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의 꿈:바이오혁명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은 독특한 성격 덕에 다른 수면 주기에 비해 인지도가 높다. 렘 수면에선 뇌파가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생생한 꿈을 꾸게 된다. 또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을 형성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치매 연구자들은 ‘서파(徐波) 수면’이라 불리는 수면 주기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있다. 서파 수면은 렘과 달리 깊은 잠에 빠져 뇌파도 축 늘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때 뇌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하수구가 열려 오폐수가 쏟아지듯 뇌 노폐물이 뇌척수액의 흐름을 타고 밖으로 콸콸 배출된다. 평소보다 수십배 많은 찌꺼기가 씻겨나간다.
잠을 절반으로 나눈다면 서파 수면은 전반전에 주로 일어난다. 이때 깊은 잠을 어떻게 자느냐가 매우 중요해진다.
치매 예방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서파 수면을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잠에 못 들어 뒤척이는 이들에게 다시금 꿀잠이 찾아오게 하는 방법은 뭘까.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치매를 막아주는 ‘서파 수면’에 대해 알아봤다.
① 치매 폭증시키는 수면 타입
② 서파 수면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
③ 수면 부족하면 뇌가 스스로 잡아먹어
④ 핑크 노이즈의 효과
⑤ 불면증의 근본 원인 제거하는 법
수면의 초기 단계일수록 깊은 잠에 빠진 ‘서파 수면’이 자주 나타난다. 이때 치매의 원인이 되는 뇌의 단백질 노폐물이 뇌척수액을 타고 콸콸 배출된다. 오른쪽 노란색 네모 안의 밝게 빛나는 점 부분이 노폐물이 배출되는 장면.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아래 텍스트는 영상 스크립트입니다.
🚀치매 폭증시키는 수면 타입
치매는 수면 부족과 아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나온 연구는 특히 서파 수면이 약간만 줄어도 치매 위험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깊은 잠'이 부족하면 치매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여기서 말하는 서파, 슬로 웨이브(slow wave)는 느린 뇌파를 말합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아주 깊이 잠에 빠진 상태를 말하죠.
과학자들은 최근 이 서파 수면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서파 수면을 할 때 우리 뇌는 낮 동안 쌓인 노폐물을 콸콸 쏟아냅니다.
하지만 불면증이 우리를 괴롭히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죠.
나이가 들수록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길어지지만, 실제로 잠을 자는 시간은 짧아진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이 서파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법도 하나 고안해냈습니다.
바로 핑크 노이즈입니다.
서파 수면엔 화이트 노이즈보다 핑크 노이즈가 더 효과적이라고 하죠.
치매와 서파 수면의 상관관계, 그리고 핑크 노이즈와 불면증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 인터뷰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서파 수면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
서파 수면은 잠의 어느 단계를 말할까요.
잠에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사이클은 네 단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 사이클이 약 90분 정도 지속되고, 보통 하룻밤에 다섯 번 정도 반복됩니다.
잠은 4단계가 한 사이클을 이룬다. 하룻밤 잠에 이 사이클이 5번 정도 나타난다. 개인차가 있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초기의 3단계는 비REM 수면입니다.
첫 단계에서 비몽사몽 하다 두 번째 단계에서 조금 더 깊이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가 서파 수면입니다.
뇌파가 아주 느려지고요.
근육도 축 늘어져서 세상과 아주 멀어집니다.
잠의 전반부에 집중돼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REM 수면입니다.
말 그대로 눈이 바삐 움직이는 수면이죠.
이 구간에서 꿈을 꿉니다.
하룻밤에 나타나는 잠의 사이클. 밑으로 갈수록 뇌파는 점점 느려지고 더 깊은 잠에 빠진다. 서파 수면은 그 중 뇌파가 가장 느리고 가장 깊은 잠의 구간이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이 네 단계 중 치매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게 서파 수면 구간입니다.
뇌파는 잔잔히 물결치지만, 뇌는 독성 노폐물을 바쁘게 씻어내고 있죠.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선 서파 수면 때 뇌세포가 진동하면서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게 관찰됐습니다.
