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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헐뜯는 한국인… 시기와 질투 극심해" - 1939년 中 국민당의 한국보고서

해암도 2018. 8. 22. 08:43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장제스(蔣介石)의 중국 국민당 정부는 대체로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 1947년의 한 외교문서에선 제주도와 울릉도·독도를 중국이 신탁통치할 수 있다는 영토적 야심을 드러냈고, 종전 후 3년 동안 국민당 군대가 점령한 만주 지역에서 조선인 사상자가 8000여명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39년 10월 5일 중화민국 중앙조사통계국 관리 왕룽성(汪榮生)이 작성해 상관에게 보고한 '치장(江)에서의 한국 7개당 통일회의 경과보고서'도 한국에 대한 비우호적인 시각이 나타나는 자료다. 당시는 8년 동안 포화를 피해 대륙을 전전하던 임정이 마침내 최후의 항전지인 충칭(重慶)으로 들어가기 직전, 중국 각지의 좌·우 독립운동 단체들이 인근 도시 치장에 집결해 통일을 의논하는 '7당통일회의'를 벌일 때였다. 하지만 의견 대립으로 회의는 결렬됐다.

왕룽성은 이 회의의 배경과 경과를 자세히 설명한 뒤 통일 실패의 원인을 4가지로 분석했다. "한국인의 민족성 자체가 단결 정신이 부족하다. 민족 혁명을 영도할 위대한 영수(領袖)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심 사상이 결핍돼 있다. 각 당파 간에 극심한 시기·질투·견제 현상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이 글에는 지나친 일반화와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폄훼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몇몇 구체적인 언급은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왠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국 민족은 개성이 워낙 강한 데다 자존심이 세며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무능하다고 비웃으며, 나이 든 사람들은 청년들이 유치하고 무지하다고 손가락질하기 일쑤다…."

왕룽성의 보고서는 "사람마다 품고 있는 마음이 다르고, 타인의 말을 들으려는 정신이 부족해 의견이 엇갈리고 당파가 난립했다"며 "서로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 전혀 양보하지 않는 당파들이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념, 지역, 세대, 계층에 따른 분열과 반목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성별과 업종에 따른 갈등까지 나타나는 2018년의 대한민국을 왕룽성이 봤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