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수행 정진 82세 현기 스님, 모레부터 전등사서 ‘벽암록 법회’
지리산 1100m 고지의 작은 암자에서 40년간 두문불출하며 홀로 수행해온 전설의 수행자가 강화 전등사를 찾아 5박 6일간 법문한다. 전등사(주지 여암 스님)는 20~25일 경내 무설전(無說殿)에서 ‘현기 대선사 벽암록 전등법회’를 연다.
향곡(香谷·1912~1979)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현기(玄機·82) 스님은 1970년대 말 지리산 상무주암으로 올라간 후 40년간 간화선(看話禪) 수행에 정진해왔다.
선승(禪僧)들 사이에 존경받는 수행자로 수많은 법문 요청이 잇따랐다. 그러나 그가 공식 외출한 것은 2013년 조계사, 2016년 동화사에서 열린 간화선 대법회에서 법문한 것이 전부일 정도다.
이번에 전등사에서 법회를 열기로 한 것은 선승 출신인 주지 여암 스님이 꾸준히 상무주암을 찾아 설득한 덕분. 여암 스님은 “재작년 주지를 맡은 후 현기 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하고 싶어 상무주암에 세 번 올랐다”고 했다.
상무주암은 지금도 차(車)가 갈 수 있는 곳으로부터 1시간은 걸어서 올라야 한다. 여암 스님은 지난해 하안거 후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계시던 큰스님이 저희 일행이 올라가자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하시며 ‘늦었으니 공양(식사)부터 하자’며 손수 밥을 차려주셨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지리산 반야봉처럼 굳건한 바위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갈 때마다 하룻밤을 묵었는데 현기 스님은 항상 새벽 2시반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새벽예불 준비를 다 하고 식사도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정진(참선)한 후에 즉석에서 짧은 벽암록 법문도 했다. 여암 스님은 “80대 고령에도 여법(如法)하게 사시는 모습 자체가 큰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첫 만남에선 극구 사양했지만 세 번째 방문에서야 비로소 반(半)승낙을 얻어 이번 법회를 추진했다.
법문 교재 ‘벽암록(碧巖錄)’도 현기 스님이 골랐다. 벽암록은 선종(禪宗)의 교과서 같은 책. 선의 황금시대인 당송 시대 고승들이 주고받은 대표적 화두 100가지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뜰 앞의 잣나무’ ‘날마다 좋은 날’ 등이 벽암록에 수록된 선문답(禪問答)이다.
‘은둔 수행자의 나들이’ 소식은 곧바로 불교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현기 스님의 법회 소식이 알려지자 모집 인원 100명은 바로 다 찼다. 수십년 수행한 선원장(禪院長)급 스님들도 다수 참석한다. 법회는 매일 새벽 4시30분 예불로 시작해 오전과 오후에 현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참가자들이 실제 참선수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등사는 코로나 방역에 만전을 기하면서 법회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유튜브 ‘전등사 TV’와 BTN불교TV가 현기 스님 법문을 생중계할 예정이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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