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과일 최강자
딸기의 자기 계발 특강
안녕! 나야, 딸기. 요즘 나 인기 최고지? 너무 맛있어 비싸도 눈 딱 감고 산다고? 추석 송편, 설날 떡국처럼 크리스마스엔 딸기 케이크가 시그니처 음식이라고? 내가 어떻게 잘나가게 됐는지 알려줄게. 이름하여 딸기의 자기 계발 특강.
먼저 옛날이야기 하나. 병든 노모가 한겨울에 딸기를 먹고 싶다 했어. 아들은 눈 덮인 산을 헤매고 다녔지. 정성에 감복한 산신령이 딸기 나는 곳을 알려줬어. 효자는 딸기 세 송이를 구해 어머니를 낫게 했대.
재밌으면 하나 더. 욕심 많은 사또가 이방더러 겨울 산딸기를 구해오라 했어. 상사 갑질에 이방은 앓아누웠지. 이방의 똘똘한 아들이 사또를 찾아갔어. “제 아비가 딸기를 따다가 뱀에게 물려 몸져누웠습니다.” “이놈아, 이 겨울에 뱀이 어디 있냐?” “그럼 이 겨울에 딸기는 어디 있죠?” 사또 말문이 막혔대.
이렇게 ‘겨울 딸기’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을 상징했어. 하지만 이제 겨울 하면 딸기, 딸기 하면 겨울이야. 겨울 과일의 왕이지.
딸기는 최근 3년간 3대 대형마트에서 모든 과일을 통틀어 연 매출 1위를 차지했어. 연중 과일인 사과, 기존의 겨울 제철 과일 귤도 밀어냈다니까. 겨울 농한기에 농가 고소득을 보장하는 효자 작목이자, 침체로 얼어붙은 유통가와 외식 업계의 효자 상품이지. 이 몸은 근본부터 효자라고.
잠깐, 효자라고 우직하기만 한 건 아냐. 내가 겨울 제철 과일로 자리 잡은 과정을 보면 ‘영리하다’는 감탄이 나올걸?
마이클 폴란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책 ‘욕망의 식물학’에서 “식물은 달콤함과 아름다움 같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생존과 번성을 보장받는다”고 했어. 나 역시 제철을 버리고, 터전도 옮기고, 잘나가는 종을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 그러니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는 혁신으로 거듭났다고.
자세히 들어봐. 내가 밭에서 나던 시절엔 6월이 제철이었어.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비닐하우스 재배가 퍼지며 수확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더니 10년 전부터 겨울이 됐어. 설 차례상에, 성탄 케이크에 올라오게 됐지. 그러다 10월에 나온 적도 있다니깐? 온난화로 여름이 길어져 모종이 비실대다 보니 요즘은 11월로 다시 늦춰졌지만.
유럽이 원산지인 나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저온성 과채류야. 낮은 온도에서 오래 숙성돼야 당도가 비축돼.
비닐하우스에서 혹한만 막아주면, 겨울에도 일조량이 풍부한 한국 특성상 딸기가 달고 단단하게 익는데다 유통에도 유리하지. 4월만 돼도 푹해서 딸기가 시고 물러져.
국내 딸기 시장의 강자는 설향(雪香)이야. 눈 속의 향기, 겨울철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게 특화된 품종이지. 원래 장희·육보 같은 일본 품종이 대세였는데 로열티로 연 30억원이 나갔대.
그러다 2005년 과즙 많고 달콤한 국산 설향이 개발되며 한국은 ‘딸기 독립’을 이뤘어. 설향은 이제 일본과 홍콩·싱가포르, 동남아로 비행기 타고 수출된단다.
내가 겨울을 택한 데는 자연산 비타민이 부족한 이 계절에 경쟁 과일이 적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어.
하지만 겨울이 진짜 딸기 제철은 아니기 때문에 매년 비싸져.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기름값, 전기료에 인건비까지 뛰니까. 이번 달 딸기 값은 작년보다 25% 올랐는데, 구매량은 11% 늘었대. 딸기 농가에선 도둑도 극성이야. 비닐하우스마다 CCTV를 돌릴 정도지.
겨울 딸기가 비싸도 사람들은 더 원해. 화려한 빨강-초록에 과즙 터질 듯한 반짝이는 외모만으로도 파티 분위기 나잖아. 원물도 귀하지만 딸기 마케팅도 갈수록 치열해져. 한 카페 프랜차이즈의 시즌 상품 ‘스트로베리 초코 생크림 케이크’는 10년간 1000만 개나 팔렸대.
요즘 딸기 주스에 딸기 찹쌀떡, 딸기 밀크티, 딸기 뚱카롱, 딸기 따기 체험까지 난리지? 호텔 딸기 뷔페는 둘이서 30만원은 우습다더라. MZ 세대 그 뭐냐,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1년에 한 번, 연말 작은 사치 부리고 인스타에 자랑한다 이거지.
하지만 맛있게 먹으면서 기억해줘. 딸기의 꽃말은 사랑과 우정, 존중과 보살핌이란 걸. 겨울에 진정 귀한 럭셔리는 그게 아닐까?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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