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디코드 2.0]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꼽은 혁신기술 집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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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지(超未知)의 위기. 현대경제연구원은 15일 ‘2023년 국내 트렌드’를 전망하면서 현재 한국 산업이 직면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미지의 미지, 영어로는 ‘unknown-unknown’이라고 부를 만큼 불확실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IMF와 세계은행은 물론 한국은행도 심각한 불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트리아 재무상을 맡았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 혁신’이 현대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신(新) 결합’ 또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증돼 왔습니다. 문제는 어떤 기술이 어떻게 미래를 바꿀지 미리 알아보고 뛰어들어 주도권을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산업의 최근 동향을 살피고, 시대적 흐름을 함께 들여다 본다면 어렴풋하게 후보 정도는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발행하는 120년 전통의 ‘테크놀로지 리뷰’는 매년 초 인류의 미래를 바꿀 ‘10대 미래 기술(10 Breakthrough Technologies)’을 선정해 발표합니다. 올해도 지난 10일 최신호에 ‘2023년의 10대 미래 기술’을 게재했습니다. 우주를 내다보는 새로운 인류의 눈부터 예술의 영역에 뛰어든 AI(인공지능),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인공 장기, 고대 유전자 분석, 배터리 재활용처럼 우리의 근원을 탐구하고 삶을 바꿀 기술들이 가득합니다. 물론 당장 실현될 기술도 있고, 10~15년 뒤를 기대해야 하는 기술도 있습니다. 이번 디코드 2.0에서는 이들 기술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 낮추는 크리스퍼 가위
불과 5년 전만 해도 크리스퍼(CRISPR)라는 개념은 극히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실험실의 기술’이었습니다. 흔히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 ‘크리스퍼’와 특정한 유전자에만 달라붙는 유전물질인 RNA(리보핵산)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2012년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원리와 활용법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거나 이어 붙일 수 있고 사람은 물론 동물이나 식물에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미 유전성 빈혈 같은 분야에서 환자를 고친 사례가 있고, 일본에서는 영양소를 높인 토마토가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태아의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엄마 뱃속에서 사전에 교정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기술보다 손쉽고 폭넓은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순식간에 유전자 연구의 주류가 됐습니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크리스퍼의 가능성 가운데 현대인의 심각한 문제인 성인병, 고콜레스테롤 치료에 주목했습니다. 지난해 뉴질랜드의 한 여성이 유전자 교정 치료를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영구적으로 낮췄습니다. 심장병을 앓고 있었던 환자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였지만 과학자와 의사들은 이런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기존보다 발전한 크리스퍼 2.0, 크리스퍼 3.0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수많은 중증 질환과 고혈압 같은 질병을 더 안전하고 오류 없이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퍼를 둘러싼 특허 분쟁이 시사하는 바도 있습니다. 크리스퍼는 엄청난 후속연구와 응용이 보장된 영역입니다. 이에 대한 특허 권리를 주장하는 그룹이 두 곳 있습니다.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가 이끄는 UC버클리는 크리스퍼를 먼저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미국 MIT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브로드연구소는 본인들이 크리스퍼를 생물에서 활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맞서 왔습니다. 원리를 발명한 쪽과, 이의 응용성을 확인한 쪽이 싸우는 형국입니다. 다우드나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 2020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감염생물학연구소 소장과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특허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미국 특허심판원은 브로드연구소의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무조건 먼저 만든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응용에 대한 권리도 인정한 것이죠. 엄청난 부가가치가 예상되는 크리스퍼 분야에서 한국도 아직 존재감을 나타낼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AI…생성테크의 시대
최근 강력한 AI 기술 챗GPT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 오픈AI는 2021년 ‘달리(DALL-E)’라는 AI를 선보였습니다. 달리는 글로 상황을 묘사하면 그림을 생성해주는 AI입니다. 특히 지난해 4월 출시된 달리2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간 창조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어 8월 등장한 영국 스타트업 스테빌리티AI의 스테이블 디퓨전은 뛰어난 이미지 생성 능력에 더해 가정용 컴퓨터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접근 장벽을 낮췄습니다.