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구속·수배와 제적·복학을 밥 먹듯 했던 골수 학생운동권 박계동(63)은 20년 전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을 폭로한 스타 의원이었다. 2010년 국회 사무총장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난 그가 요즘 주목을 받고 있다.
넉 달 전부터 서울 시내엔 병아리처럼 샛노란 색깔을 두른 '쿱(Coop) 택시'가 돌아다닌다. 기사들이 친절하고 난폭 운전을 하지 않는 택시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쿱(Coop)이란 이름은 협동조합(cooperative)에서 따왔다. 쿱 택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택시 협동조합'으로 그 조합 이사장이 박계동이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을 찾았다. 컨테이너 구조물 내부 이사장실엔 낡은 책상과 소파, 작은 냉장고가 있었고 한쪽 벽엔 조합 소속 운전기사 명단과 차량 번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전체 조합원은 184명, 택시 숫자는 75대였다.
박 이사장은 "수년 내 전국 택시 절반이 회사택시와 개인택시의 장점을 모은 협동조합 택시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재야 20년, 정치 20년 했고, 이제 택시에 나머지 20년을 걸겠다"고 했다.
- 정치인 박계동이 ‘택시인’으로 변신했다. 학생운동과 재야, 재선 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으로 이어진 굴곡진 삶의 마지막 도전이 협동조합 택시란다. 넉 달 전부터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노란 ‘쿱 택시’들이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조합의 택시들이다. / 김지호 기자
―택시협동조합은 처음 들어봅니다.
"기사 한 명당 2500만원씩 출자해 협동조합을 만든 겁니다. 100% 우리사주형 기업인 거죠. 조합원 명함에도 운전기사 대신 '우리사주 ○○○'라고 적혀 있지요."
―수입이 다른 데보다 많다고 하던데.
"지난달 조합원 평균 수입은 264만원이었습니다. 법인택시 기사는 물론 개인택시 월수입 200만원보다 훨씬 많지요."
―어떻게 수입이 많나요.
"조합 운영 방식을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회사택시의 경우 오전 근무자는 12만5000원, 오후 근무자는 14만5000원씩 사납금을 냅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택시 기사 월 소득이 130만원 수준이에요. 나머지는 회사가 가져가는 것이죠. 우린 회사의 몫을 조합원이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개인택시는 사흘에 하루 반드시 휴무하지만, 조합택시는 쉬지 않습니다. 법인과 개인택시의 단점을 보강했지요."
―조합원 수입은 모두 같나요.
"아니죠. 회사택시 기사는 사납금 초과 수입을 회사와 6대4로 나누지만, 우리는 모두 기사가 가져갑니다. 지난달 최고 소득자는 415만원, 최저는 120만원이었어요."
―최저 수입 120만원은 왜 그런 겁니까.
"조합원 중에 아이를 직접 키우거나 장애 있는 자녀를 돌봐야 하는 분이 있어요. 근무 시간 채우는 게 불가능했지요. 회사택시 기사였다면 당장 잘렸겠지만 조합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조합 운영은 무슨 돈으로 하나요.
"사납금이 없는 대신 저희는 매달 기준금을 냅니다. 1인당 300만원 정도 될 겁니다. 여기에서 30%를 연료비, 사무직 인건비, 차량 정비비 등으로 사용하고 200만원은 다시 조합원 급여로 되돌려줍니다."
- 박계동은 1995년 10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을 폭로했다. 그의 뒤에 당시 황낙주 국회의장이 보인다. / 조선일보DB
"월 500만원이고요, 매달 300만원 판공비로 쓸 수 있습니다."
―월급이 생각보다 적네요. 판공비는 어디에 씁니까.
"(하하하) 이 나이에 월 500만원 적지 않습니다. 판공비는 조합 확장과 수익 사업을 추진하는 데 써요. 그런데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어요. 모든 장부는 조합과 계약한 회계 법인이 작성합니다. 5000원짜리 전표도 바로 회계사에게 전달되지요. 조합원 배당금도 회계사가 산정해줍니다. 투명 경영 하고 이익을 모두 나누자는 게 조합 운영 원칙입니다."
―조합원들이 법인복지카드를 갖고 있던데.
