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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스키,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코리안 싱글몰트’ 올인한 이 남자

해암도 2023. 2. 5. 06:15

김창수 김창수위스키 대표
코리안 위스키 대박 비결은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국내산 싱글몰트 위스키가 있다. ‘코리안 위스키’라 불리며 팬덤까지 생긴 ‘김창수위스키’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에서 지난해 4월 내놓은 1년 2개월 숙성 싱글몰트 위스키는 336병 한정 출시에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였다. 출고가는 700㎖ 한 병에 23만 원대. 적지 않은 금액인데, 완판은 물론 리셀 가격이 2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소위 대박을 쳤다.

김창수 김창수위스키 대표./톱클래스
 

김창수위스키증류소는 국내 단 두 곳의 싱글몰트 위스키 양조장 중 유일하게 한국인이 모든 양조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100% 맥아만 발효·증류·숙성한 위스키를 일컫는다. 이곳 위스키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김창수 대표는 발효기와 증류기 등 모든 설비를 직접 설계하고 주문 제작할 정도로 위스키 제조에 공을 들였다. 그는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제대로 된 국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10여 년간 위스키 제조에 몸을 바쳤다. 스코틀랜드 양조장 100여 곳을 견학했고, 일본에서 노하우를 익히며 꿈을 향해 차근차근 밟아가다 2020년 드디어 그 꿈의 발판이 될 증류소를 열었다.

경기 김포시 끝자락, 증류소의 문을 열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훅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309㎡(약 90평) 규모, 증류소를 빼곡히 채운 200여 개의 오크통에는 코리안 위스키가 진한 향을 풍기며 숙성 중이었다.

 

코리안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안될 거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증류소를 만들고 위스키 제조의 전 과정을 제 손으로 직접 챙긴 코리안 위스키가 나오기까지 꼬박 10년 넘는 인생을 바쳤어요. 이 위스키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생각해보니 제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냄새가 오묘합니다. 시큼 달큼하면서도 과일 삭는 냄새 같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냄새가 섞여 있어요. 지금은 발효 냄새가 강하게 날 겁니다. 증류, 숙성 과정에서 나는 냄새도 있고요.”

위스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스무 살 때부터 술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때부터 술 만드는 공부를 했고요. 여러 주종 중에 위스키가 가장 맛있고 좋았어요. 위스키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제조한 위스키가 없다는 걸 알고 위스키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물론 주변에선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대기업에서도 하지 못하는 걸 어떻게 하냐고요.”

처음 마셨던 위스키의 맛과 향을 기억하나요.

“글쎄요. 처음 마셨을 땐 독하다는 기억만 있고, 위스키의 매력을 느낀 건 ‘피트’ 위스키를 마시고 나서였어요.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이탄향이 강한 위스키죠. 이탄향은 위스키 특유의 소독약 맛이라고들 표현해요. 또 ‘라프로익 캐스크 스트렝스’를 마셨을 때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위스키의 맛과 특징을 발견했어요. 이후로 위스키의 오묘한 맛의 세계에 반했고요”

대학에서 전공은 무엇을 했나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지 궁금합니다.

“중국어요. 대학 다니면서도 술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술 동아리를 만들고 술 관련 다양한 캠페인을 추진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상담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 방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졸업 후에 전공 관련 분야로 취업했는데, 10년 가까이 술만 바라보다가 관련 없는 일을 하려니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10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바텐더 일을 시작했어요. 내 손으로 위스키를 만든다면 나중이 아닌 지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위스키 제조를 향한 긴 여정의 첫걸음이었군요.

“물론 바에서 일한다고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는 건 아니에요. 방법이라면 스코틀랜드에 있는 양조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인데, 돈이 없었어요. 이후 술 관련 회사만 다니다가 2014년에 그때까지 모은 돈 1000만 원을 들고 스코틀랜드로 떠났습니다.”

그 여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무작정 증류소에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자전거와 텐트만 들고 떠난 터라 노숙하며 목표했던 102개의 증류소를 모두 방문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일하는 건 실패했지만, 제가 이 꿈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어요.”

꿈을 향한 도전에 전환점이 된 일화가 있다면.

