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노인도 살기 좋은 나라 ③ 프랑스
"진정한 복지는 세대 간 연대와 사회적 유대 회복에서 출발"

3줄 요약
- 프랑스는 2003년 이후 복지 철학을 '자립과 연대의 조화'로 재정립했다.
- 병원 입원 대비 30~40%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가정 입원(HAD)'을 법적 입원 진료로 확대했다.
- '세대 간 동거' 등 연대적 모델을 통해 노인의 고립・청년의 주거난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불과 2017년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지 7년 만이다. 19세기부터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 문제를 오랜 기간 고민했던 프랑스가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가 되는 데 41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로 꼽히던 일본은 12년이 걸렸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연합(UN)의 ‘2024 세계인구전망’ 예상치를 종합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비율은 2040년에 33.9%로 높아져 일본의 34.8%와 사실상 같아질 전망이다. 2045년 무렵에는 38%를 넘어서며 일본(36%)을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 급등과 같은 변수가 없다면, 2050년 43.3%, 2060년 45.2%, 2070년 46.4%로 치솟는다. 경제활동 세대 1명이 노인 1명 이상을 떠받치는 사회가 되는 셈이다.

참사 이후 ‘보호’에서 ‘연대’로
한국의 초고령화는 이미 경제·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생산연령 인구는 매년 30만 명씩 줄고, 국민연금은 2055년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 지출은 급증하지만,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40%를 넘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노인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철학이나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제도는 늘어나는데 ‘노인을 어떤 존재로 보고, 어떤 사회적 위치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없다.
프랑스 역시 과거에는 노인 문제를 우리와 비슷한 시각으로 봤다. 노인은 가족이나 국가가 돌봐야 할 부양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2003년 기록적인 폭염 당시 사회와 고립된 노인과 취약 계층 1만5000명 이상이 사망하자 ‘노인 복지’에 관한 철학을 재정립했다. 전 사회가 ‘보호’의 틀만으로는 고립된 노인을 지킬 수 없다고 자각하고 ‘자립과 연대의 조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섰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서 사회 전체로 옮겼다. 2004년 제정된 ‘국가연대의 날’에는 근로자가 하루 무급으로 일하고, 사용자는 연간 임금총액의 0.3%를 노동·보건·연대부 산하 국가자립연대기금(CNSA)에 적립한다. 이 재원은 노인과 장애인의 돌봄·자립에 쓰인다.
2015년에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사회 적응법’을 제정해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했고, 2020년에는 사회보장 제도 내에 ‘제5부문(자립)’을 신설해 의존(요양)을 질병·노령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 인정, 그 부담을 세대가 함께 지는 구조를 제도화했다.
프랑스 ‘가정 입원(HAD)’의 혁신
‘가정 입원(HAD)’은 ‘자립과 연대’의 관점에서 자주 언급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인 복지 제도 중 하나다. 1957년 파리에서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가, 1990년대 이후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제도적으로 확산됐다. 장기 입원이 불필요하거나, 병원 생활이 노인에게 심리적 부담이 되는 경우, 의료진이 직접 가정을 찾아가 병원 수준의 의료를 제공한다.
가정 입원은 단순 방문 진료가 아니라 법적으로 입원진료로 분류된다. 항암제 투여, 정맥주사, 산소치료, 완화 의료 등 병원 수준의 진료가 가정에서 이뤄진다.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사회복지사·약사 등이 팀을 구성해 매일 또는 격일로 방문한다. 이 중 간호사는 하루 한 번 이상 환자를 돌본다. 환자의 상태는 원격 모니터링으로 상시 관찰되고, 악화 시 즉시 병원으로 이송된다.

