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상에서 다룬 내용
모든 체세포는 때가 되면 죽는다. 세포는 여러 번 복제를 거치면서 기능이 자연히 떨어진다. 그러면 스스로 죽음으로써 ‘줄기세포’에서 새로 만들어진 싱싱한 세포에 자리를 양보한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이에 극렬히 저항하는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암세포는 세포 사멸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무한 복제한다. 살아남기 위해 혈관을 끌어들이고 다른 세포와 조직을 침범한다. 아니 살아남는 걸 넘어 끝없이 성장만 하려 든다.
인간은 수술, 화학물질, 방사선, 면역요법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암세포 하나를 확실히 파괴하는 것조차 매우 까다로운 목표다.
그런데 최근 양자역학의 힘을 빌어 암을 확실히 제거하는 방법이 개발돼 주목 받고 있다. 빛의 입자인 광자에 때려 맞으면 규칙적으로 엄청나게 빨리 진동하는 분자를 이용한다. 실험실에서 거둔 결과지만, 암세포에 적용한 결과 100%에 가까운 제거 능력을 보였다.
이 분자는 어떻게 견고한 방어막을 뚫고 암세포를 박멸할 수 있을까. 언제 상용화가 가능할까.
📋목차
① 빛으로 암을 태우다
② 양자역학적 발견
③ 분자 잭해머
④ 박멸된 암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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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렸다 하면 백발백중이다. 암세포에 붙으면 거의 예외 없이 세포막을 파괴해 사멸시키는 ‘분자 무기’가 개발됐다. 이하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아래 텍스트는 영상 스크립트입니다.
💡빛으로 암을 태우다
수많은 최신 치료 기법이 나왔지만, 초기 암 치료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술입니다.
암 덩어리를 깨끗하게 도려내는 것이죠.
덩어리가 크면 보조 요법으로 줄인 다음에 제거하고요.
작으면 즉시 절제하는 게 최우선으로 고려됩니다.
암을 제거한 뒤엔 주변에 침식한 잔당들을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로 소탕하게 되죠.
암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방법 중엔 단순히 수술만 있는 게 아닙니다.
빛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광역학 치료와 광열 치료죠.
하지만 두 방식 모두 암세포를 완전히 사멸시키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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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빛은 암 치료에 이용됐다. 광역학치료는 1966년 유방암 치료에 최초로 사용됐다. 보통 활성산소로 암을 죽이는 방식인데, 종양 주변에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사진 미국 마요 클리닉
그런데 최근 빛과 함께 양자역학적 모델을 활용한 최첨단 암 파괴 공법이 개발됐습니다.
암세포 파괴율 99.9%라는 엄청난 결과를 내놨죠.
암세포를 거의 박멸시킨 이 놀라운 신기술에 대해 개발자 인터뷰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세상에는 화학물질을 쓰거나 빛 에너지를 가하면 특정 방향으로만 움직이며 돌아가는 물질이 있습니다.
이를 합성 분자 모터라고 합니다.
1999년 베르나르트 페링하 교수가 발견했고 201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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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모터의 기본적 구조. 빛 에너지를 받으면 가운데 세 개 분자가 모터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런 분자적 기계는 세포 크기의 작은 유기체를 파괴할 수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이 모터는 어디에 쓸모 있을까요.
2010년대 후반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박사는 이걸 보고 암 치료에 써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자 모터를 암세포 표면에 박으면 돌아가면서 세포막을 파괴할 거라는 생각이었죠.
실제로 이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고 암세포 파괴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 모터는 자외선에서만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자외선은 피부 침투 깊이가 0.5㎜밖에 안 됩니다.
사실 몸속에 있는 암을 치료하기 불가능한 깊이죠.
“분자 모터의 문제점은 자외선에서만 작동한다는 거였어요.
임상에 적용하려면 근적외선이 필요하죠.
조직에 더 깊이 침투하니까요.”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양자역학적 발견
하지만 그즈음 그와 같은 학교 양자역학자들이 신기한 현상 하나를 찾아냅니다.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PAH라는 물질 중에서 빛을 가하면 아주 규칙적으로 진동한다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죠.
사실 PAH는 뭔가를 불에 태우면 나오는 그을음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중 벤조피렌은 강력한 발암물질이죠.
하지만 PAH 중에는 아미노시아닌 같은 물질도 있습니다.
이 물질은 빛을 받으면 복잡한 분자구조 전체가 아주 조화롭고 리드미컬하게 진동합니다.
아얄라 오로스코는 이 진동에서 잭해머를 떠올렸습니다.
진동하는 드릴로 단단한 암석도 파괴하는 공사용 장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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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환 방향족 탄화수소는 여러 고리가 연결된 분자 구조물이다. 그중 아미노시아닌은 빛 에너지를 받으면 일관된 방향과 속도로 움직인다. 이를 활용하면 세포막을 완전히 부술 수 있다. 사진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분자 안 전자의 움직임은 일관적이에요.
그래서 분자 안의 원자핵이 매우 빠르게 진동하고요.
마치 분자는 숨 쉬는 것처럼 보이죠.
여기 제 뒤에 있는 스크린에서 보이듯이요.
여기 보이는 분자들은 숨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나게 빨라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세포막조차도 열어버리고 부숴버리죠.
뒤 스크린의 그림에서 보이는 건 1초에 한 번 진동하고 있어요.
이건 그냥 애니메이션이고요.
실제로 진동은 1초에 40조 번 일어납니다.
이건 마치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잭해머’를 닮았어요.
