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인생은 지구력... 늙거나 달리거나” 뼛속까지 러너, 80세 생물학 거장의 조언

해암도 2022. 9. 3. 08:51

‘뛰는 사람’ 하인리히의 80년 간의 생체 실험

24시간 252.2km 완주 US 신기록
달리기는 삶의 질 높여주지만, 노화는 막지 못해
통나무 집 짓고 살며 학생들 숲에서 가르쳐
지구력과 에너지…야망은 위로 열정은 아래로

 
달리기를 사랑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최근 80년 간의 달리기 여정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어우러진 책 '뛰는 사람'을 펴냈다.

 

어린 시절 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주전자로 마른 목을 축이며 텅 빈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심장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왔으나, 성장판이 열린 날쌘 친구들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넘치는 승부욕을 어쩌지 못하던 나는, 마지막 계주에서 뒤처진 채 꺼이꺼이 눈물을 쏟았다. 그때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곳을 뛰고 있을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도심과 트랙을 달리고 있다. 족저근막염이나 슬개골 마모로 통증을 호소하다가도, 나을만하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두 발을 동력 삼아 심박수를 올리는 러너들을 나는 심심찮게 보았다.

 

꾸준한 달리기로 삶과 일의 루틴을 쌓고 자신감을 충전하는 사람들, 함께 달린다는 이유로 동지애를 느끼는 사람들.

 

왜 누군가는 어느 순간 달리기를 멈추고, 누군가는 여전히 숨이 찰 때까지 달릴 수 있는 걸까. 달리면 정말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까? 달린다고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여기 달리기만으로 지구를 4바퀴 돈 80세 생물학자가 있다. 베른트 하인리히. 깊은 숲 오두막에 살며 뛰고 관찰하고 강의하고, 최고 수준의 논문까지 척척 써내는 그를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소로’ 혹은 ‘달리는 찰스 다윈’이라고 부른다.

 

41세에 1.6킬로미터당 평균 6분 38초의 속도로 80킬로미터를 달려 장년부 신기록을 보유한 세계적인 달리기 선수.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교수가 되었는데, 3년 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에 통나무집을 지어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

 

숲속의 현자이자 80년 러너인 베른트 하인리히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최근 생물학과 달리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 ‘뛰는 사람’을 펴냈다. 현재 버몬트대학교 생물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숲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인리히는 24시간동안 약 252.2km를 연속으로 달린 무모하고 낭만적인 러너이며, 동시에 벌의 에너지 시스템을 연구한 ‘뒤영벌의 경제학’을 쓴 생물학계의 영웅이다.

 

-오두막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 동부 메인주 서부 산악 지대의 끝없이 펼쳐진 숲속에 있어요. 지난 10년간 여기서 살았어요. 바람이 거칠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죠.”

-오늘도 달리셨나요?

“오늘은 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800미터 거리의 개울에 걸어가 수영을 했습니다. 접영을 연습 중인데 실력이 늘고 있어요. 저녁엔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글도 썼어요.”

-80년 내내 왜 달리셨나요?

“그건 제가 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생체시계, 나침반이 이끄는 대로 살았어요. 어려서 숲에 살았고 늘 달렸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달리는 생물학자가 되어 있었어요. 사랑하고 꿈꾸던 대로 가고 있지요. 나무집을 지으며 놀았더니, 숲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게 된 것처럼요. 순리대로 이루어진 것이지 의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달리다 보면 인생의 우연과 정직성을 믿게 돼요. 계속 뛰다 보면 종종 최고 기록도 갖게 되고요.”

-’우리 시대의 소로’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타인과 저를 비교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두 다르니까요. 하지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군요.”

-사람들은 선생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도로에서 뛰고 있는 제 옆에 차를 갖다 대고 묻죠. “이봐, 자네 아직도 뛰고 있나?” 제 여동생 마리아네는 다 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빠는 항상 뛰고 있었어.””

-혹자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달리는 찰스 다윈이 떠오른다고도 하더군요.

“글쎄요. 나이가 들수록 생명체 사이에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지 깨닫고 있어요. 결국 우리는 모두 다 동종인 거죠.”

 

베른트 하인리히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온 가난한 독일 이민자였다. 메인주의 농장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벌집과 도요새를 관찰하며 성장했다. 부모님이 멕시코와 앙골라로 탐사 여행을 떠나면서, 그와 여동생은 집 없는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에 맡겨졌다. 땡전 한 푼 없었지만, 달리기로 교장의 마음을 얻어 운 좋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의 꿈은 부모님이 소유한 농장에 사는 것이었다. 사슴을 사냥하고 벌을 치고 곤충을 수집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청년 하인리히는 늘 숲에 나가서 모든 계절과 모든 상태의 숲을 다 보았다.

달리는 하인리히.