노동·보건·연대부가 인증한 기관만 운영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관리된다. 프랑스 보건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가정 입원은 병원 입원보다 그 비용이 평균 30~40% 저렴하다. 환자는 익숙한 환경에서 치료받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국가는 의료 재정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프랑스의 의료비는 GDP의 약 12%로 OECD 평균(9%)보다 높다. 이 중 입원 진료비가 40% 이상을 차지하며, 건강보험이 병원 입원비의 80%, 가정 입원비의 90~100%를 부담한다. 나머지는 민간보조보험이 보전하며, 국민의 95%가 이에 가입해 있다. 국민 대부분이 의료비 전액을 돌려받는 구조여서 실질적인 본인 부담은 거의 없다. 이런 구조 덕분에 개인의 의료 접근성은 높지만, 의료비 지출이 커질수록 건강보험의 재정 압박이 심화됐다. 공공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비용을 줄이면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구조가 필요했다. 이런 배경에서 프랑스는 가정 입원을 제도적으로 확대했다. 프랑스 회계검사원(헌법상 독립된 감사기구)은 2021년 보고서에서 “가정 입원이 병원 입원과 동등한 수준의 치료 강도와 안전성을 보장하면서도 의료비 통제와 입원 기간 단축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비용 절감’과 ‘삶의 질’ 개선
현재 프랑스의 가정 입원 환자는 약 22만 명(2023년 기준)이다. 이 중 1/3이 75세 이상이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INSERM) 조사에 따르면 가정 입원을 택한 노인의 70%가 “병원보다 만족도가 높다”고 답했고, 가족의 80%는 “돌봄 부담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가정 입원 환자의 재입원율도 일반 입원 환자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 효과를 넘어 삶의 질 개선과 가족 부담 완화라는 사회적 성과를 보여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엘리자베트 위베르 프랑스 가정입원기관연맹(FNEHAD) 회장의 평가다. 그는 의사 출신으로 1995년 프랑스 보건보험부 장관을 지냈고, 2008년 프랑스 최초로 민간 가정 입원 서비스 제공업체를 설립한 인물이다.
“프랑스 국민 69%는 우리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점점 더 외래 중심으로 변화하고 가정은 치료의 주요 장소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80% 이상은 중대한 치료라도 집에서 받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의사들 역시 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87%가 환자들이 자택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의사를 자주 또는 매우 자주 표현한다고 말했습니다.”
‘환자의 삶’을 중심에 두는 의료

프랑스 정부는 현재 전체 입원 환자의 약 4% 수준인 가정 입원 환자를 2030년까지 1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병원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인구 대비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지만, 입원 기간이 길고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돼 있다. 정부는 2022년부터 가정 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나, 방문 횟수와 진료 범위가 제한적이며 법적 지위도 입원이 아니라 방문 진료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2022년 7월부터 가정 내 의료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2025년 하반기 기준 전국 195개 장기 요양 가정 의료센터가 지정돼 있다. 각 센터는 의사 또는 한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3인 이상이 팀을 이루고, 의사는 월 1회 이상, 간호사는 월 2회 이상 환자를 방문한다. 다만 의료행위의 범위와 강도는 프랑스 가정 입원에 비하면 제한적이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명확하다. 행정 규제 당국이나 의사 집단의 이해가 아니라 환자의 실제 필요와 삶의 질을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병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이 이어지는 ‘생활 속 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즉 의료와 복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팀 단위로 협력하고, 법적·재정적 뒷받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원격 진료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의료진이 협동 진료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면 가정 입원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이미 2010년부터 원격 진료를 제도화해 진단·자문·관찰·응급 대응까지 보험체계 안에 통합했다. 현재 우리 원격 진료 논의는 ‘의료 민영화 논쟁’에 갇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위베르 회장은 “생명공학, 인터넷, 원격 의료가 존재하지도 않던 50년 전의 체계로 21세기를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효과가 입증된 해결책들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거나,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치료, 기술, 조직의 혁신 덕분에 오늘날 병원 안에서만 가능한 치료가 내일은 가정에서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변화의 과업을 완수할 모든 수단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료 행위의 질 향상, 의료 접근성 확대, 시스템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노년의 자립 지원하는 ‘자율형 주거’