연구팀은 13명을 대상으로 자는 동안 뇌파와 뇌척수액의 흐름을 측정했습니다.
MRI로 뇌 영상도 찍었습니다.
서파 수면 때 뇌척수액이 20초 간격으로 흐르면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서파 수면의 느린 뇌파에 따라 뇌세포가 진동하면서 뇌의 노폐물이 깨끗이 씻겨 나간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이 서파 수면 구간엔 낮 동안의 기억이 재생되고 동시에 뇌가 깨끗이 청소됩니다.
🤕수면 부족하면 뇌가 스스로 잡아먹어
2013년 미국 로체스터대는 연구를 통해 이런 뇌의 대청소 시스템을 찾아냈습니다.
이걸 글림패틱 시스템이라고 하고요. 서파 수면 때 평소보다 10~20배 많은 노폐물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파 수면을 야간 파워클렌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뇌가 스스로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2017년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연구를 보면 수면이 부족한 쥐는 청소 뇌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됐습니다.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는 세포가 온전한 신경세포들을 잡아먹어 버렸죠.
“수면의 질이 나빠지거나, 깊은 수면을 못 취하게 되면 뇌에서 아밀로이드 등의 불필요한 노폐물 단백질이 쌓입니다.
그런 것들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치매나 인지 기능 장애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고요.
서파 수면을 잘 취하게 되면 그런 것들이 글림패틱 시스템을 통해 잘 배출됩니다.
그런데 서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그 글림패틱 시스템을 통해 배출돼야 할 아밀로이드 등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렇게 잠 부족은 사실상 치매의 주요 원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치매가 시작되고 나면 불면증이 오히려 더 깊어진다는 겁니다.
치매의 악순환이죠.
그러니까 치매가 아직 오기 전에 불면증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치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치매가 생기면 더 잠들기 힘들어진다. 수면 부족은 뇌 건강에 치명적이므로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전 미리 해결해야 한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불면증은 의학적인 기준은 조금 까다롭습니다.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성인의 3분의 1은 수면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불면증의 의학적 기준은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이 이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다.
불면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수면제일 텐데요.
아직 장기적으로 효과가 좋고 불면증을 없애주는 수면제는 많지 않습니다.
2022년 영국 옥스퍼드대가 170건의 수면제 임상시험을 면밀하게 조사해 봤습니다.
여러 약제 중 효능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없는 약을 찾았죠.
그 결과 에스조피클론과 렘보렉산트가 그나마 양호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조차도 아주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수면제는 모든 불면증 환자에게 처음부터 처방해야 되는 그런 약이 아닙니다.
원래는 1차적으로는 만성 불면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인지행동 치료 그리고 수면 습관 개선 우리가 수면 위생 개선이라고도 이야기하는 그 부분에 노력합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 때 약물 치료를 하고, 약물 치료는 원래 단기간 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하지만 인지행동 치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내지는 인지행동 치료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을 때 수면제 치료를 고려하게 됩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핑크 노이즈의 효과
그래서 최근 과학자들은 뇌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 소음 중 핑크 노이즈가 서파 수면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핑크 노이즈는 화이트 노이즈에 비해 조금 더 부드러운 음색을 띤다. 화이트 노이즈가 잠에 드는 걸 돕는다면, 핑크 노이즈는 서파 수면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2017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를 보면 자는 동안 핑크 노이즈 자극을 받은 노인은 기억력이 평균 3배 이상 향상됐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수면디바이스 업체 자료를 보면 핑크 노이즈를 들려주자 서파 수면 때 뇌파가 크게 증폭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쓰인 핑크 노이즈는 이런 소리입니다.
한 미국 수면 디바이스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핑크 노이즈를 들려주자 서파 수면 구간의 뇌파가 더 증폭됐다. 사진 슬립스페이스
핑크 노이즈는 뇌가 서파 수면 구간에 들어가 있을 때 틀어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뇌파를 감지하고 적절한 청각 자극을 넣어주는 헤드밴드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교 연구팀과 이어러블이란 업체의 공동 연구를 보면 헤드밴드가 수면 시작 시간을 24분 앞당길 수 있다고 합니다.
