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국내 최초 '약'이 된 앱…불면증 환자 절반 치료 성공했다

해암도 2023. 2. 16. 07:16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치료제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 앱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를 받으면서다. 정부가 향후 이 앱을 신의료기술로 고시하면 일단 환자들에게 처방될 수 있다. 일단 의사 진단을 거쳐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로 앱을 처방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약물치료 이외 새 치료수단…68만 환자 수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5일 국내 업체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소프트웨어(앱) ‘솜즈(Somzz)’를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로 품목 허가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약물이 아니라 의료기기로 분류되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단 점에서 1세대 합성의약품,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불린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제품은 인지행동치료법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현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라며 “기존 약물치료법 이외에 새로운 치료수단을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불면증 환자는 68만4560명(2021년 기준)이다. 식약처는 이들 이외 잠재적인 환자까지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5일 오전 충북 청주시 식약처 회의실에서 국내 첫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상 불면증 치료법은 비약물치료와 약물치료로 나뉜다. 수면제는 내성 등 부작용 위험이 큰 만큼 의료계에선 우선 잘못된 생활 습관 등을 개선하는 인지행동치료를 1차 치료로 권고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수면평가 ▶자극조절법 ▶수면제한법 ▶수면습관교육법 ▶인지치료법 ▶이완요법 등을 통해 불면증을 유발하는 심리·행동·인지적 요인들을 교정하는 걸 목표로 한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급성 불면증의 경우 수면제를 단기 처방하면 수면 리듬이 바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라면서도 “통상 만성적인 불면증은 수면 위생이라 불리는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극복하는 게 가장 건강한 방식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지속되면 수면제를 함께 사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앱 다운받아 수면 교육…“임상 패러다임 변화” 

이 제품이 상용화되면 불면증 환자들은 병원에서 의사 처방 하에 스마트폰에 솜즈라는 앱을 다운받아 수면습관교육, 실시간 피드백, 행동 중재 등 앱이 제공하는 6단계 프로그램을 6~9주간 거치게 된다. 김남수 식약처 첨단제품허가담당관은 “의사 진료 후에 인증키를 받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뤄지는 인지행동치료는 매주 1회씩 치료 인력을 대면하는 방식으로 통상 10회 정도 진행되는데 이를 비대면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식약처가 국내 임상시험 기관 3곳에서 6개월간 진행된 임상시험 결과를 검토한 결과 솜즈를 쓴 환자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증상 개선이 확인됐다고 한다. 임상에 참여한 불면증 환자 절반 정도(46%)가 솜즈를 쓴 뒤 정상군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안전성과 관련해서도 채규한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장은 “디지털 의료기기를 직접 인체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사항은 없다”며 “의료인과 상의해 사용해달라”고 권고했다.

15일 오전 충북 청주시 식약처 회의실에서 식약처 관계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품목 허가를 받은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 현장에선 이번 허가가 “불면증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임상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김재진 대한디지털치료학회 학회장)이라고 평가했다.

비용 얼마 책정될지, 보험 여부 관건 

일단 물꼬를 텄지만, 향후 의료 현장에서 처방이 늘려면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의료진이 처방하지 않거나 환자가 사용을 꺼리는 등 외면받을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오유경 식약처장은 “6~9주간 환자가 지속해서 쓰기 위해 환자 친화적이어야 한다”라며 “환자가 중간에 그만두지 않도록 흥미를 계속 유발하는 방법으로 제품이 개발되게 하겠다”고 했다. 수가(의료행위 대가)가 어느 수준으로 정해질지도 관건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이뤄지는 인지행동치료는 1회당 4만~5만원 수준으로 책정돼 있으며 6회까지 건보가 적용돼 본인 부담률은 30%(외래 기준) 선이다.

이 제품은 일단 복지부가 혁신의료기술로 고시하면 당장 병원에서 비급여로 환자에 처방할 수 있다.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수가와 건강보험 적용(급여화) 여부, 본인 부담률 등을 결정하게 된다. 정부는 최대한 이 절차를 신속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유경 처장은 “적절한 시장 가치를 인정하고 신속히 시장에 진입하도록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종우 교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쓰면 인지행동치료 시에 전문가를 직접 만나는 시간 등을 줄여 비용 효과적일 수 있다”라며 “디지털 기기에 적극적인 젊은 층이 초반에 많이 쓸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백 교수는 다만 “대면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존 치료를 완전히 대체하긴 힘들고 보조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제2 디지털 기기 30개 이상”

현재 디지털 치료기기는 이를 허가해 쓰는 곳이 미국·독일·영국 등 전 세계 14개국에 이를 정도로 전 세계적 추세다. 미국에선 2017년 약물중독 치료제 ‘리셋’이 첫 허가를 받았고 영국에선 국민보건서비스(NHS)가 불면증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를 영국인 1000만명이 쓸 수 있게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기기는 연평균 20.6% 성장률을 보여 2030년 시장 규모가 약 235억6938만 달러(약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제2, 3의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솜즈와 유사한 불면증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임상 단계에 있는 2호 제품이 있으며, 향후 허가받을 거로 기대되는 제품은 30개 이상이라고 한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