프랑스의 자율형 주거는 노인이 자택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가도록 돕는 제도다. 프랑스 노인의 80% 이상이 자택에서 살지만 절반가량은 1970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주택에 머물고 있다. 좁은 복도나 가파른 계단 같은 물리적 제약은 신체 기능이 저하된 노인의 외출과 사회적 교류를 막아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주택청을 통해 욕실 개조·보수나 경사로 설치 등 개조 비용의 최대 70%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노인의 안전과 사회적 관계를 함께 보장하기는 어렵다. 이에 정부는 자택의 독립성과 시설의 지원 기능을 결합한 ‘자율형 주거’ 모델을 확대하며, 노인이 익숙한 생활 공간에서 돌봄과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이 결과,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약 2300곳의 자율형 주거 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에 거주하는 노인은 약 12만 명에 이른다. 프랑스 국가자립연대기금에 따르면 해당 시설 입소 요건은 ‘GIR 4~6등급’이다. 실제로 입주자 중 75%는 대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도 의존 단계(GIR 5~6)에 해당한다. 이는 한국의 장기 요양 등급 3~5등급(신체 기능은 양호하나 인지 저하)과 인지 지원 등급 수준이다. 참고로, 장기 요양 등급의 주요 특징은 ▲3등급-보행·식사는 가능하나 일부 활동 지원 필요 ▲4등급-목욕·옷 갈아입기 등에서 간헐적 도움 필요 ▲5등급-일상감독·지도 필요 ▲인지 지원 등급-신체 독립 기능은 가능하나 인지 기능 저하로 감독 필요 등이다.
프랑스 노인 자율형 주거 시설 중 2/3은 공공, 나머지는 민간이 운영한다. 입주자는 각각의 공간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의료 연계 서비스를 받거나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식사, 청소 같은 부가 서비스는 선택 사항이다. 시설 형태는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사회복지사와 간호 인력이 곁에서 생활 전반을 관리한다. 단, 요양 시설(EHPAD)처럼 24시간 간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중·경도 의존 노인을 위한 ‘돌봄의 재구성’

프랑스의 노인형 자율 주거 시설의 이용료는 월평균 2200유로(10월 10일 기준 1유로=1667원)다. 주거비와 식사·세탁·청소·사회활동·관리비가 모두 포함된 총액이다.
자율지원수당과 주택보조금, 저소득 노인보조연금 등을 받으면 실 부담액은 1000~1300유로 수준으로 낮아진다. 요양 시설의 평균 이용료가 2900~3000유로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자율형 주거는 요양 시설보다 30~40% 저렴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문제감사원(정부 산하 감사기구)에 따르면 자율형 주거 입주 노인의 병원 입원율은 일반 노인보다 17% 낮다. 고립감 지수는 이전보다 평균적으로 30% 줄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복지 재정의 효율화를 달성했다고 본다. 프랑스 시니어·요양 산업 포털 ‘플레니타’는 9월 23일 자 〈자율복지 분야에서 재택 전환은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란 기사에서 “요양 시설 지출은 191억 유로, 재택 돌봄 지출은 93억 유로”라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병원 중심 돌봄이 재정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현재 GIR 3~4등급 노인 22만 명이 요양 시설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충분히 자택 돌봄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가정에서 돌보면 매년 20억 유로를 절감할 수 있고, 이는 다수 노인의 ‘집에서 늙어가기’라는 희망에도 들어맞는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4년 장기 요양 보험 지출은 약 15조원 중 시설급여가 5조5041억원(37.3%)을 차지한다. 문제는 현재 국내 요양 시설에 입소한 노인 중 상당수가 중증 요양이 필요한 1~2등급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체 기능이 비교적 양호한 3~5등급 및 인지 지원 등급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장기 요양 인정자 116만5000명 가운데 87%가 이들 중·경도 의존층이다. 요양 시설 입소자 약 46만 명 중 최소 2/3이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스스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해 일정 부분의 돌봄만 필요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자율형 노인 주거’ 형태의 서비스로 전환이 가능한 집단으로 평가된다. 프랑스처럼 중·경도 의존 노인이 요양 시설이 아닌 자율형 주거에서 생활한다면, 단순히 시설 과밀을 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년의 독립성과 존엄을 지키는 새로운 돌봄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비중 미미하지만 유의미한 ‘세대 간 동거’

프랑스의 또 다른 노인 복지 모델은 ‘세대 간 동거’다. 자녀가 아닌 젊은 세대와 노인이 한집에 거주하며 서로 필요를 채워주는 ‘함께 사는 돌봄’ 형태다. 노인은 저렴한 임대료로 안정적인 주거를 지원하고, 청년은 합리적 비용으로 공간을 얻는 대신 말벗·생활 보조 등 일상적 교류를 제공한다.