콘크리트를 깨부수는 데 쓰는 것 말이죠.”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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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얄라 오로스코 박사는 “분자 잭해머는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나 프랑크-콘돈 근사와 같은 양자역학적 해석으로 일부 설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 분자 잭해머의 진동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건 현재의 물리학, 수학 수준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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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쐬면 분자가 진동하면서 마치 ‘잭해머’처럼 암세포를 부순다. 잭해머는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휴대용 착암기다. 뾰족한 쇠기둥의 진동으로 콘크리트 같은 암석을 파괴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분자 잭해머
아미노시아닌을 암세포 막에 결합해 빛을 쬐면 엄청난 속도의 진동이 발생하면서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립니다.
구멍이 뚫린 암세포는 몇 분 안에 거품을 물고 숨을 거두죠.
이 분자 잭해머는 광역학 치료나 광열 치료처럼 빛을 이용하는 기법과 비교해도 아주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적은 농도에서, 작은 출력의 빛으로 훨씬 빨리 암세포를 파괴했어요.
피부에 몇 ㎜밖에 침투 못 하는 자외선과 달리 10㎝ 깊이까지 투과하는 근적외선을 쓴다는 장점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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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세포막에 붙은 아미노시아닌이 빛을 받고 진동하면 세포막은 순식간에 파괴된다. 이후 암세포는 몇 분 안에 사멸하고 만다.
“광역학 치료의 단점은 산소가 낮은 환경에서는 잘 안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분자 잭해머는 산소 농도와 관계 없이 기계적으로 작동해서 세포막을 열어젖히죠.
광열치료는 보통 높은 농도의 분자와 충분한 양의 열이 있어야 암세포를 죽일 수 있어요.
하지만 분자 잭해머는 50배, 100배 적은 농도를 써요.
광열치료에서 쓰는 빛은 1000mW가 필요하지만, 분자 잭해머는 80mW면 충분해요. 10배 넘게 덜 들죠.”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박멸된 암세포
암세포에 분자 잭해머를 부착한 뒤 10분 동안 빛을 쏘여 봤습니다.
그랬더니 암세포 중 99.9%의 세포막이 파괴됐습니다.
거의 전멸 수준이죠.
보시면 염색한 암세포가 거의 박멸된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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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잭해머와 빛을 이용하자 암세포의 99.9%가 파괴됐다.
“99%라는 말이 참 흥미롭죠.
그건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으로 내야 해서 그렇게 한 거고요.
그래서 보수적으로 잡아야 했어요.
왜냐하면 100%라고 하면, 심사할 때 좀 트러블이 있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림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두 번째 방법은 색깔로 나타내는 게 아니었거든요.
거기서 살아남은 세포를 세어보면 100%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죠.
기술적으로 보면 100%라고 할 수 있어요.
그저 논문에서는 보수적인 숫자로 표현하려고 했을 뿐이죠.”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흑색종에 걸린 생쥐에게도 적용해 봤는데요.
한 번에 5분씩 네 차례 치료하고 한 달 뒤 결과를 봤습니다.
종양 크기가 대조군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분자 잭해머는 그에 비해 상당히 작은 걸 알 수 있죠.
실제 육안으로 봐도 대조군 생쥐는 흑색종의 크기가 커지고 점점 부풀어 오르지만, 치료받은 생쥐는 크기가 그리 커지지 않은 게 보입니다.
이 치료법은 흑색종뿐 아니라 다른 덩어리 암에도 모두 효과적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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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잭해머를 적용한 생쥐에게선 흑색종의 성장이 상당히 늦춰졌다.
“흑색종에서 관찰했던 걸 가지고 그다음에 잭해머로 다섯 가지 암 타입에 실제로 테스트해 봤어요.
그랬더니 항상 배양액에서 암세포를 제거해냈어요.”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이 치료에 쓰인 빛 에너지는 불과 80mW입니다.
이번 실험에선 보통 10분 동안 근적외선 LED를 쬐게 했는데요.
여기 드는 전력을 계산해 보면 고출력 헤어드라이기를 0.5초 사용한 양에 불과하죠.
하지만 빛을 사용하는 방식인 만큼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한 암을 제거하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게다가 이 분자 잭해머를 암세포의 세포막만 골라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기술도 꼭 필요하겠죠.
“낮은 조도의 빛을 쓰긴 하지만, 깊이 자리한 암에 충분한 양의 빛을 보내는 건 여전히 힘들어요.
췌장암이나 폐암 같은 것 말이죠.
그래서 광섬유를 써서 몸 안 쪽에 있는 암에 가까이 가는 걸 고려하고 있어요.”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하지만 잘 죽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암 덩어리를 100%에 가깝게 깨부수는 신무기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연구팀은 생쥐 실험, 인간 임상을 거쳐 상용화되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측합니다.
“현재로서는 두 번째 단계에 있고요.
생쥐를 대상으로 췌장암에 테스트를 진행 중이에요.
아직 갈 길이 멀죠.
제 생각엔 모든 과정이 완료되려면 10~14년은 걸릴 것으로 보여요.”
(시세론 아얄라 오로스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박사)
단행본으로 보는 ‘불로장생의 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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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Molecular jackhammers eradicate cancer cells by vibronic-driven action
☞Molecular machines open cell membranes
☞Molecular Plasmon - Phonon Coupling
☞Probing intramolecular vibronic coupling through vibronic-state imaging
☞Active Mechanical Threading by a Molecular Motor
☞Hallmarks of Cancer: The Nex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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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발행 일시2024.12.09 에디터 이정봉 정수경 이가진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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