 

-생물학자로서 선생이 이룬 사소하고도 위대한 업적은 무엇입니까?

“제 첫 논문은 박각시 애벌레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잎을 먹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 위에 앉아 먹으면서 햇빛 가리개로도 사용하지요. 거기서 출발해 뒤영벌 등 여러 생물의 체온조절 시스템을 탐구했습니다. 가령 파충류들은 평소에 체온이 낮지만 푸짐한 식사를 하고 나면 올라가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곤충과 인간을 비교하기 위해 저는 수년간 제 체온과 심박수를 측정해왔습니다. 스스로를 기니피그 삼아 체온, 에너지 소비, 에너지 균형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죠. 꿀, 맥주, 롤빵 등이 달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음식 실험도 했습니다.”

-러너로서 어떤 길을 달렸습니까?

“여태껏 저는 지구를 네 바퀴는 돌았어요. 말벌에 쏘였고 모기에게 산 채로 뜯어먹혔고, 아프리카에서는 체체파리에게 물렸습니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웨스트 밸리… 수많은 길을 달렸습니다. 100마일을 12시간 27분 2초에 달렸고,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252.2km를 달리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24시간 달리기 경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더군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요? 달리는 동안 몸은 어떤 극적인 변화를 겪습니까?

“일단 이틀은 공복으로 뛰어 탄수화물을 고갈시키고, 이틀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대회 직전 마지막 대변이 나오도록 조절해야 했어요. 하루 낮과 밤을 꼬박 뛰려면 간간이 즐거운 일을 떠올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몸을 기계처럼 움직여 머리를 비워야 합니다. 시간과의 싸움이죠. 몸이 자동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동작이 매끄럽게 통제되고 경제적으로 움직이죠. 그런 상태가 되면 꿈을 꿀 수도 있어요.”

-밤은 어떻게 지나가나요? 결승선에 이를 땐 어떤 느낌이 들지요?

“뛰는 동안 밤은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죠. 직선코스에서는 눈을 감고 잠을 잤어요. 어떤 주자는 한쪽만 검은 안대를 하고 잡니다. 자는 동안에도 뇌의 절반은 깨어서 바다를 건너

는 새와 돌고래의 전략을 이용하는 거죠. 첫 까마귀가 울고 마침내 태양이 떠오르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도전을 마쳤을 때 마흔셋의 제 육체는 252.2킬로미터를 달려 US오픈 24시간 달리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발로 서고 체모가 사라지기 시작하며 오래 뛸 수 있게 된 우리 인간은 탁월한 사냥꾼이 되었다.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도망치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달리기는 실제로 진화에 유용한 선택인가요?

“네.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달리기는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땀 흘리는 능력이 있어서 인간은 더위를 피한 맹수가 없는 틈을 타 먹이를 구할 수 있었어요. 더위를 견디고 뛰어다닌 만큼 자손들을 먹여 살렸던 거죠.”

-도심을 달리는 젊은 러너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달리기가 사람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 못지않게 많은 여성 러너가 달리고 있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고 있더군요. 전 세계에서 대회가 열리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만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달리기와 꿀벌의 비행 사이에도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고요?

“네. 보스턴 마라톤 일주일 전에 저는 버클리 비교생리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벌의 체온조절 생리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친구인 잭 펄츠가 4년 전 역사상 가장 더운 날에 열린 197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병의 물을 머리에 반복적으로 쏟으며 달렸기 때문이었죠.

그 후 저는 벌도 비행할 때 같은 방식을 사용해 열을 식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꽃꿀의 90%는 물이죠. 꿀이 되려면 수분을 증발시켜야 하는데, 벌은 이 잉여의 물을 비행 중 몸을 식히는 데 사용한 거죠.”

-생물학자로 수명과 노화의 비밀은 밝혀내셨습니까? 누가 건강하게 오래 사나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나이 많은 동물은 하프룬이라고 불리는 백합조개예요. 507세에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발견됐죠. 최고령의 거북은 조너선이라는 갈라파고스 땅 거북으로 2022년 현재 190세입니다. 하프룬도 조너선도 달리기를 해서 저 나이까지 살게 된 건 아닐 겁니다. 질병이 없고 건강하다면 당연히 오래 살겠죠. 누구도 노화는 피할 수 없고 수명은 종마다 다릅니다”

‘달리기를 많이 하면 타고난 한정된 심박 수를 빨리 소모하는 셈이니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의문을 품은 하인리히는 정말 달리기가 수명에 영향을 주는지, 사람은 언제까지 달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한계까지 달릴 수 있는지 등을 실험한다.

 

-운동은 수명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나요?

