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73세가 분수령… 건강 기능 식품 말고 돈 안 드는 ‘근력 운동’ 늘려라

해암도 2024. 5. 8. 06:18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아주 경미한 허약’ 시작되는 나이… 걷기 속도 느려지고 엉덩이도 홀쭉
다들 하는 ‘하루 걷기 30분’으로는 부족… 유산소 30% 근력 70% 비율로
동년배 일본 노인보다 신체 기능 3.7세 더 노쇠… 운동 포트폴리오 바꿔야

 
 
 
 
 
 
광주시 북구 본촌건강생활지원센터에서 주민들이 전문강사를 초빙해 근력운동을 따라하고 있다./광주 북구청 제공
 

어버이날은 부모님의 건강을 구입하는 날이기도 하다. 가처분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효도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어버이날을 기회로 어르신의 건강을 한번 더 살펴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우선 ‘아주 경미한 허약’ 단계에 주목하자. 어르신들이 건강을 잃는 티핑 포인트이므로. 캐나다 덜하우지대의 케네스 록우드 노년의학 교수가 만든 개념이다. 한국 어르신들은 만 73세 정도에 ‘아주 경미한 허약’ 단계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 단계를 노인이 되기 시작하는 생애전환기라고 부르는데, 노쇠를 눈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거르면 속이 편하고, 고기도 당기지 않는다. 걷기 속도는 느려지고, 움직이기 힘들다. 조금만 아파도 체중이 5kg 이상 쑥쑥 빠지고, 거울을 보니 허벅지와 엉덩이가 홀쭉해져 있다. 노쇠해져 체질이 바뀐 것이다.

 

지난번 ‘늙기의 기술’ 칼럼에서는 바뀐 체질에 맞추어 식사 전략을 바꾸어야 함을 말했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진료실에서 묻는다.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이 무엇이냐고. 대답은 거의 같은데, ‘하루 30분 정도의 걷기 운동’이다. 걷기도 좋은 운동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건강 관리에서 주로 보아야 하는 부분은 이동 능력이다. 이동 능력을 통해 신체 상태 진단과 노화 궤적, 돌봄 요구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세하게는 기대 여명, 미래에 벌어질 낙상, 요양 시설 입소, 간병 요구 등이 있다. 노쇠가 오면 근력과 신체 기능이 떨어지므로 이동 능력도 현저히 감소한다. 문제는 근력과 신체 기능 감소가 서서히 일어나기에 알아차리기 어렵고, 알아차렸을 때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시작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옮기기 버거워지는 것부터다.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어진다. 나이 들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동안 상황은 악화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 현관까지 가는 것도 힘에 부치다가, 혼자서 외출하기가 어려워진다. 열린 문이 하나씩 닫히듯이, 일상 생활에도 지장이 오기 시작한다. 발톱 깎기와 목욕 등 청결 유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기 등.

그래픽=박상훈
 

노쇠가 온 7080에 맞는 운동 전략을 짜기 전, 이동 능력을 관리하는 궁극적 목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동 능력 관리는 100세까지 걸을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이며, 수명 증대와 질병 예방은 부차적이다. 그러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처럼 운동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운동 포트폴리오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스트레칭, 균형·협응 운동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20~30대에 중강도 이상의(땀이 나고 숨이 차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의 비율이 7대3 정도라면, ‘아주 경미한 허약’ 단계에서는 3대7이 되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은 관절을 굳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균형·협응 운동은 몸의 근육, 관절을 율동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걷기는 운동 가이드라인에서는 ‘이동 활동’으로 분류되고, 필자는 7080의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활동’으로 본다. 걷지도 않으면 순식간에 침상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현 상태를 유지해준다는 의미와, 걷기만으로는 100세까지 걷는 몸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보폭을 넓혀 빠르게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 유산소와 근력운동에 스트레칭 효과도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걷기를 가벼운 운동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연구에서 운동 포트폴리오의 효과는 입증된 바 있다. 서울 아산병원 장일영 교수 등에 따르면, 70대가 운동 포트폴리오에 따라 6개월간 운동하면 신체 기능이 큰 폭으로 향상된다고 한다. 미래에 요양원, 요양병원에 입소하거나 사망할 가능성도 감소한다. 전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의 김헌경 연구부장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근육운동을 매일 10분만 꾸준히 해도 1년 후에는 근력의 20%가 늘어나며, 낙상 사고가 줄 뿐 아니라 사회 참여가 늘고 우울증도 예방된다는 것을 밝혔다.

 

아직 한국인의 운동 습관은 100세 시대를 대비하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성인 걷기 실천율은 40.2%, 노인 유산소 신체 활동 실천율은 28.1%, 노인 근력운동 실천율은 18.3%였다. 나이에 맞는 운동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은 일본과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일본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 정송이 연구원에 따르면, 평균 나이 73.9세에 해당하는 양국의 노인을 비교하였을 때 한국인의 신체 기능 나이가 동년배의 일본인에 비해 3.7세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신체 활동량 자체는 한국인이 더 많았지만, 운동 포트폴리오의 부재가 문제였다. 한국 노인은 걷기, 등산, 자전거 타기를 주로 했지만 일본 노인은 나이에 맞게 근력 강화 운동, 공 운동, 수중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주 경미한 허약’ 단계에 속한 분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 서비스가 미흡한 것도 문제다. ‘치료’의 대상도 아니고 ‘돌봄’의 대상도 아니기에, 보건에서도, 복지에서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차라리 이 단계를 넘어가 노쇠가 아주 심한 사람들은 돌봄 영역의 도움이라도 받는다.

 

이 단계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개인은 침상에서 생을 마칠지, 다시 건강해질지가 결정된다. 예고된 돌봄 대란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도 여기 있다. 지난 15년간 일본이 해 온 것처럼, 전국에 운동 교실을 세우고 온 국민이 근력 운동을 하도록 만들면 돌봄 수요 자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지만, 이런 원천적 개선 방안에 관심을 주는 이는 극히 적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건강기능식품 구매 대신 부모님의 운동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국가가 할 일을 개인에게 떠맡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제도가 갖춰지기를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돈이 들지 않는 방법들도 있다. 보건소에서는 지역의 운동 교실을 직접 운영하거나, 연계해 줄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국민체력 100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복지관과 치매 안심 센터, 경로당, 체육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일견 느리고 답답해 보이는 방법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