"월 50만원 한도 카드를 제공합니다. 밥 먹고 담배 사고 커피값 하는 용도지요. 급여에 포함되는 것이고, 조합원 지출도 투명하게 하자는 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쿱 택시가 샛노란 색깔로 단장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옐로 본(yellow born)'이라고 생명 탄생을 상징하는 색이랍니다. 영국·프랑스·스페인·호주 등 전 세계 택시 디자인을 구해와 '더 좋게 만들어 달라'고 서울시디자인센터에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예쁜 택시라는 말을 들어요."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쿱 택시 가동률은 지난달 94%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평균 가동률 67%보다 훨씬 높으며, 쉬고 있는 택시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서울시에 접수된 불친절, 승차 거부, 부당 요금 등 민원 건수는 다른 회사의 절반이었다.
현재 협동조합 가입을 신청한 '예비 조합원'은 462명. 이들을 위해 박 이사장은 부산·광주·포항 등에서 새 조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1년 전 법정관리 중인 서기운수㈜를 인수해 지금의 택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과정이 악몽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은행 대출 못 받아 사채 시장 기웃
- 15년 전 택시 운전 기사 시절 박계동이 택시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0년이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금구상운에서 11개월간 일했던 그는 당시 “평범한 시민의 삶이 궁금해 운전대를 잡게 됐다”면서 “사납금 채우느라 점심 먹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15년전 인터뷰 때의 모습. / 주완중 기자
"작년 말 서기운수를 40억원에 낙찰받았어요. 계약금 4억원은 잠실시영아파트 팔아서 마련했는데, 잔금 36억원이 해결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요.
"은행 찾아다니며 조합원 명의로 집단 대출을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담보 없으면 안 된다고 모두 거부하는 거예요. 명색이 금융기관 관장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까지 했는데, 그런 거 전혀 통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2금융권 갔지요."
―거기에선 정무위가 통했습니까.
"천만에요. 회사를 담보로 제시하면 50% 대출이 가능하다는데, 택시회사를 아직 인수하지 않았으니 그게 가능한 말입니까. 두 달 내 잔금 36억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입이 바짝바짝 마르더라고요.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고 아내는 집만 날린 거 아니냐고 앓아누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던가요.
"제3금융권, 대부업체들이 있다는 명동 사채 시장을 찾아갔습니다. 연이자 25%라는데 여기에 선이자 등 각종 명목으로 떼고 30억원을 마련했어요. 그리고 모자란 돈은 난생처음 친척과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며 겨우 마련했습니다."
―금융권이 미웠겠습니다.
"우리나라 금융 현실이 이렇구나, 제가 엉터리 의정 활동을 했구나 별별 생각 다 들었죠. 담보 잡고 돈 빌려주는 거 누가 못 합니까. 은행이 돈놀이 말고 산업 발전 기능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이 대목에서 박 이사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엔 스몰 비즈니스 론이라고 있는데 500만달러 이하 빌릴 땐 담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업계획서를 요구하고 꼼꼼히 검토한 뒤 대출 여부를 결정하지요. 우리 은행들 반성해야 합니다."
―사채 이자 만만하지 않을 텐데.
"그 비싼 이자 물고 어떻게 사업합니까. 일단 급한 불 끄고 바로 조합원들하고 서울보증보험 찾아갔지요. 우리 보증 서서 대출 좀 받게 해달라고요. 실무진이 처음엔 거들떠도 안 보다가 매일 가서 계획서 보여주고 조르니까 결국 두 손 들더라고요. 서울보증하고 하나은행, 조합이 3자 협약을 맺어 6%대 이자로 대출받아 사채 갚았죠. 그 40억원이 조합원 출자금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전혀 불가능했던 조합원들을 위해선 서울시가 10억원 빌려줬고요."
박 이사장이 택시와 첫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0년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1999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하자 이듬해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당시 기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금구상운에서 박 이사장을 만났었다. 그는 당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알아보고 싶고 교통 문제도 살펴보고 싶었다"고 했다. 11개월간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그는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재선 의원이 됐다. 그래서인지 그의 의정활동 중엔 택시와 관련된 게 많았다.
"주변 민원을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 위하겠다' '서민 위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습니다. 전 택시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회 가서 바로 택시 특별소비세 폐지를 추진했지요. 당시 택시기사 2만5000명이 여의도에서 지지 시위를 했지요."
