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상을 뒤바꾸다] [1] AI 날개 단 생명공학
‘신약 개발 연구실’ 하면 통상 떠오르는 이미지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플라스크나 원심분리기 같은 실험 기구를 살피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달 방문한 서울대학교 약학관 208호 연구실은 마치 IT(정보기술) 사무실 같았다. 평상복 차림의 연구원들이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연구실을 이끄는 서울대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의학과 이주용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할 뿐 아니라 성공률은 100배까지도 높아진다”며 “단백질을 기본으로 하는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 분야에서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AI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생명공학에 날개 단 AI
이 연구실에서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은 기존의 물리·화학적 실험을 통한 개발 과정과 전혀 다르다. 보통 백신은 인체에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소량 투입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한다. 이미 출시된 백신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하거나 개발해야 했다.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기존 백신의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이 중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부분을 추출하고, 다른 구성 성분은 새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전에도 새로운 백신 개발을 위해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 확률은 1% 미만이었다”며 “AI를 활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개발하면 성공 확률이 10~20%로 오르기 때문에 훨씬 다양한 백신을 빠른 시간 안에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AI를 통한 단백질 분석과 설계는 바이오 업계에선 ‘혁명’이다. 바이러스·세균 등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항원(抗原)은 단백질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AI로 항원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표적으로 하는 단백질(항체)을 설계하면, 신약 개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단백질 구조 파악은 1930년대부터 ‘질병 치료의 핵심 열쇠’로 불려왔다. 인류가 단백질 구조 분석에 첫 번째로 성공한 것은 1950년대가 되어서였다. 이후로도 세계 연구자들이 단백질 구조 파악에 나섰지만 1971년까지 7종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과거에는 단백질에 X선을 쬐는 식으로 실험을 통해 구조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저온 전자현미경 분석법 등이 개발돼 연구에 속도가 붙었음에도 2018년까지 구조를 확인한 단백질은 14만여 종에 그쳤다. 이는 지구 상에서 존재가 확인된 단백질 2억종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였다. 이러한 속도로는 단백질 2억종 구조를 확인하기까지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2018년 첫선을 보인 단백질 구조 분석 AI ‘알파폴드’는 순식간에 한계를 뛰어넘었다. 4년 만에 단백질 2억종 전체의 구조를 예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파폴드는 기존에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 데이터를 학습해 아미노산 서열만으로도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냈다.
◇단백질 구조 예측에서 설계로
지난해 ‘알파폴드3′로 단백질의 결합 구조까지 정확히 예측해낸 구글 딥마인드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AI ‘알파 프로테오’를 후속으로 공개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AI다. 엔비디아의 ‘바이오니모’, 메타의 ‘ESM 폴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 연구실의 ‘로제타폴드’ 등의 AI도 단백질 설계 단계로 진화했다.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신약뿐 아니라 다양한 신소재 개발도 가능해졌다.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개발하거나, 뼈·치아의 재생을 돕는 복합 소재를 개발하는 등 가능성이 무한하다. 이주용 교수는 “인공 단백질을 AI로 대량 생산하게 되면 바이오 의약품 단가도 대폭 낮아질 것”이라며 “AI가 인류의 희귀 난치병 정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김효인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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