“핑크 노이즈가 수면의 유지를 시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그렇게 통일돼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연구는 결과가 좋다 그러고, 어떤 연구는 또 별로라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핑크 노이즈의 효과는 아직은 좀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조금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불면증 근본 원인 제거하는 법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불면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불면증 환자의 대부분은 반추적 사고라는 현상을 공통적으로 겪습니다.
불안감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걸 말합니다.

한번 반추적 사고에 사로잡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침대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과잉 각성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이게 지속되면 뇌는 과잉 각성 상태에 빠집니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고 잠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2019년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 연구를 보면 불면증 정도가 심해질수록 뇌 기능의 연결성이 떨어지면서 변화의 폭이 좁아졌습니다.
좁은 생각 속에 갇힌다는 뜻이죠.

불면증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뇌 기능의 연결성이 떨어지면서 더 넓고 멀리 볼 수 없게 된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 불면증엔 인지행동 치료가 주로 처방됩니다.
불면증이 만성이 되기 전에 환자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쫓아내고 그를 통해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증상을 없애는 치료죠.
이 치료를 받은 사람 70% 이상이 수면을 개선하고 40%는 불면증에서 벗어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는 환자가 불면이나 수면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이나 생각 그리고 행동 습관 이런 부분을 개선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환자가 자신의 수면 습관을 바꾸고 또 불면에 대한 잘못된 인식, 과도한 공포 이런 것들을 고치게 되면 점차적으로 수면이 개선되는데 그걸 우리가 인지행동 치료라고 합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수면 장애나 불면증 치료에서 규칙성을 가장 강조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거죠.
전날 잠을 덜 잤더라도 낮잠을 오래 자거나 더 일찍 자지 말고 항상 똑같은 시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강승걸 교수는 “ 불면증 환자는 오히려 잠을 더 자려고 오래 눕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오래 누울수록 불면증은 더 지속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오래 누워서 눈을 감으면 잠들지 않더라도 뇌는 이를 수면과 비슷하다고 받아들인다”며 “그러면 정작 자야 할 때 뇌가 수면 부족을 못 느껴서 수면 신호가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침대에 누워서 잠이 안 온다면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15분 정도 지나도 잠들지 못했다면 침실에서 나올 것을 권합니다.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뇌는 더 이상 침대가 자는 곳이 아니라고 오인할 수도 있습니다.
침대에서 자는 행위 외에 다른 것을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불면이 오래 있다 보면 나중에는 불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자기 침대나 침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못 자는 상황이 생깁니다.
못 자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면 불면 상태와 그 침대가 서로 짝을 이뤄서 이게 나중에는 조건화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졸리다가도 침대에 들어가면 못 자게 되는 그런 상태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걱정 일기’를 쓰는 것도 방법입니다.
미리 마음에 있는 걱정과 불안을 다 쏟아내고 잠들 때는 그저 편안한 마음만 갖는 거죠.
일종의 루틴을 만들어서 자기 전까지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습니다.
따뜻한 물에 목욕하거나 명상을 하는 것처럼요.
명상이나 복식 호흡이 불면증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누그러뜨리는 훈련을 하면 침대에 들었을 때 드는 잡생각을 줄일 수 있다.
“환자분들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신체적인 근육의 긴장도 그리고 심리적인 긴장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완이 되지 않고 이완이 되지 않으면 또 금방 잠이 못 들게 되는 것인데요.
복식 호흡이라든지 아니면 호흡 훈련 때로는 점진적 근육 이완법이라는 것을 훈련을 해서 이완시키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됐을 때 점차적으로 긴장이 풀리고 또 수면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침에 일어나면 햇빛을 많이 받고 자기 전에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을 멈추는 게 좋습니다.
잠의 호르몬 멜라토닌은 낮 중에 빛을 많이 받아야 밤에 잘 나옵니다.
반면, 밤에 전자 기기의 밝은 빛을 받으면 억제됩니다.

멜라토닌은 해 질 무렵 분비되기 시작해 밤이 되면 최고조가 된다. 멜라토닌은 잠을 부르는 호르몬으로 전자 기기의 빛에 방해를 받으면 분비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픽 이가진·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