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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활비는 대통령·고위직들의 세금 횡령 특권… 비공개는 反민주적 횡포”

해암도 2022. 2. 17. 12:51

[송의달이 만난 사람]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군주제 국가인 스웨덴에는 영부인이라는 직위와 개념 자체가 없어요. 여왕도 옷을 사려면 ‘자기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主人)’인 나라인데,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구입비 관련 정부 지출 내역이 비밀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한 푼도 특활비를 안 썼다면 청와대가 특활비 내역을 모두 공개하면 됩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건설회사 세무팀장으로 근무하던 1994년, 국세청 세무조사로 회사에 부과된 추징금 480억원을 전액 취소시켰다. 전문서도 여러권 쓴 '세법 전문가'이다./송의달 기자

 

김선택(62)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의 말이다. 2018년 6월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청와대 특별활동비(특활비) 내역을 밝히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납세자연맹은 최근 의미있는 ‘1승’을 거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가 이달 10일 “대통령 비서실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소송 비용도 부담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3년 8개월여 만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역 주변에 있는 서울행정법원 모습/조선일보DB

 

◇“특활비 공개 국민서명 운동 시작할 것″

 

정보 공개 대상은 ➀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특활비 지출내용 일체(지급 일자·금액·사유·수령자·방법) ➁김정숙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등 관련 정부 예산 금액 및 지출 내역 ➂2018년 1월30일 청와대 내 모든 부처 장·차관급 인사 회동시 제공한 도시락 가격 등이다. 기자는 이달 22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국납세자연맹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 소감은?

“늦었지만 너무 당연한 결정이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일이 아님에도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국민주권(國民主權)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원이 명령한 정보를 즉각 공개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죄(罪)를 짓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5년에도 정부 부처의 특활비 공개를 요구했더라.

“그때도 1심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대통령 기록물 이전에 따른 공개 불가로 상급심에서 각하(却下)됐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항소하거나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로 관련 정보가 기록관으로 넘어가면 각하 처분이 나올 수 있다.”

2018년 7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혐의와 과거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개입 혐의 관련 1심 선고공판이 열리고 있다./조선일보DB

 

김 회장은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가 자료가 비공개 처리되는 걸 막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다음주부터는 청와대 특활비 관련 3개항의 정보 즉각 공개를 촉구하는 ‘국민 서명(署名)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수천억~1조원 규모의 특활비는 기밀 유지 명목으로 영수증 미(未)제출과 사용처 비공개가 관행처럼 돼 있다. 올해 법무부에는 182억원,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에는 82억원의 특활비가 배정돼 있다. 현금 지출이 일부 허용된 업무 추진비도 기관장의 쌈짓돈이나 비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특활비 비공개는 反민주적 횡포”

 

-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영수증 한 장 없이 수백억원대의 특활비를 쓰는 게 정상인가?

“고위 공무원에게 세금 횡령 면책권을 주는 엄청난 특혜이다. 서양 중세시대 성직자에게 면세(免稅) 특권을 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중에 사용 내역조차 국민이 확인 못하게 막는 것은 초(超)헌법적이며 반(反)민주적인 횡포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K팝, K드라마 등으로 글로벌 명성이 높아지면 뭣하나. 이런 실상을 외국인이 안다면, 아프리카 후진국과 같은 나라라고 한국을 조롱할 것”이라고 했다.

- 선진국에도 이런 특활비나 업무 추진비가 있나?

“선진국에서는 국민 세금을 영수증 없이 쓰면 즉각 탄핵당한다. 몇 십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다가 걸리면 사퇴한다. 특활비는 상상도 못한다. 내가 출장과 현지 연수를 한 스웨덴의 경우, 총리부터 국내외 출장시 매번 경비를 직접 신청해 타 쓴다. 영수증을 첨부한 지출 내역을 제출하고 남은 돈은 반드시 국고에 반납한다. 총리, 장차관 등은 공무(公務)에만 실비(實費)로 국민 세금을 쓸 뿐 경조사비나 회식·식대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2017년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스웨덴의 카를 구스타프 국왕(앞줄 왼쪽 두번째), 실바 왕비(앞줄 왼쪽), 빅토리아 왕세녀(오른쪽), 왕세녀 남편 다니엘 왕자(오른쪽 두번째)/조선일보DB

 

김 회장은 “올 5월 취임하는 새 대통령은 특활비 폐지를 선언해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최소한 국가안보 관련 사항을 제외한 청와대와 모든 부처의 특활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부인, 왜 꼭 비싼 옷 입어야 하나?”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이 꼭 비싼 옷을 입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대부분 평범한 옷차림으로 국내외를 다녔고 퇴근 후 수퍼마켓에 가 직접 장을 봤다. 선진국 정상들은 한국 대통령 부인의 ‘옷’ 보다 그 ‘말’과 ‘품격’을 더 유심히 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임 기간 중 패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14년 독일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영접한 자리에서 메르켈 당시 총리가 입은 통 넓은 베이지색 정장 바지는 최악의 패션으로 회자된다./EPA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4년 4월 30일 저녁 독일 베를린 중심가의 빌헬름 거리의 한 단골 수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있다./조선일보DB

 

-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등도 수백만원~1000만원의 특활비를 나눠주고 있다.

“조직폭력배들이 조직원을 관리하는 것과 똑같다. 국민 세금으로 그 짓을 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입만 열면 검찰 개혁을 외쳐온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와 검찰이 특활비 내역 공개를 결사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특활비만 사라져도 검찰 개혁이 많이 이뤄진다.”