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AI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하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몇 달 만에 수천만 개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지난 10년간 가장 큰 격변’이라는 얘기가 과장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런 분야를 지칭하는 생성테크(generative tech)라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생성테크가 발달하면 구글의 검색 엔진, 포토샵의 사진 편집, 디지털 비서 시리·알렉사 같은 IT서비스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미지 생성 AI는 이미 포토샵 같은 상용 소프트웨어에 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라면 영상을 생성하는 AI도 곧 범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텍스트 투 이미지(text-to-image)’가 ‘텍스트 투 비디오(text-to-video)’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구글, 메타 같은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은 영상 생성 AI 기술을 시연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지난해 텍스트 명령을 받으면 고해상도 영상을 만들어내는 ‘이매젠 비디오’와 ‘페나키’라는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색 풍선을 보여주다가 카메라의 이동에 따라 동물원 속 기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현실에선 생기기 쉽지 않은 장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냅니다. 이들이 만들 수 있는 비디오 클립은 아직 수십 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 리뷰는 “언젠가 대본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반도체 칩 설계의 모든 것이 바뀐다
컴퓨터 반도체 칩 설계는 비용이 많이 들고, 기존 기업들의 특허로 인해 진입조차 쉽지 않습니다. 미국 인텔이나 영국 암(Arm) 같은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독과점 구도를 깰 수 있는 새로운 표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리스크 파이브(RISC-V)’로 불리는 이 공개 표준을 근거리 무선통신인 블루투스(Bluetooth)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블루투스는 개방형 공개 표준입니다. 주파수 및 데이터 인코딩 프로토콜 같은 설계 사양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만들면, 다른 블루투스 기기와의 호환성은 별도로 점검하거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반도체 칩은 완전히 다른 생태계 입니다. 컴퓨터나 노트북을 만들려면 인텔이나 암이 출시한 기성품 칩을 구입하거나, 별도로 이들에게 주문을 해 더 비싼 맞춤형 칩을 구입해야 합니다.
RISC-V는 반도체 칩도 블루투스처럼 공개 표준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 전세계 3100여 기관과 개인이 RISC-V 인터내셔널에서 표준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표준으로 만들어진 RISC-V칩은 이미 이어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AI프로세서 등에 활용되고 있고 이렇게 생산된 칩이 100억개에 이릅니다. 일부 기업들은 가장 고사양이 필요한 데이터 센터와 우주용 RISC-V 설계에 나서고 있습니다.
RISC-V가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으로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반도체 IP(특허) 라이선싱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회사는 암이고, 미국 시놉시스와 케이던스가 뒤를 잇습니다. 모두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습니다. 실제로 암은 최신 서버용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칩을 공개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RISC-V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중국은 미국을 우회해 반도체 굴기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셈입니다.
◇대중화되는 군사용 드론
프레데터(Predator), 리퍼(Reaper) 같은 미국의 첨단 정밀 타격 드론(무인기)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전쟁의 판도를 바꿔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는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중국, 이란, 튀르키예 같은 나라에서 만든 저예산 드론 모델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드론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쟁의 방식은 물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공격할 것인지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새롭게 각광받는 드론 가운데에는 DJI의 쿼드콥터 같은 기성품도 있습니다. 러시아가 키예프에서 민간인을 공격하는데 사용한 이란산 드론은 가격이 3만달러에 불과한데 장거리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그 가운데 튀르키예 바이카르 코퍼레이션이 만든 바이락타르 TB2(Bayraktar TB2)에 주목했습니다. 500만달러짜리 이 드론은 시속 138마일(약 222km)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186마일(약 299km) 떨어진 곳과 교신할 수 있습니다. 무려 27시간 동안 비행이 가능합니다. 이 드론에 지상국과 비디오를 공유하는 카메라를 달면 레이저 유도 폭탄을 장착한 뒤 실시간으로 조종해 마치 정밀 폭격기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우려는 기존의 미국산 드론이 엄격한 수출 통제를 받는데 비해, TB2는 어느 나라에나 수출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튀르키예는 이미 2016년 쿠르드족을 상대로 드론을 사용했고 리비아, 시리아,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도 활용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돈바스에서 군사 작전을 위해 6대를 구입했는데 지난해 러시아 침공을 방어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중국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는 대만도 드론을 대항 무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에는 가오슝 군사 시설에서 신용 드론 운용 훈련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대만 국가중산과학연구원(NCSIST)이 개발하고 있는 전술형 드론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헬리콥터 같은 무기에 최적화된 대응 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군사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겁니다.
