비 청구가 가능해진 만큼, 치료제 개발 기업의 재무 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수혜 기업을 찾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유의미한 임상 연구 데이터를 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엔셀(19,310원 ▼ 190 -0.97%)은 손과 발 근육이 위축되는 희소 난치성 질환 샤르코마리투스병(CMT) 치료제 EN001를 개발 중이다. 이는 독자적인 기술로 배양한 중간엽 줄기세포치료제다. 손상된 신경으로 이동해 치료 물질을 분비하고, 신경세포를 둘러싼 물질인 신경 수초를 재생시키는 방식이다. 회사는 환자 대상 저용량군 투여 임상 연구에서 EN001의 안전성과 탐색적 치료 효과를 확인해, 지난해 12월 CMT 1A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b상 고용량군 투여를 개시했으며, 내년까지 환자 대상 투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스바이오메딕스(23,300원 ▲ 450 1.97%)는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TED-A9를 개발 중이다. 2023년부터 국내 파킨슨병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임상 1·2a상 시험을 진행했는데, 최근 배아줄기세포치료제를 이식받은 파킨슨병 환자가 1년 뒤 배드민턴을 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김동욱 에스바이오메딕스 최고기술책임자(연세대 의대 교수)는 “첨생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좀 더 빨리 파킨슨병 환자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바이오텍(11,220원 ▼ 190 -1.67%)은 자가 유래 항암 NK세포 치료제 ‘CHANK-101′로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환자 대상 임상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아이이노베이션(8,930원 ▼ 280 -3.04%)은 관계사인 지아이셀의 동종유래 NK세포치료제와 지아이이노베이션이 개발 중인 차세대 면역항암제 GI-101A 병용요법을 재발성·불응성 고형암 환자 대상으로 평가하는 시험을 추진 중이다.
☞줄기세포
뼈·뇌·근육·피부·심장 등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를 만들어내는 세포다. 수정란이나 골수, 제대혈(탯줄혈액) 등에서 얻을 수 있는데, 어떤 세포로 키워내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세포 분열이 왕성한 배아 단계의 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배아줄기세포(ESC), 피부 세포 등 다 자란 세포에 유전 기술을 적용해 역분화시켜 원시 상태로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제대혈이나 골수, 지방 조직에 있는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하는 성체줄기세포다.
허지윤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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