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신화의 멤버 에릭은 지난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30대부터 2주마다 해온 새치 염색으로부터 두피를 해방해주기로 했다”며 삭발 사진을 공개했다.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아이돌 스타가 보여준 뜻밖의 친숙함은 공감을 불러오며 호감도를 높였다. ‘현생’을 살고 있는 일반인들도 그럴까.
탈모에 집중됐던 샴푸업계 트렌드가 흰머리 커버로 옮겨가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업계 강자로 떠오른 염색·새치 샴푸를 두고 한 홈쇼핑 관계자는 “쇼호스트의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진이 예상될 정도”라고 전했다. 판매 실적 또한 인기를 뒷받침한다. CJ온스타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22일까지 판매된 헤어용품 주문액은 250억원이다. 이 중 염색 샴푸 비중은 25%에 육박한다.
‘기능성 샴푸 전성시대’의 영향은 4050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자신의 흰 머리카락 세 가닥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흰머리는 2030세대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공통의 화두가 됐다.
기성세대와 비교해 외모에 신경을 쓰고 스타일링을 위한 지출에 아낌이 없는 MZ세대가 새치에 대처하는 방법은 보다 적극적이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2030세대의 염색·새치 관련 제품 구매액이 36% 늘었다고 발표했다. 기업들 역시 빠르게 태세 전환에 나섰다. 이정재, 손지창, 김민종 등 원조 청춘스타들과 지드래곤, 임영웅 등을 나란히 모델로 영입하며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마케팅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모발을 어둡게 변화시키는 기능성 샴푸들은 크게 염색약 성분이 미량 포함된 ‘염색 샴푸’와 각사의 기술을 적용시킨 ‘새치 샴푸’로 구분된다. 최근 나오는 제품들은 후자에 가깝다. 대다수의 새치 샴푸는 머리를 감으면서 손쉽게 염색할 수 있다는 편의성을 강조한다. 홈쇼핑에서 새치 샴푸를 구매해 3개월째 사용 중인 60대 박근정씨는 “전에는 정기적으로 자라나는 흰머리가 보기 싫어 일부러 시간을 내 미용실을 찾았다”면서 “평소처럼 머리를 감았을 뿐인데 색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냐”고 말했다.
기존의 염색약과 비교해 유해 성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20대 중반의 박은영씨는 새치를 감추기 위해 시작한 뿌리염색이 일상이 됐다. 저렴한 약품, 잦은 염색이 머리카락을 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성비가 좋은 미용실을 찾아 유목민처럼 살아야 했다. 박씨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나 노안을 연상케 하는 별명이 유쾌할 사람은 없다”며 “새치 샴푸를 만나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40대 초반의 영업사원 송병철씨의 사연도 다르지 않다. 깔끔한 첫인상이 중요한 직업 특성상 ‘흰머리 반 검은 머리 반’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호기롭게 ‘셀프’ 염색도 시도해 봤지만, 마음과 머리카락이 모두 얼룩진 이후부터는 전문가의 노하우를 믿기로 했다. 현재 송씨는 새치 샴푸와 미용실 이용을 병행하며 관리 중이다. 그는 “짧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일수록 흰머리의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며 “(샴푸로 인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미용실을 찾는 주기가 2주에서 3주로 길어지긴 했다”고 전했다.
기존에도 빗 모양의 브러시로 설계돼 용액이 두피에 묻지 않고 즉시 새치에 색을 입히는 헤어 틴트나 속눈썹을 올려주는 마스카라와 같은 형태로 머리카락을 임시 코팅해 흰머리를 감춰주는 형태의 제품들이 존재했다. 넓게 분포된 흰머리를 커버하는 데에는 스프레이 타입의 제품이 애용됐다. 다만 별도의 시간을 내야 한다는 점과 한시적인 결과에 만족해야 한다는 점 등이 한계로 남았다. 백모를 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미국과 일본에서는 염색 기능을 지닌 샴푸가 출시돼 꾸준한 인기를 끌었던 반면, 국내에서는 사용 전후 변화가 확연한 커버링 제품 시장이 형성됐다. 이런 국내에 염색 샴푸의 불씨를 지핀 곳이 스타트업 ‘모다모다’다.