◇원격진료를 통한 임신중단
미국 대법원은 지난해 낙태가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겁니다.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 근거가 사라지자 풍선효과가 나타났는데 낙태약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증한 것이죠. 앞서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기를 감안해 두 가지 알약의 원격처방을 허용했는데 이 약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입니다. 두 약을 순서대로 복용하면 임신 초기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는 점이 임상시험에서 입증돼 있습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차단해 유산을 유도합니다.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데 위궤양 같은 다른 질환의 치료제로도 사용됩니다. FDA는 이달 초 온라인 및 오프라인 소매 약국이 처방전이 있는 환자에게 이 약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집 앞 약국에서도 낙태약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새로운 약물의 등장이 근친이나 성폭력,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여성의 권리를 중시해야 한다는 임신 중단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죠.
미국은 낙태 허용 여부를 각 주의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금지하는 주는 현재 13개 주에 이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접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에는 이 약을 원하는 사람에게 배송하고, 금지된 주에서 대체 주소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도 이들 업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4일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낙태를 금지한 주에 배송해도 우체국 직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리 검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문으로 만들어지는 장기
지난해 의학·바이오 분야의 최대 이슈는 돼지 심장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 데이비드 베넷이라는 57세의 미국 남성이 메릴랜드 대학에서 유전자 편집된 돼지 심장을 이식 받은 뒤 두달 간 생존했습니다. 이 이식을 주도했던 의사 무하마드 모히후딘은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2022년 10대 과학 인물’ 리스트의 맨 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런 시도가 중요한 이유는 장기 이식을 둘러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13만건의 장기 이식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수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순서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돼지와 같은 동물 장기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오랜 기간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인체에 이를 이식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을 해를 끼치는 존재로 인식하고 공격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의학·바이오 분야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장기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체에 더 적합한 장기를 생산하는 동물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나타나는 거부반응을 처음부터 없앤 장기를 동물에서 생산하는 식입니다. 둘째는 아예 장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해 장기를 찍어내거나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식입니다. 이 경우 환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장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인공장기 분야에서 매년 놀라운 성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궤양성대장염 환자가 자신의 장 조직을 배양해 이식 받기도 했고 영국에서는 인공적으로 혈액을 배양해 수혈하는 시험이 진행됐습니다. 혈액 부족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테크놀로지 리뷰는 인공장기 상용화까지는 10~15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주류가 된 전기차
1996년 미국 자동차 업체 GM은 전기차 ‘EV1′을 출시했습니다. 4시간을 충전하면 최대 시속 130km의 속도로 100km 이상을 달릴 수 있었고 개량된 모델은 300km까지 주행거리가 늘어났습니다. 톰 행크스, 멜 깁슨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EV1의 첫 구매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GM은 얼마 뒤 EV1을 모두 수거해 애리조나의 사막에 폐기처분했습니다. 이 과정은 2006년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 페인의 영화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에서 다뤄졌습니다. 석유 회사와 자동차 회사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적인 전기차를 매장시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혁신을 언제까지나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세웠고, 완성차 업체들까지 전기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지난해 기준 전세계 신규 자동차 판매의 13%가 전기차였습니다. 2년 전에는 4%에 불과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대 말이면 이 비중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정부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2035년까지 모든 신차에 배기가스 제로(0)를 요구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같은 원칙을 세웠습니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다만 전기차 대중화까지는 몇 가지 장벽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전기차는 비슷한 사양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여전히 비쌉니다. 또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전소가 빠르게 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능 개선이 한계에 달한 배터리도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우주를 보는 새로운 인류의 눈