- 이재명 전 경기도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씨는 도청 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휩싸여 있다.

“세금 횡령죄에 해당되고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 김혜경 씨가 떳떳하다면 자신의 돈으로 구입했다는 근거를 분명하게 보여주면 된다.”

 

◇“선진국에선 영수증 없이 쓰면 해임”

 

- 수년 전 한 중진 국회의원은 매월 4000만~5000만원 특활비 중 일부를 생활비로 썼다고 밝혔다.

“선진국 같으면 감옥에 투옥되는 중대 범죄 행위로 최소한 정치 생명이 끝장 날 일이다. 그런데도 그 정치인은 아직 떵떵거리고 있다.”

- 김원웅 전 광복회장도 공금 횡령 의혹을 받았다.

“드러난 것들은 빙산(氷山)의 일각일 뿐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공금 사용 실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로부터도 감시받지 않으니 공금(公金)을 몰래 펑펑 쓰고 있다.”

2019년 6월 20일 낮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들이 김원웅 신임 광복회장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조선일보DB

 

- ‘세금 도둑질’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이라면?

“청와대와 행정·입법·사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 납세자연맹은 매년 수십 건의 정보 공개를 정부에 요구하는데, 대부분 ‘검토 중’ ‘조사 중’이라며 거부당한다. 1~2년후 겨우 성사돼봤자 그때는 늦어 무의미하다.”

김 회장은 이어 말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관의 결정 사항·이유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위원회의 회의록과 결정 내용,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와 감액 이유 등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보공개법은 정보 공개를 막고 미루려는 꼼수로 가득찬 ‘정보 비공개 핑계법’이다.”

 

◇“스웨덴 공직자, 통화·이메일 내역 모두 공개”

 

- 정보 공개를 잘 하고 있는 나라가 있나?

“중학생 때부터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요구 실습’을 하는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은 공무원에게 공무용 휴대전화와 이메일 아이디를 지급하고 업무중 개인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다. 공직자들의 수 년치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이메일 사용 내역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학교 교장과 총장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세금 유용이 원천봉쇄된다.”

김 회장은 이렇게 밝혔다.

“130쪽에 걸친 스웨덴의 정보공개법은 정보 공개 거부 사유를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적시해 놓고 예외 조항 외에는 무조건 정보공개를 하도록 명시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연(年) 소득, 세금 납부액, 동거인 같은 공직자들의 모든 사생활 정보도 공개한다. 부패 방지와 투명성 확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서다.”

스웨덴 국세청의 혁신과 소통 노력을 소개한 단행본. 2020년 3월 출간됐다./세상 제공

 

◇“한국은 조선처럼 고위 공직자를 특권층 대우”

 

- 세금 문제에서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라면?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인을 직접 뽑는다고 민주화된 게 아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고위 공직자들도 한 명의 국민 개인(個人)으로 서로 똑같이 평등(平等)하다. 국민으로부터 임기동안 사용을 위임받은 권력과 세금을, 공무원이 사적(私的)으로 쓰지 못하도록 투명하게 감시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춰 운용해야 진짜 민주화된 나라이다.”

-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5년간 대통령 근무후 퇴임하면 평생 매월 1000만원의 연금을 전액 비과세로 받고 대궐 같은 집을 지어 산다. 결혼해 장성한 자녀가 대법원장 관사에 들어와 함께 살아도 자기 비용 부담없이 국민 세금으로 생활한다? 이런 나라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왕·귀족 같은 특권층을 둔 조선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22년 음력 설 명절을 맞아 청와대에서 영상으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공무원 직종·호봉별 연봉 모두 공개해야”

 

그는 이어 말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세금인데도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납세의무만 가르치고 소득세의 계산방법 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소한 소득세 계산방식과 누진세 등 기본 원리를 알고, 흔쾌히 세금을 낼 수 있는 신뢰 높은 정부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공무원 급여 공개부터 그렇다. 공무원들의 고용주(雇用主)인 국민은 정작 피고용자인 공무원들이 받는 급여 내역 조차 모른다. 정부는 공무원의 기본급만 공개하고 수당,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연봉 전체와 직종별·호봉별 연봉 일체를 숨기고 있다. 수퍼컴퓨터만 돌리면 금방 내역이 나오는데, 이런 것부터 투명하게 공개토록 해야 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7년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특수활동비 폐지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조선일보 DB

 

◇125만 회원...3300명은 매월 정기 후원

 

2001년 출범한 한국납세자연맹은 국내 유일의 세금 전문 시민단체로 ‘연말정산 소득공제 도우미 서비스’를 통해 지금까지 4만여명에게 400억여원을 환급해 줬다. 자영업자 소득세 환급운동, 부당한 자동차세 불복 운동, 중증환자 소득세 환급 운동도 벌였다.

- 납세자연맹 회원 현황은?

“온라인 회원 기준 125만명이고 월 회비를 내는 후원회원은 3300명쯤 된다. 이 가운데 절반이 10년 이상 후원금을 내고 있다. 400여명은 15년 이상 장기 후원자이다.”

김 회장은 “한국납세자연맹은 지금까지 좌파·우파 어떠한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은 독립적인 단체”라며 “앞으로도 ‘전문적이며 정치 중립적으로 활동하는 신뢰받는 시민단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연맹 창립자인 그는 2010년부터 세계납세자연맹(World Taxpayers’ Association) 이사도 맡고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