“저는 젊은 선수 시절에 근육에 통증을 달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통증이 거의 없었어요. 가벼운 상처가 자극이 되어 몸을 전보다 더 높은 단계로 만드는 ‘역노화 과정’이 일어난 듯싶어요. 운동은 생장과 회춘의 다른 측면인 수리와 보수에 필요한 자극입니다. 그런 식으로 달리기가 저의 삶의 질을 높여주긴 했어도, 궁극적으로 노화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음식은 어떤가요?

“잉여 칼로리를 섭취한다는 건 더 빨리 자라 더 빨리 성숙해지는 바람에 수명이 짧아진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먹이 섭취를 제한한 생쥐와 생물은 더 오래 살았어요.”

오래 살려면 덜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마음이 뜨끔했다.

-스스로를 실험체 삼아 연구한 운동과 수명의 연결고리를 한 번 더 알기 쉽게 정리해주시겠어요?

“비유하자면 몸은 집과 같습니다. 모든 집은 결국 닳아서 기본적인 ‘뼈대’를 제외하면 사라집니다. 바람이나 날씨, 벌레, 번개 같은 것들이 영향을 주지요. 집을 사용하다 보면 망가지는 부분이 생기고 수리를 합니다. 지붕의 누수를 발견하면 새는 곳을 막고 창유리를 교체하는 등 더 튼튼하게 손을 보지요. 따라서 집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집은 원래의 상태를 더 잘 유지하게 됩니다.

노화라는 건 사소하거나 심각한 문제가 천천히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여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달리기는 가벼운 상처를 통해 몸의 수리 메커니즘에 경고하는 자극이죠. 여러분은 제가 유전적으로 달리기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제 누이도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걸요. 누이는 제가 아는 한평생 한 발짝도 뛰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무릎 수술을 받았지요.

살면서 “이젠 정말 달리기는 끝이야”라고 확신한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적처럼’ 회복했어요. 그게 모두 달리기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회복했고 그건 매번 마법 같은 선물이었어요. 허비하지 않기 위한 선물이요.”

 

-60세에 “더 달리면 환자분 슬개골을 벗겨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경기에 나가 기록을 세웠다고요. 수영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왜 듣지 않았나요?

“정확히 기억납니다. 하지만 그 후 “어르신 심장은 열여섯 살 짜리 운동선수 심장 같네요”라고 말도 들었죠. 무릎 상태도 괜찮았어요. 평생 뛰어본 적이라고는 없는 내 또래 친구들은 진작 무릎과 고관절 수술을 받았답니다.

요새는 수영을 합니다. 오두막 근처에 개울이 있거든요. 당시에는 가까이 개울이 없었어요. 수영장도 농구장도 테니스장도 없었어요. 당시에 할 수 있는 건 달리기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하인리히는 생물학과 달리기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아왔다.

 

-여든 살에 사슴을 쫓아 달릴 때는 어땠습니까?

“저 사슴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눈 쌓인 길을 지나가자니 천체의 시계와 경주를 벌이는 것 같더군요. 사슴은 가본 적 없는 숲으로 나를 이끌었고, 문득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대 때는 사슴 사냥이 원초적 본능에 가까웠습니다.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추격과 사냥 본능이요. 정말 흥미진진했죠. 인생이 내내 이렇게까지 신나진 않을 거라고 예감했는데,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80세에 사슴을 뒤쫓으며 결국 저는 구석기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해온 일을 비슷하게 해냈습니다. 조상들은 언제 무엇을 쫓듯 굳이 더 빨리 앞서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부지런히 달리기 기록을 좇은 적도 있었지만, 나이 들수록 한창때의 속도와 강도와 힘을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사슴이 아닌 다른 것의 뒤를 쫓습니다. 미지의 과학적 질문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쓰죠.”

-제가 아는 100세 가까운 현역 패션 디자이너는 젊은이들에게도 “야망이 있으면 일을 그르치니 에너지의 80%만 쓰고 비축하라”고 충고하더군요. 실제로 지구력과 에너지의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는지요?

“야망과 열정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야망은 역경에 맞서 애써 위로 올라가려는 것이에요. 반대로 열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눈사태처럼 자신을 붙들고 가속도를 내서 그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든가요.

실제로 자연선택은 무작정 속도를 폭발시키는 대신 에너지를 아껴 써서 지구력을 증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타오르는 열정을 식히는 것 자체가 노화의 일반적인 과정이 아닐는지요.”

-종종 저는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서 미끄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선생도 시간과의 레이스에서 낭패감을 느낄 때가 있는지요?

“그럼요. 저도 환갑이라는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와 충격을 받았어요.”

모든 생물에게 시간 감각이 존재하며 그 감각이 생명 다양성을 지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든 생물에 생체 시계가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전도서의 구절 ‘모든 것은 때가 있나니’와 함께 그 챕터를 읽으니 더욱 오묘하더군요.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사소한 사건이 꾸준히 쌓여 마침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연의 운영 방식은 얼마나 경이로운가요. 시간과 타이밍은 생명체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길 찾기와 짝짓기를 포함해 시간에 좌우되는 활동이 많거든요.