이 제도는 60세 이상 고령자가 자신의 집 일부를 30세 미만 청년에게 저렴하게 빌려주는 구조다. 단순한 하숙이 아니라 세대 간 유대와 사회적 연대를 회복하기 위한 공적 실험에 가깝다. 2018년 ‘주거·도시 개발 및 디지털전환법(엘랑법)’은 이를 일반 임대차가 아닌 ‘연대적 공동 거주’로 규정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아닌 ‘함께 사는 이웃’으로 법적 지위를 명확히 했다. 공공·비영리 단체가 중개하며 ‘공동생활 헌장’을 마련해 운영한다. 청년의 도움은 정서적 동행과 가벼운 생활 지원 수준에 한정된다.
세대 간 동거는 2004년 비영리단체 ‘르 파리 솔리데르’가 노인의 고립과 청년 주거난을 완화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다. 현재는 프랑스 최대 사회적 경제 조직인 그룹 SOS 산하 프로그램 ‘라 코합(La Cohab)’으로 운영된다. 그룹 SOS는 1984년 설립돼 2만2000여 명이 복지·의료·교육 등 사회 혁신 분야에서 일하는 연 예산 10억 유로 규모의 비영리 네트워크다. 르 파리 솔리데르의 설립 배경과 세대 간 동거 추진 이유에 대해, 그룹 SOS 시니어의 세대 간 동거 프로그램 총괄 마르탱 라크루아 씨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르 파리 솔리데르는 2004년에 탄생했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 사회는 2003년 폭염을 계기로 고립된 노인의 생명과 돌봄 문제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폭염은 프랑스에서 유례없는 재난이었고, 가족이나 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된 수많은 고령자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프로젝트, 즉 세대 간 동거는 단순한 주거 모델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적·공동체적 효과를 낳는 실험입니다. 60세 이상 노인의 고립을 해소하고 모든 세대의 외로움을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18~25세 청년층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디지털 관계망 문화 속에서 심리적 고립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대도시, 특히 파리의 높은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청년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인 거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생활을 나누며 사회적 거리감을 좁히는 것, 바로 세대 간 관계 회복과 연대의 재구성이 우리의 핵심 목표입니다.
르 파리 솔리데르는 세대 간 단절이 심화된 사회 속에서 연대를 회복하고, 공동체적 주거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려는 사회 혁신 모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약 1만5000쌍의 청년·노인 동거
세대 간 동거는 2006년 비영리단체 ‘앙상블 드 제네라시옹’에 의해 전국적 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현재 약 1만5000쌍의 청년·노인이 함께 살고 있으며, 누적 중개 건수는 8000건에 이른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과 비교하면 확산 속도는 느리다. 65세 이상 노인 1400만 명, 청년층 800만 명을 고려하면 참여율은 0.1%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안네 라빗 오를레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간 연대형 주거: 이상과 현실(2013)》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주목하지만 실제로는 주거 시장 내 비중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앙상블 드 제네라시옹 네트워크 총괄이사 가에탄 비투 씨에게 물었다.
― 지금까지 누적 중개 건수가 약 8000건입니다. 평균적으로 세대 간 동거는 얼마나 지속됩니까.
“평균 약 2년입니다.”
― 요양 시설 입소 시기를 늦추거나 청년의 주거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습니까.
“노인의 요양 시설 입소를 평균 3~4년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청년은 정서적 교류에 참여할 경우 월 10유로, 단순 임대라도 시세의 30% 이하로 거주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아르바이트가 필요 없어 학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 경제적 효과 외에 삶의 질 개선에는 어떤 영향을 줍니까.