“양조장을 돌다 들른 바에서 동양인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의 유명한 ‘벤처 위스키’를 만드는 지치부(秩父) 증류소 직원이었어요. 그 연을 잘 맺어서 일본에 건너가 위스키 제조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가 문을 연 건 2020년입니다. 그사이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증류소를 차리기까지 긴 텀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투자가 필요했지만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어요. 쉽지 않았죠. 그사이 저는 일본을 오가며 위스키 만드는 공부를 계속 이어갔고요. 위스키 관련 회사도 잠시 다녔는데, 먹고살 만해지니 위스키 증류소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늘어지기 전에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의도에 바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증류소 만들 준비를 시작했어요. 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1인 증류소를 열었습니다.”

증류소에 들어오면서 본 구릿빛 증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증류기를 직접 설계했다고요.

“최대한 비용이 적게 드는 방향으로 증류기를 만들었어요. 제가 사용하는 증류기를 보면 크기가 아주 작아요. 작을수록 위스키 맛은 좋습니다. 구리랑 접촉면이 늘수록 맛있는 스피릿이 나오기 때문이죠. 엄청나게 큰 증류소도 작은 증류기 여러 대를 두고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이 가진 증류기의 1/10 정도 수준이에요. 엄청 작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작은 증류기를 직접 운용하며 맛의 디테일을 살필 수 있겠어요.

“동네 시골 할머니가 손으로 직접 빚어 파는 손만두가 맛있을까요, 기계로 뚝딱 만들어 대량으로 파는 만두가 맛있을까요. 분명 맛의 차이는 있겠죠? 같은 이치예요. 증류기가 작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맛을 만들어볼 수 있었어요. 제 미각 하나 믿고 가는 거죠. 음식의 간을 잘 맞추면 되는 것처럼 잘 만들면 돼요(웃음). 위스키는 수백 수천 가지 선택에 의해 맛이 좌우돼요.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도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위스키가 매력적이죠.”

/톱클래스
 

숙성 연도는 스코틀랜드 기준인데, 스코틀랜드와 우리나라는 기후가 달라요. 스코틀랜드는 연교차가 적고 습해 숙성이 느리고 증발도 적은 편입니다. 10년 숙성한 위스키가 하위 등급에 분류될 정도로 숙성에 매우 오랜 기간이 소요되죠.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가 정반대라 숙성이 훨씬 빨라요. 3년 정도만 숙성해도 스코틀랜드에서 10년 이상 숙성한 맛이 납니다.

지난해 4월과 9월 처음으로 김창수위스키를 내놨죠. 반응이 뜨거웠어요.

“소량 생산의 장점을 살리고 커팅을 10% 내외로 엄격하게 하는 등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스피릿(증류액)만 먹어도 역하거나 독한 느낌이 거의 없죠. 앞서 말한 작은 증류소가 가질 수 있는 장점에 집중했기에 맛에 있어서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김창수위스키라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점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집니다.

“코리안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안될 거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증류소를 만들고 위스키 제조의 전 과정을 제 손으로 직접 챙긴 위스키가 나오기까지 꼬박 10년 넘는 인생을 바쳤어요. 이 위스키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생각해보니 제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첫 번째 위스키가 증류소의 양조 기술과 노하우를 종합한 첫 싱글몰트 위스키였다면, 두 번째 위스키는 코리안 싱글몰트 위스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술이었습니다.

“두 번째 위스키를 만들 때는 국내산 몰트와 효모를 사용하고 국내산 나무로 만든 캐스크에서 숙성했어요. 첫 번째 위스키는 스카치위스키와 비슷한 스타일로 스카치위스키 품질에 얼마나 따라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봤다면, 두 번째 위스키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스타일로 국산 위스키의 차별성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창수위스키를 맛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숙성 연도가 2년 이하인데, 맛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이 많아요. 숙성 연도가 위스키에 중요한 요소가 되나요?

“숙성 연도는 스코틀랜드 기준에 맞춰서 그래요. 스코틀랜드와 우리나라는 기후가 달라요. 스코틀랜드는 연교차가 적고 습해 숙성이 느리고 증발도 적은 편입니다. 10년 숙성한 위스키가 하위 등급에 분류될 정도로 숙성에 매우 오랜 기간이 소요되죠.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가 정반대라 숙성이 훨씬 빨라요. 3년 정도만 숙성해도 스코틀랜드에서 10년 이상 숙성한 맛이 납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숙성을 중요하게 보지만, 저는 모든 부분을 중요시합니다. 숙성 연수는 좋은 위스키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저는 오크통의 퀄리티나 크기, 제조방식 등 보이지 않는 다른 조건을 좀 더 신경 씁니다. 숙성 연도는 낮아도 맛은 더 좋겠죠.”