양봉가였던 카를 폰 프리슈의 꿀벌 관찰을 시작으로 생물학자들은 동식물의 시간 추적 능력을 알게 됐어요. 우리 모두 삶의 속도와 노화, 수명을 관장하는 각자의 생체시계를 장착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성경 인용구에는 분명 진리가 담겨 있어요.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대학을 졸업할 때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어요. 인생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기에도 막막하고, 계획을 세워도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보다 분명한 달리기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건 아닌지요?

“맞아요. 저는 달리기의 단순명료함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 그저 그때그때 관심이 있는 것을 좇았을 뿐입니다. ‘지금’ 달릴 수 있으니 달렸고, ‘지금’ 뒤영벌 애벌레가 내 앞에 있으니 놀고 연구한 것이었어요. 어릴 때나 늙을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여전히 ‘지금’ 재미있는 걸 합니다.

가지 않은 길을 너무 앞서서 일일이 계획하다 보면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하거나 좌절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끌리는 일을 하면 하나 다음에 다른 하나가 찾아와요. 그리고 그건 결과가 아닌 새로운 행로의 시작이 되곤 했죠. 돌아보면 생물학과 달리기의 인연은 정말이지 신기해요. 제가 그 길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건, 그저 그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인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30년간 숲에서 가르치셨어요. 교실이 아닌 숲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돌아갔나요?

“접촉이요. 모든 것은 ‘접촉’에서 시작됩니다. 삶도 놀이도 일도. 접촉은 성실한 관찰을 동반하죠. 제가 가졌던 최고의 기회를 학생들에게도 주고 싶었어요. 학생들은 숲으로 오면 처음에는 저와, 나중에는 홀로 보고 듣고 느껴요. 그 경험을 공유하죠. 학생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하인리히와 그의 손녀.

 

-평생 누구와 경쟁했나요?

“경쟁자는 없었어요. 누군가 저와 라이벌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들은 저를 응원했고 저도 그들을 응원했거든요. 서로의 열정에 불을 지펴주었죠. 작년 가을에는 시카고에서 50킬로미터 달리기를 했어요. 40년 전 바로 그곳에서 마흔한 살의 저는 최고의 달리기를 했었죠. 저는 그 시절의 저에게 현재의 저를 느긋하게 겹쳐봅니다. 응원과 기쁨의 함성이 있기에 다 좋은 시절이지요.”

-시기마다 기록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기록이란 헌신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표지판입니다. 불가능해 보인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달리기에 관한 한,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맨 처음 우승했던 때가, 이후의 제 어느 기록보다도 만족스러워요. 그 안에 희망이 있었거든요.”

-자연과 달리기 중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나요?

“심오한 질문이군요. 인생을 돌이켜보면 제가 스스로 얻어냈다고 생각하는 정체성은 러너입니다. 러너라는 하나의 성취로 과학자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취득할 수 있었어요.”

-이즈음에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운 문장을 몇 개 소개해주시겠어요?

“1 인간은 가능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한다. 이 정체성은 밖에서 주어졌을 때보다 스스로 얻어냈을 때 더 만족스럽다. 2 돌이켜 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던 상황이 예상치 못한 절호의 기회로 마법처럼 연결되기도 했다. 3 검은머리솔새는 바람에 맞서는 대신 바람을 타고 날고 싶어 한다. 바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4 그동안 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달려왔다. 5 이 긴 달리기의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상자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 땅 위에 올려지는 대신 땅에 둘러싸이고 싶다. 내 죽음으로 숲속에서 잔치를 열고 싶기도 하다. 거기서 울트라 마라톤 결승선에 차려진 만찬처럼 출발점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순간, 모두와 공짜 맥주를 나누고 싶다.”

 

-80년을 달린 후 도달한 결론은 무엇인가요?

“여든 살이 되어서도 달릴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경주는 무리입니다(웃음). 달리기로 한창 꽃을 피우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어요.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꽃이 꺾이고 시들었을지라도 그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그게 모든 생물을 위해 생체시계가 하는 일입니다.”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인용했다. “저에게는 가야할 길과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요. 동시에 무모하게 고집할 필요는 없는다는 것도 깨닫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자세로 얼마만큼 어떤 기분으로 뛰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모든 것은 다 상대적입니다. 저는 항상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라고 조언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중요해요.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 잡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분명 크게 실망할 테니까요. 이럴 때 달리기는 좋은 비유가 됩니다. 각자 자신의 수준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습니다.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보상은 노력에 비례하니까요. 가끔은 제가 해낸 일 중 시도하기 전에 과연 할 수 있을지 의심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러다 나중에 더 안 좋은 시나리오를 깨닫게 되지요. 할 수 있는 것인데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