“노인에겐 사회적 관계 유지와 활력 회복, 청년에겐 심리적 안정감과 외로움 완화 효과가 있습니다. 서로 교류하며 활력을 얻습니다.”
― 참여 희망자들의 우려는 무엇입니까.
“저희는 매우 세밀한 중개 및 사전조사 절차를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청년을 직접 면담하고, 모든 노인의 가정을 방문해 그들의 기대를 파악합니다. 노인은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는 데 대한 불안, 생활습관이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유를 잃을까 하는 걱정을 주로 표현합니다. 반면 청년은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지만, 친구를 초대하기 어렵거나 매일 일정 시각에 귀가해야 하는 의무에 대한 고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연대의 철학’으로 본 복지의 지속가능성

우리 헌법 제34조 4항은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 인구 급증과 연금·의료·장기 요양 재정 압박 속에서 단순한 복지 확대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책임과 역할을 새로 나누는 세대 간 조정의 틀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복지를 ‘부양’이 아니라 ‘자율성과 연대의 조화’ 속에서 이해하려 노력해 왔다. 노인이 가능한 한 스스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그 비용과 책임은 세대가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 프랑스 역시 재정난과 사회적 갈등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 축소를 시도했다가 ‘정권 퇴진’ 구호까지 나왔지만, 복지를 세대 간 공동 책임의 문제로 본다는 원칙만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세대 간 정의와 사회적 유대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프랑스 복지국가 논의의 핵심축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그 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온 인물이자, 분배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르크 플뢰르베 파리경제대 교수와 나눈 문답이다.
플뢰르베 교수는 ‘불평등 연구’로 잘 알려진 토마 피케티와 함께 프랑스 복지국가의 사상적 기반을 재구성한 학자로 “진정한 복지는 세대 간 연대와 사회적 유대의 회복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2009~2019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과 공공 정책을 가르치며 복지경제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GDP를 넘어서(Beyond GDP)’ 프로젝트를 주도해 삶의 질·형평·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복지지표를 제안했다. 이 연구는 이후 OECD와 UN의 정책 지표에 반영돼 세계 복지 담론의 지형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청년과 노인은 다른 집단 아냐”
―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고, 출산율은 역사상 최저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재정을 계속 노년층에 투입하는 게 타당할까요.
“세대 간 형평성을 단순히 젊은 세대 대 노년 세대의 대립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청년과 노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이 아닙니다. 한 인구가 생애의 서로 다른 단계를 거치는 과정일 뿐이죠. 인구 구조가 급격히 바뀌면 특정 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지게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생애 주기 전체의 균형에서 봐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노인을 위한 부담을 거부한다면, 결국 자신이 늙었을 때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줄이려면 복지를 줄일 게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자본 수익을 통해 연금을 보완할 수 있는 기금을 미리 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세금 부담을 덜면서도 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늘고,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습니다. 복지 지출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성장이 둔화된다고 해서 국민의 생활 수준이 곧바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상승 속도가 느려질 뿐이죠. 그렇다고 연대의 원리를 바꿀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고령화로 연금이나 보건 지출이 늘면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복지를 줄이자는 논의가 아니라, 재정을 얼마나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세금과 보험료가 어디에 쓰이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 고령화가 ‘위협’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복지 철학은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요.
“진정한 정의는 약자를 실제로 보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잃어버렸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좇는 생활방식은 인간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사회 전체를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복지의 목적은 단순한 소득 이전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관계의 질을 회복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 유럽은 재정 압박 속에서도 노인 복지 예산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 사회적 결속이 강화됐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세대 갈등이 커졌다고 보십니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례에서 한국은 뭘 배워야 할까요.
“프랑스의 연금개혁 당시 젊은 세대의 반발은 노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청년들 역시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이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연금 수급액이나 정년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 환경의 불평등 구조까지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령자가 자신의 건강과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은퇴를 단절이 아닌 점진적 전환의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결국 ‘세대 간 정의(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 또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간의 권리·의무·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란 단순한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맞게 일하고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다시 조정하는 일을 뜻합니다.”⊙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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