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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커제 꺾은 '바둑 신' AI…아마추어 만나자 15전14패, 왜

해암도 2023. 6. 10. 07:00

이준기의 빅데이터

빅데이터

 

바둑은 삼라만상을 표현하고 있다고들 한다. 단순하게 19×19의 사각형에서 흑과 백의 단순한 집 짓기 게임인 것 같지만 경우의 수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 수보다 많아서 거의 무한에 가깝다. 인간은 1000여년 동안 바둑을 두어 오며 전략에 대한 지식을 쌓아 왔다. 최근 인공지능은 이 위대한 게임 영역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바둑과 인공지능에 대한 역사와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향후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여러 단면을 살필 수 있다.

커제, AI에 3패 뒤 눈물 “고통 그 자체”

 

알파고로 대변되는 지금의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있기 전에도 인공지능 바둑은 존재했다. 당시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간이 갖고 있던 지식을 어떻게 기호 형식으로 컴퓨터에 넣어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수를 둘 것인가를 고민했다. 여기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방식은, 첫째,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인공지능에 넣어 주는 것이었고, 둘째, 지식은 기호로 표시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인공지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알파고 이전의 인공지능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 되었을까? 우리는 주로 바둑의 실력을 급수나 단수로 표현하지만 더 정확한 점수의 체계는 물리학자 엘뢰 박사가 고안한 엘뢰 점수다. 이 점수는 경기 전의 상대방 점수와 나의 점수를 결합한 후 경기 결과에 따라 새로이 점수가 계산되는 방식으로 매겨진다. 2022년 5월 말 현재 ‘goratings.org’이라는 사이트에 가 보면 현재 세계 1등은 3871점의 신진서 기사다. 2등은 박정환 3690점, 3등은 중국의 커제 3670점으로 나와 있다. 2016년 이전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가장 뛰어났던 2015년 크레이지 스톤이 1900점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인간 최고 기사점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즉, 당시 프로기사들이 보기에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장난감 수준이었다.

 

하지만 딥러닝이란 새로운 인공지능이 만들어진 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주하게 된다. 2016년 홀연히 나타나 이세돌을 이겼던 ‘알파고’는 3739점이었고, 커제를 이겼던 ‘알파고 마스터’는 4858점 그리고 규칙만 배운 후 자가 학습을 한 ‘알파고 마스터’는 5185점으로 인간과 한참 격차를 벌리고 있다. 커제가 3전 전패를 당한 후 눈물을 보이며 “그와 바둑을 둘 때는 이길 수 있는 한 톨의 희망도 갖기 어려웠다.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라고 토로한 것을 보면 극복하기 힘든 실력차를 알 수 있다.

2016년 이세돌은 AI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쳤다. 베르베르는 AI가 인류에 위협보다 편의를 줄 것이라는 낙관을 피력했다. [사진 구글]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은 갑자기 이렇게 다른 인공지능을 만들게 되었을까? 그것은 인공지능의 지능을 만드는 방식을 바꾼 후 가능하게 됐다. 2010년 이후 인공지능 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을 넣어 주던 방식에서 데이터와 결과를 숫자로 넣어 주어 컴퓨터 스스로 계산을 바탕으로 패턴을 인식하여 어느 것이 가장 좋은 수인지 판단하게 하는 ‘기계학습’의 방식을 응용하게 됐다. 결국 이런 방식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벌어졌다. 바둑에서 인간 최고를 가볍게 이긴 것이다.  지금은 언어 영역에 같은 방식을 적용해 챗GPT라는 새로운 도구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감에 따라 인공지능이 인식하는 패턴은 기하학적으로 늘어났고 결국에는 인간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선까지 다가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방식의 인공지능의 치명적 단점은 지식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인공지능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 수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인공지능은 앞으로 인간과 어떻게 공존할까? 아니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다시 바둑의 사례를 보자. 한때 인간 바둑 최고수들에게 ‘만약 신이 있다면 몇 점을 두고 둘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두 점 정도라 대답했다.

 

최근 인공지능의 바둑이 인간 최고수와의 두 점 대결에서 거의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인공지능은 바둑에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향후 어떤 분야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벌써 인간은 인공지능을 통해 지금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던 신약을 개발하고 의료, 금융, 산업 공정 등에서 적극적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프로기사들, 인공지능 보고 바둑 연구

 

두 번째 바둑의 사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신의 경지’에 이른 인공지능이 놀랄 만큼 멍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아마추어 바둑 선수인 켈린 펠린은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15전 14승을 거뒀다. 최고의 프로도 2점을 접고 이기지 못하는 바둑을 어떻게 아마추어가 그냥 두어서 이길 수가 있을까? 필자도 이 사람의 인공지능과의 대결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찾은 인공지능의 약점은 기존의 데이터에서 볼 수 없던 패턴을 만들어 인공지능의 지능이 동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재의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치명적 오류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기존의 사례를 학습, 패턴을 분석해 판단을 해 가는데, 기존의 학습됐던 패턴과 전혀 다른 패턴이 나오면 인공지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경우는 학습됐던 패턴에서 파생할 수 있고 어느 경우는 전혀 다른 패턴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공지능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우리가 바둑을 통해 알 수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것은 인공지능은 향후 인간의 지식 생성과 축적에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바둑을 보면 기존의 바둑에서 금기시됐던 수를 두기도 한다. 전에는 기보와 책, 스승으로부터 학습하던 기사들은 이런 인공지능의 수를 보고 새로운 것을 깨우치기도 하고 스스로 바둑에 대한 새로운 수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 경향을 보면 거의 모든 프로기사는 인공지능을 통해 바둑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프로기사들이 인공지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존에 이루지 못했던 지식 축적을 단시간에 해냈다는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은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 그리고 MIT의 허튼로커 교수와 함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2월 24일자에 기고한 ‘챗GPT는 지적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는 칼럼에서 인공지능을 통한 인간의 지적혁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간이 가설과 검정을 통해 현실과 이론 사이의 모순에 의문을 제시하고 데이터와 새로운 이론으로 지식을 점진적으로 창출해 온 것에 비하면 인공지능은 거꾸로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학습한 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저자들은 인공지능을 통한 새로운 학습법에 주목하며 인간이 인공지능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해를 더해 가든지 새로운 변증법적 체계를 통하여 인공지능의 결과에 의의를 제기하는 능력을 통해 유일한 주체로서의 인간 의사결정 과정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챗GPT의 등장은 인공지능과 우리와의 공존에 관해 많은 가능성과 의문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바둑을 통해 우리가 얻은 인공지능과의 경험이 향후 우리가 인공지능을 대하고 이용하는 태도와 이용방식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과를 졸업 후, 카네기멜론대 사회심리학 석사, 남가주대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국가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에서 국무총리와 함께 민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AI 로 경영하라』 『오픈콜라보레이션』 『웹2.0과 비즈니스 전략』 등을 펴냈다.

 

중앙일보     입력 202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