2021년 크리스마스에 우주로 발사돼 지난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WST)은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우주 망원경이었던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 100배 강력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NASA 2대 국장이자, 아폴로 계획을 이끌었던 제임스 웹의 이름을 딴 이 망원경의 제작과 발사에만 100억달러가 넘게 들었습니다. JWST는 우주를 가득 채운 성간먼지를 뚫고 점차 멀어지고 있는 은하와 별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JWST 메인 반사경의 직경은 허블의 3배에 이르고, 태양열과 빛으로부터 JWST를 보호하는 장막의 크기는 테니스 코트와 비슷합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해 최고의 과학성과로 JWST를 꼽았습니다. 지난 9월 공개된 외계행성 촬영 사진은 “80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밝은 등대 옆에 있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포착한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천문학계에서는 JWST를 통해 태초의 빅뱅 이후 우주 최초의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려 130억년 이전 초기 우주 상태를 들여다보는 타임머신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태양계 행성을 살펴 대기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인류가 언젠가 이주할 새로운 우주 식민지 후보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매일 지구로 전송될 수많은 사진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웅장한 성운과 거대한 별의 일생을 알려줄 겁니다.
◇고대 유전자 분석
인류학과 고고학자들은 오랜 기간 잘 보존된 표본을 찾기 위해 전세계를 헤맸습니다. 고대 인류의 치아와 뼈를 연구해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형태를 갖춘 치아와 뼈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표본이 적다 보니 병에 걸리는 등 특수한 경우를 오독해 잘못된 인식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과거 네안데르탈인은 사람보다 원숭이 가까운 존재이자 왜소한 존재로 인식됐는데, 이는 초창기 발견한 네안데르탈인 표본이 심한 관절염을 앓아서 구부정하고 이가 다 빠져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급속도로 발전된 DNA 시퀀싱은 이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습니다. 손상된 표본에서 추출한 손상된 DNA도 바로잡고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저렴한 DNA 시퀀싱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소변을 본 흙에서 발견된 DNA까지도 분석해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이 이 분야를 이끌고 있습니다. 전체 게놈 지도를 갖고 있는 고대 인류의 수는 2010년 5명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5550명에 이릅니다. 이런 고인류학 기술이 현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상관이 있습니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페스트에서 생존할 가능성을 40% 높여주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냈습니다. 이는 크론병처럼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자가면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연관이 있습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알려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배터리 재활용
오래된 노트북이나 부식된 전동 드릴, 전기차에서 회수한 배터리는 과거에는 별 쓸모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터리를 재활용해 새 걸로 만들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른바 희토류로 불리는 배터리의 핵심 재료에 대한 수요를 크게 줄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장 널리 활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이미 부족한 상황입니다. 리튬에 대한 수요는 2050년까지 지금보다 20배 늘어날 전망입니다.
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재활용 시설에서는 이제 코발트를 거의 모두 회수할 수 있고, 리튬은 80% 이상 회수할 수 있습니다. 알루미늄, 구리, 흑연도 점차 회수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분야를 이끄는 것은 중국입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세계 최대의 배터리 재활용 회사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재활용 이외에 새로운 공급망을 발굴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바로 우주 자원 개발입니다. 원시 지구에 행성 테이아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달만 해도 자원의 보고입니다. 1t에 6조원 가치인 헬륨3가 110만t 묻혀 있고 스마트폰·전기차 제조의 핵심인 희토류, 실리콘·티타늄·마그네슘도 풍부합니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잠잠하던 달 탐사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면에는 이런 현실이 반영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첫 달탐사선 다누리를 발사한 한국도 이미 경쟁에 뛰어든 상태입니다.
박건형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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