―'협동조합'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UN이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2012년 무렵 이탈리아 볼로냐대의 스테파니 자마니 교수가 쓴 '협동조합으로 기업 하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기업이 앞으로 실업률을 해소하고 경제성장의 주력 모델이 된다는 겁니다. 취약해진 중간 계층을 보강하고 양극화 해소에 도움 되는 협동조합이야말로 우리에게 적합한 사업 형태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첫 사례로 '전공'인 택시를 택했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계주가 신뢰 없으면 그 계는 망합니다. 박계동이 택시 한다니까 조합원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잖아요. 협동조합은 택시 같은 노동력 중심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두고 보세요, 조합원 중에 중산층이 나올 겁니다."
―중산층이요? 지금 수입으론 어려운데.
"전국에 조합을 만들어 조만간 택시 1000대를 확보할 겁니다. 그다음 가스충전소, 차량 정비와 택시 렌트, 세차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거지요. 그 사업장이 될 가칭 '택시랜드'를 전국에 수백개 만들 겁니다. 그곳에선 택시 탈 수 있고, 값싼 차량 부품과 정비를 제공받을 수 있지요. 바로 이런 부대사업을 통해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겁니다."
―조합 늘어나면 이사장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조합이 3개 이상이면 연합회를 구성할 수 있어요. 연합회장이 돼서 조합들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을 겁니다."
―혹시 정치에 뜻이 있나요.
"지금 너무 바쁩니다. 정치 생각 전혀 없어요."
―협동조합이 크게 성공하면 조합원들이 떠밀 수도 있을 텐데.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인간 관계가 소중하다는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말이 기억 나네요. 지금 정치 더 해 뭐하겠습니까. 한 식구가 된 조합원과의 관계가 더 소중합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72학번인 그는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21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1995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됐고 한 시민단체에선 '대한민국 국민상'을 받았다.
비자금 폭로 때 50억원 제의받고 고민
―요즘 정치권에선 대형 폭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원전, 방위사업, 해외 비자금 등 비리는 지금도 끊이지 않잖아요. 의원들이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겁니다. 사금파리 줍듯 끈기 있게 파고드는 의원들이 보이지 않아요."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몸 사리는 겁니다. 폭로하고 나면 그 원한 관계로 자기도 위험해지니까 비리 문제는 관심 밖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용기 있는 의원들이 사라졌어요. 심지어 재벌 회장한테 주눅이 든 의원들도 많은 게 요즘 의사당 세태 아닙니까."
―노 전 대통령 결국 구속됐지요. 당시 회유나 협박은 없었나요.
"동방유량 신명수(노 전 대통령 사돈으로 지난해 작고) 회장이 사건 덮어주면 현금 50억원을 주겠다고 했지요. 당시 연이율 13%니까 그 돈이면 매달 이자만 5000만원일 때입니다. 그 돈 받아서 시골집 마당에 파묻어 놓을까, 가묘(家廟)에 숨길까 별생각 다 해봤습니다."
―갈등 많았겠습니다.
"고민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새벽 3시까지 전전긍긍하는데, 딸이 창문 열어놓고 잠들었더라고요. 이불 끌어당겨 주고 딸 얼굴 쓰다듬다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 딸은 지금 뭐합니까.
"자식이라곤 외동딸 하나예요.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재 일을 해요. 사위는 삼성전자 다니다 지금은 벤처사업 한다는데 뭐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택시 회사 산다고 잠실아파트 팔았는데 지금 어디 삽니까.
"흑석동 산꼭대기 작은 아파트 전세 살고 있어요. 아내가 구박하지만 진심은 아닌 거 같아요. 4년 임기 협동조합 이사장 두 번 할 수 있으니 금전 손해 본 건 그걸로 퉁 치자고 했습니다(웃음)."
―마음 넉넉한 부인을 찾으셨습니다.
"아내는 1981년 수배 도중 알게 돼 같이 도망 다녔지요. 수감 생활 1년간 아내가 옥바라지해줬고 석방되자마자 결혼했습니다(그의 아내 한우섭씨는 '한국 여성의 전화' 창립 멤버로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전화에선 진동이 그치지 않았다. 새 택시조합 만들러 포항행 밤 기차를 타러 가는 모습을 보며 10년 뒤 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협동조합 사업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을 겁니다. 스위스 유통업계 40%를 장악한 미그로 협동조합 같은 모델을 만들려면 우선 택시조합부터 성공시켜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