/톱클래스

김창수위스키만의 맛의 특징이 있을까요.

“아직은 완성품이라 할 만한 건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고요. 많은 사람이 제가 만든 위스키를 찾고 있지만 생산량이 적어서 그만큼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증류소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증류소가 커지면 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여기는 시설이 열악해 한계가 많거든요. 더 좋은 재료도 써보고 다양한 맛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요즘 위스키 소비가 늘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봅니다. 위스키도 대중 주류의 반열에 드는 게 아닐까 기대해봅니다.

“위스키 자체가 대중 주류는 아니에요. 술도 음식도 용도에 따라 쓰임새가 정해지는데, 도수가 높은 술은 대중 주류를 차지하기가 어려워요. 도수가 낮아 편하게 음식과 즐길 수 있는 맥주나 와인 같은 술과는 다르죠. 다만 이전에 비해 위스키 소비가 는 건 사실이에요. 우리나라 건국 이래 위스키가 최대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실 해외에서는 10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코로나 시점으로 소비가 는 것은 맞지만 위스키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건 훨씬 이전으로 보고 있어요. 먹고살 만해지면서 더는 음식도, 주류도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즐기는 시대가 왔잖아요. 고가의 요리나 몇 십만 원짜리 오마카세를 소비하는 층이 증가한 것만 봐도 그래요. 자연스럽게 술도 ‘싸게 마시고 빨리 취하자’가 아닌 ‘맛을 즐기자’로 넘어가고 있고요. 소득 수준이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위스키 소비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소득 수준이 위스키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더 크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경우 국민소득 수준과 관련이 커요. 싱글몰트 위스키 소비 상위권 나라만 봐도 선진국들이 대부분이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주로 소비되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대만, 우리나라가 있고요. 소득과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여유가 생기니까 음식 중에서도 술, 술 중에서도 고급 주류인 위스키로 관심이 넘어온 거라 보는 거죠. 이미 예고됐던 바예요. 앞으로 위스키 시장은 더 커질 겁니다.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 중에 2030세대의 반향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저뿐만 아니라 위스키 증류를 준비하는 곳이 늘고 있고요.”

김창수위스키증류소처럼 우리나라에 위스키 증류소가 더 많아진다면 위스키 대중화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텐데요.

“국내에서 위스키가 더 대중화되려면 과세 방식을 바꿔어야 해요. 지금은 질 좋은 위스키를 생산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위스키에 붙는 세금은 종가세(가격에 비례해 붙는 과세) 방식인데, 이를 종량세(양이나 도수에 비례해 붙는 과세)로 바꿔야 해요. 종가세 체계에서는 값비싼 원재료를 사용하면 세금이 늘기 때문에 주류의 고급화가 어렵죠. 또 수입산 위스키와 세금 역차별 문제도 들 수 있습니다. 수입산 위스키가 같은 값인 국산 제조 위스키보다 세금을 훨씬 적게 내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수입산 위스키에 세금 혜택을 주는 셈이죠. 이런 세금 제도를 먼저 개편해야 국산 위스키도 경쟁력이 생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수제 맥주만큼 다양한 국산 위스키가 나오려면 이런 규제부터 없애야 해요.”

다음 위스키는 언제쯤 맛볼 수 있을까요.

“올해 상반기를 노리고 있어요. 제조를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안 돼서 2년 숙성의 위스키가 나올 것 같습니다. 3년이 되기 전까지는 정식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장 과정을 소비자들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어요. 3년 이후부터는 양을 제대로 늘려서 낼 계획입니다.”

김창수위스키 로고에는 그의 이름을 딴 철자 C와 S가 뒤엉켜 태극무늬를 이룬다. 이는 증류기 모양을 의미하는 동시에 증류주의 상징인 불과 물의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마크 하나에서도 한국인 위스키 디스틸러(distiller, 증류소 생산자)가 만든 코리안 위스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가 위스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말렸지만, 결국 그는 해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위스키에 ‘김창수’라는 이름 석 자를 새겼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위스키에 헌신한 그 여정이 이름에 가치를 더한다.

 

◇ 김창수

1986년생. 제대로 된 코리안 위스키를 만들어보자는 일념으로 스코틀랜드에서 100여 곳이 넘는 위스키 증류소를 견학했다. 일본 지치부 증류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여러 해 준비 끝에 2020년 우리나라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업 ‘김창수위스키’를 열었다.

 

글·사진=서경리 기자톱클래스     조선일보     입력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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