배우 이정재가 모델로 나선 ‘모다모다’ 샴푸. 모다모다 제공
2016년 화장품 기업 비에이치랩을 운영하던 배형진 대표는 이해신 카이스트 교수의 제안으로 염색 샴푸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새치를 고민하는 이들이 2500여만명에 이르는 만큼 수요가 충분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껍질을 벗긴 과일이 점차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 작용’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후 모다모다 샴푸 내 폴리페놀 성분이 머리를 감는 과정에서 조금씩 남게 되고 이것이 산소와 반응해 모발 색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갈변작용에 힌트를 얻은 모다모다 샴푸
개봉 후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 용기까지 제작했다. 획기적인 접근과 시도에 이목은 집중됐고 입소문을 탄 ‘모다모다 프로체인지 블랙샴푸’는 없어서 못 파는 인기 상품이 됐다. 모다모다 측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출시 5개월 만에 100만개가 팔렸고, 1년간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모레퍼시픽의 ‘려 더블 이펙터 블랙 샴푸’
폭발적인 반응에 국내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려 더블 이펙터 블랙샴푸’는 흑삼화 인삼, 검은콩, 칡뿌리 등 자연에서 추출한 ‘블랙 토닝’ 성분이 모발 표면에 강력하게 달라붙어 새치를 점점 어둡게 코팅시키는 원리다. 산화제를 사용하는 염색 방식과는 달리 건강하게 모발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이외에도 독자적 기술인 진센루트셀이 모근과 두피를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LG생활건강의 ‘리엔 물들임’ 샴푸
LG생활건강은 자연스럽게 새치 커버가 가능한 ‘리엔 물들임’ 샴푸와 트리트먼트로 출사표를 냈다. ‘리엔 물들임’ 시리즈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일 때 주황색 염료가 더욱 선명하고 오래가도록 백반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모발에 염료를 단단히 결합할 수 있도록 백반 역할을 하는 블랙틴트 콤플렉스를 함유시키고 검은콩, 검은깨 추출물, 홍화꽃과 치자 성분으로 두피와 모발의 영양까지 챙겼다. LG생활건강은 지난 6월,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에 뿌리 볼륨 케어, 새치 커버 기능까지 더한 올인원 샴푸 ‘닥터그루트 블랙리커버’를 추가로 내놓았다.

토니모리 ‘튠나인’ 샴푸
이보다 빠르게 시장에 뛰어든 로드숍 브랜드 토니모리의 ‘튠나인’ 염색 샴푸는 새치와 백모를 자연스러운 애시 브라운 컬러와 다크 브라운 컬러로 염색해주는 기능성 샴푸다. 갈변 현상이나 코팅 원리와는 다르게 검은깨, 검은콩 등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미세한 단위로 쪼개 머리카락 깊숙이 침투시키는 방식이다.
제약회사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일동제약은 ‘블랙 프로바이오틱 스칼프 케어 샴푸’를 출시했다. 한국피부과학연구원의 인체 적용 시험 결과에 따르면 이 제품은 7일간 사용으로 흰머리가 자연스러운 흑갈색으로 염색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동제약 측은 “두피 건강을 위해 7종의 첨가물을 넣고, 16가지 유해 성분의 사용을 배제했다. 아쿠아 프로바이오틱등 자연 성분이 포함돼 보습, 윤기, 볼륨 등에도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흰머리는 기본적으로 모근에서 멜라닌 색소를 생성하지 못할 때 생긴다. 가족력, 영양소 부족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은 스트레스다. 지나친 음주와 흡연, 극심한 다이어트도 두피의 모세혈관을 위축시켜 흰머리를 유발한다. 젊은 세대의 흰머리, ‘새치’가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흰머리를 무작정 제거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다. 두피 모낭에서 자라는 머리카락의 개수는 정해져 있어 미관상의 이유로 계속 뽑으면 해당 모낭에서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 또한 모근이 약해져 머리카락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전문가들은 “흰 머리카락은 그대로 두거나 염색을 통해 커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커버’를 선택했다면 안전성에 주목해야 할 타이밍이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모다모다 샴푸의 핵심 성분인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이 유해성 우려가 있다고 판단, 이를 사용 금지 목록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모다모다 측은 “식약처가 근거로 삼은 유럽 규제는 THB가 염모제 성분과 결합할 때를 전제한 것이고, 모다모다의 경우 THB가 폴리페놀과 결합하기 때문에 규제의 논거가 약하다”며 “또한 해당 논문의 실험 조건과 모다모다 제품의 성분 배합 비율도 같지 않다”고 반박했다.
결국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THB에 대한 위해 평가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몫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추후 전문가 중심으로 검증위를 꾸리고 식약처와 기업으로부터 위해 평가 방안에 대한 의견을 받아 평가 계획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염색새치샴푸시장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뜨겁게 달아오른 염색·새치 샴푸 시장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 조사 기업 칸타월드패널은 지난해 하반기 새치 샴푸 비율을 약 8%로 추산했다. 제약회사들의 합류에 따라 올해는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시판 샴푸 10개 중 1개가 염색·새치 전용이라는 의미다. 해외 시장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액수는 더욱 커진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는 세계 염모 제품 시장 규모가 2019년 290억달러에서 2023년 42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염색·새치 샴푸를 예방 목적이 아닌 보완 차원의 제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선택 폭이 넓어진 만큼 성분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피 전문가 황성주 털털한피부과 원장은 “새치 샴푸는 근본적으로 새치를 없애는 용도가 아니다. 새롭게 난 새치에 색을 더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며 “개개인의 두피 상태와 모발 건강 상태 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부작용이 의심될 때는 사용을 중단하고 전문의를 찾는 것이 안전하다. 국내외 저자극 테스트에서 우수성이나 안전성 검사를 완료한 제품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입력2022.07.23.
'생활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전면허증도 모바일로… 1000원 내고 받아가세요 (0) | 2022.07.29 |
---|---|
위대한 유대인의 교육방법 (0) | 2022.07.28 |
MBTI에 푹빠진 한국 MZ세대…CNN “안맞는 사람도 알아가봐야” (0) | 2022.07.24 |
관이 닫히는 순간… “잘 죽는 게 잘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 ‘임종 체험’ (0) | 2022.07.23 |
덜 더울 땐 꺼? 계속 켜놔? 에어컨 절전 10계명 알려드립니다 (0) | 2022.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