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90%에 이르는 최고사냥꾼 리카온
덩치와 힘의 한계를 완벽한 팀플로 커버
먹잇감 잡으면 산채로 잡아먹는 습성으로 악명
“들개를 보세요. 한마리 한마리는 그렇게 덩치가 크지 않은 포식자이지만, 그들은 항상 팀으로 움직이고 효과적인 기술을 사용해서 먹잇감을 쓰러뜨리고 높은 사냥성공률을 기록하지 않습니까.” 이번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자 럭비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자국 팀이 약체로 분류돼 고전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하며 ‘들개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한 들개는 바로 아프리카 토종 야생개 ‘리카온’이지요. 아프리카인답게 리카온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네요. 남아공 럭비팀에게 들개 정신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그들은 어떤 우승후보라도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리카온 무리 중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고 있다. /alamy
늑대·코요테·재칼 등과 함께 개과에 속하는 이들은 ‘얼룩무늬개(painted dog)’, ‘사냥개(hunting dog)’, ‘들개(wild dog)’ 등의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온몸이 갈색과 검은색, 고동색으로 범벅진듯한 털무늬에 숯검댕을 한 듯한 얼굴을 한 이들은 사자·하이에나·표범·치타 등에 비해 훨씬 덩치는 왜소합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포식자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팀플레이 때문입니다. 팀으로 뭉치고 팀으로 죽고 사는 팀생팀사의 동물 리카온은, 어떤 맹수보다도 단단하고 세련되고 야무진 사회성을 자랑합니다. 하루 아침은 새들처럼 속삭이듯 지저귀고 어깨를 부비며 입을 맞추는 아침인사로 시작합니다.
한 무리의 리카온들이 일렬로 이동하고 있다. 리카온의 일상은 오로지 팀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African Conservation Experience
무리는 알파 커플로 불리는 대장 부부가 이끕니다.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절대 복종이 리카온 제국의 질서이지만, 이들의 행동에는 타자에 대한 배려가 본능적으로 배어있습니다. 사냥과 식사, 육아 등 무리의 중요한 일상사를 각자 형편에 맞춰 품앗이를 합니다.
육아도 암수가 공평하게 도맡습니다. 고된 사냥을 다녀온 뒤 부모가 시커먼 털빛의 새끼의 배를 할짝할짝 핥아주는 모습을 보면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는 속담이 절로 실감납니다. 늑대처럼 ‘아우~’하고 울부짖지는 않만 여러가지 형태의 목소리를 내서 의사소통을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망가 동물보호구역에서 리카온 무리가 누에게 집단으로 달려들고 있다. 흰자위를 드러낸 누의 표정에 공포와 절망감이 역력하다. 이 누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불행히도 없다. /alamy JBE31C African wild dogs (Lycaon pictus) killing wildebeest calf (Connochaetes taurinus), Zimanga private game reserve, KwaZulu-Natal, South Africa, April 20
리카온의 무리는 한편 스파르타 제국의 아프리카 짐승 버전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무리의 존재 이유는 생존이고, 생존 전략은 단 한가지, 집단 사냥입니다. 팀생팀사인 이 짐승의 팀킬은 경탄과 공포를 동시에 자아냅니다. 질서있는 작전, 효과적인 의사소통, 긴밀한 협업, 그리고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킬러의 본능까지 어우러진 이들의 사냥 성공률은 70~90%에 달합니다.
사자(30~40%)를 압도하며 사바나 최고 수준이죠. 사자보다 작고, 치타보다 느리며, 표범처럼 나무타기에 능하지도 않고, 악력은 하이에나보다 약한 리카온에게는 협동심과 지구력이라는 무기가 대신 있습니다. 누·임팔라·혹멧돼지·쿠두 등 일단 한번 사냥감을 점찍으면 무리가 쫓기 시작합니다.
추격전은 마라톤과 400미터 릴레이를 합친 것 같습니다. 추격조는 주기적으로 교대하면서 먹잇감을 뒤쫓습니다. 시속 60㎞ 속도를 유지하며 한 번에 5㎞가까이 달릴 수 있는 이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은 죽기살기로 도망가지만 교대로 이어지는 추격전에 물가나 덤불숲 같은 막다른 곳으로 몰리거나 힘이 빠져 나가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리카온의 잔혹한 면모가 드러납니다.
사바나는 먹고 먹히며 빼앗고 빼앗기는 총성없는 전쟁터입니다. 피냄새를 맡고 사자와 하이에나 등이 언제 접근할지 모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냥하는 것 못지 않게 남의 먹이도 즐겨 빼앗거든요. 이런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먹어치우는 것입니다. 보통 육식동물들은 먹잇감의 목을 물어 질식시켜서 숨을 끊어놓은 뒤 먹지만, 이들에게는 그럴만큼의 강렬한 턱힘이 없습니다. 시간도 없고요. 그래서 가장 연약한 배쪽부터 공략합니다. 리카온의 포식은 그 어느 육식맹수의 식사장면보다 목불인견입니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리카온에게 잡힌 희생물은 두눈과 입을 뻐끔거린 채 식탁에 오른 생선회 신세와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굶주린 다른 맹수들 역시 숨통을 끊지도 않은 상태에서 포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리카온처럼 철두철미하게 이 ‘원칙’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바나의 약자들에게 이왕 죽을 거라면 차라리 리카온이 아닌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되는게 최소한의 축복일수도 있겠습니다.
리카온의 잔혹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여러 마리의 리카온에게 쫓기다 물웅덩이까지 도망친 혹멧돼지는 리카온들과 대처하며 물속에서 버티지만 뒤쪽에서 악어가 접근하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리카온을 피하려다 악어에게 사냥당하는 장면입니다. 리카온은 이렇듯 철저하게 현장에서 잡은 날고기만을 먹습니다. 이렇게 허겁지겁 먹은 살코기와 내장을 어린 새끼들이나 병약해서 잘 거동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게워주기도 합니다.
흉포한 사냥꾼 리카온은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있기도 하다. 사진은 미국 세인트 루이스 동물원에서 전시중인 리카온 무리들. /세인트루이스동물원 홈페이지. Chicago Zoological Society
이들은 통상 하루에 두번 새벽녘과 저물녘에 사냥을 나갑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씩은 사바나가 붉은 핏빛으로 물든다는 얘기죠. 어찌나 빨리 먹어치우는지 영양 한마리가 단 8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육식 맹수가 먹고 남은 찌꺼기들에 주로 의존하는 대머리수리들에게 리카온은 그렇게 매력적인 파트너는 아닐 듯 합니다. 사회성과 잔혹성의 두 얼굴을 가진 리카온은 서식지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어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있습니다. 리카온 정신으로 무장하겠다고 공언한 남아프리카 럭비팀이 올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올릴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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