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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시인이 그리워한 자작나무

해암도 2013. 12. 12. 09:32
ㆍ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불빛이 눈을 찌른다. 작년에 듣던 크리스마스 캐럴은 죽지도 않고 또 와서 귀를 찌른다. 잠시라도 차분한 고요가 그리운 연말. 문득 자작나무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건, 잠시 붓을 꺾은 어느 시인이 자작나무를 그리워했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 같다.

내가 자작나무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작나무가 하얗기 때문이고
자작나무가 하얀 것은 자작나무숲에 일하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안도현 ‘자작나무를 찾아서’

땅도 나무도 하늘도 새하얀 겨울의 자작나무숲. 그 이국적 풍경을 시베리아 벌판이나 북유럽 설원을 달리지 않고도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원대산림감시초소까지는 서울에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초소 앞에 차를 세우고 인적사항을 적고 경사진 임도를 오르면 초입부터 우측으로 자작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3.2㎞를 산행 삼아 오르려니 힘도 들지만, 새록새록 나타나는 자작나무들을 보며 기운을 내게 된다. 경사가 심해 콘크리트 포장을 더 조심해야 한다. 내린 눈이 얼어붙어 흙길보다 미끄럽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새하얀 수피의 자작나무를 가까이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이달 15일까지 가을철 산불 방지기간이지만, 미리 출입금지를 풀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인제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숲 유치원·치유의 공간 등으로 다가와

쉬엄쉬엄 한 시간 정도 걸려 목적지에 도달하면, 표지판이 세워진 언덕 아래로 자작나무들이 가득하다.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언덕 위에서 매섭게 불어대던 바람도 잦아든다. 촘촘하게 늘어선 나무들 덕분인지, 포근하기까지 하다. 마치 이 세상 같지 않은 새하얀 고요. 오는 길이 그다지 힘들었던 것도 아닌데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작나무숲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자작나무가 북방 아한대 지방에서 자생하는 수종이기 때문이다. 백두산이나 개마고원에 자작나무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산림청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이다. 1996년까지 138㏊에 심은 약 70만그루가 훌쩍 자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4~5년 전부터 인제 지역 아이들에게 숲유치원으로 개방했던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 입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자작나무 코스(0.9㎞), 치유 코스(1.5㎞), 탐험 코스(1.1㎞) 등 3개의 탐방로를 만들어 25㏊ 넓이의 자작나무숲으로 공식 개장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하얀 수피마다 종이처럼 얇게 돌돌 말린 껍질이 붙어 있다. 불에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는 자작나무는 수피에 기름이 많아 물에 젖어도 불에 잘 탄다. 자작나무과 나무의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껍질은 종이 역할을 하는데, 단단하고 병해충에도 강해 신라 천마도와 고려 팔만대장경에도 사용됐다 한다.

■ 70만그루 속 ‘새하얀 고요’ 펼쳐져

산책로를 따라 눈길을 걸었다. 물이 흐르고 숲이 숨을 쉰다.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신령한 기운이 느껴진다. 메마른 몸으로 곧게 서서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절개. 마치 흑백 무성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 고요하고 차분한 풍경. 어느새 머릿속도 마음도 맑아진다. 핀란드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자일리톨의 향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맑은 기운만큼은 충분히 들이마실 수 있다. 또 오자 다짐하며 언덕을 오르는 길. 가지가 떨어진 옹이마다 생긴 갈매기 모양의 검은 얼룩이 마치 배시시 웃으며 “네 근심은 놓고 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눈 소식을 들으니 다시 자작나무숲이 생각난다. 더 하얗게 빛날 그 숲이.

친구여,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뭐니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
자작나무 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나무숲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겠지
어라, 자작나무들이 꼭 흰옷 입은 사람 같네, 하면서….

-안도현 ‘자작나무를 찾아서’

 

길잡이


■ 인제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숲

춘천~동홍천고속도로 동홍천IC에서 44번 국도 인제 방면으로 가다 남전교 직전에 우회전하면 인제종합장묘센터(하늘내린도리안) 표지판을 지나 원대산림감시초소로 간다. 내비게이션에는 인제군 인제면 원대리 763-4(원대산림감시초소)를 입력해야 한다. 숲 너머에 있는 아이올라펜션 숙박 예약 시 사륜구동에 한해 임도 통행이 가능하다. 펜션에서 200m 정도 더 가면 30년간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회동분교가 폐교 전 모습으로 추억을 담고 서 있다.

원대리 인근에 식당이 많지 않으나, 원대막국수(원대리 650-3, 033-462-1515)가 일당백 역할을 한다. 막국수와 곰취 장아찌에 싸먹는 돼지수육이 푸짐하고 맛있다. 아이올라펜션(자작나무숲 너머 2㎞, 010-6209-3333)은 숙박객과 단체예약자를 대상으로 겨울에는 청국장, 봄~가을에는 직접 재배한 쌈야채 비빔밥을 판다.


■ 인제 남면 수산리 자작나무숲

원대리에서 25㎞쯤 떨어진 수산리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 인제자연학교캠핑장(인제군 남면 수산리 490)이나 자작나무오토캠핑장(인제군 남면 수산리 714)을 찾아가면 된다. 수산리 자작나무숲은 멀리서 보는 숲이다. 사유림인지라 숲 속을 걸을 수는 없지만, 자작나무의 숫자는 100만그루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어론리까지 3시간 남짓 임도를 걷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 수차례 자작나무숲을 만나게 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나무로 지어놓은 전망대에서 건너다보이는 일명 ‘한반도 모양 자작나무숲’(사진)이다. 어설프지만 닮긴 닮았다. 사륜구동 차량으로 임도 진입이 가능하나, 눈이 안 녹는 구간이 많아 위험할 수 있다. 어론리 임도 입구의 하늘마당(어론리 723-2, 033-463-0705)은 수산리 자작나무숲 트레킹 후에 들러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고 가기에 위치가 좋다.

                                                        인제 |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