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염원이며, 과학계의 가장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많은 이들이 답을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에는 19세기 말, 사상의학을 정립한 이제마도 있다.
그는 저서에서 사람의 건강 수준과 수명에 대한 견해를 함께 밝혔다. 사람의 건강 상태는 건강의 4개 단계와 건강하지 않은 4개 단계로 총 8개 단계가 있으며, 64세 시점에서 최고의 건강 상태를 지니고 있다면 128세까지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마보다 앞선 17세기 초 허준은 <동의보감>을 편찬하면서 사람의 수명은 4만3200일, 즉 120세라고 쓴 바 있다.
지난해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기대수명은 83.3세라고 한다. 여자 86.3세, 남자 80.3세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기대수명은 현재의 사망률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태어난 신생아가 평균적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수명을 말한다. 평균값이므로 실제 수명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현대에 가장 널리 인용되는 건 1997년 프랑스의 잔 칼망이 122세로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올해 119세가 된 일본의 다나카 가네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123세의 기록이 있었으나, 정확한 출생기록의 부재로 지금은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
사람의 수명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계가 없다는 주장과 한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1996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 120세 전후를 수명의 최대치로 추정한 바 있으며, 2016년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연구자들은 125세가 제한선이라고 주장했다. 허준이 제시한 120세를 넘어 이제마가 주장한 128세에 근접한 수치다. 한편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2019년 그의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150세도 문제없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수학적인 모델링 외에 수명의 비밀을 탐구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백세인(centenarian) 또는 초백세인(super-centenarian)에 대한 연구이다. 백세인은 100세를 넘은 사람들을, 초백세인은 110세를 넘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유엔에서 추정한 지난해 전 세계 백세인은 57만3000명이며, 2019년 기준 국내 백세인은 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세인 연구에서는 주로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유전적인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전남대 노화과학연구소는 ‘구곡순담’(구례, 곡성, 순창, 담양) 지역 백세인 연구에서 주요 생활 습관으로 채소와 발효식품 섭취, 부지런한 활동량 등을 꼽았으며 향후 코호트(동질적인 집단)를 구축해 백세인 유전체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의계에서는 동신대 한의대가 지난해부터 전남 지역 백세인 대상의 장내 미생물 연구에 착수했으며,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의약데이터부는 백세인을 포함하는 한국의 일반인 3000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올해 말까지 분석 가능한 형태로 구축할 예정이다. 이들 연구를 통해 백세인의 특성을 유전체·역학 및 장내 미생물 분석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세대별로 건강 인구의 데이터와 비교함으로써 128세 수명의 비결을 찾을 계획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건강 증진 기술의 개발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시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장 기사입력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