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만병의 근원’ 불면증을 치유한 2가지 방법 (상)

해암도 2022. 9. 13. 07:08

#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자는 사람도 있고, 자기 전 꼭 술을 걸쳐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남몰래 수면클리닉이나 정신과를 찾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나의 불면증은 50대 후반 공직에서 은퇴 후 일어났다. 누구나 은퇴하고 나면 간헐적으로 우울감에 빠지고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다. 그러나 나는 좀 심했다. /셔터스톡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20년 총 50,538명을 상대로 수면장애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혀 없다’고 응답한 이는 55.2%에 그쳤고, 44.2%가 ‘있다’(드물게:33.9%/한달에 여러번이상:10.9%)라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자살률과 우울증에서 OECD 국가중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잠 못자는 데서도 ‘최고’였다. OECD 회원국 평균 수면시간이 8시간 22분인데 한국은 7시간 51분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별첨 도표 참조>

/출처=2016년 OECD 자료

 

자살률·우울증·불면증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이 세 요소가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임을 보여준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심신의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자율신경을 엉망으로 만들어 결국 자살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우울증 진단에서도 불면증은 가장 중요기준 중 하나며, 우울증 환자의 80% 이상이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불면증이야말로 감기·비만·스트레스 못지않게 만병의 근원이다. 불면증이 계속 되면 신체적으로 쉬지 못해 혈압이 높아지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각종 질환에 취약해진다. 또 우울증, 공황장애,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등 정신신경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10여년전 우울증을 겪을 때 수개월간 짧지만 호된 불면의 시간들을 경험한 바 있어 그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다.

# 나의 불면증은 50대 후반 공직에서 은퇴 후 일어났다. 누구나 은퇴하고 나면 간헐적으로 우울감에 빠지고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다. 그러나 나는 좀 심했다.

 

처음에는 얕은 잠을 자면서 몇 번 씩 깨곤 하다가, 점차 악몽을 꾸면서 벌떡벌떡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에 마치 누군가에 목을 졸린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깨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몇 달 후부터 아예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날이 찾아왔다. 참으로 기나 긴 불면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 잠을 못자면 다음날 피곤하고 졸음이 찾아오지만 나는 피곤은 하지만 졸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지나다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기억력이 감퇴되며, 일상의 흥미가 사라지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면서 문 여닫는 소리에도 파르르 곤두서곤 했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차를 안타고 수십㎞ 걸어 다닌 적도 있었고, 밤에 성경이나 에세이, 불경책을 붙잡고 있어 보기도 했으며, 위스키도 마셔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이렇게 긴긴 밤을 지내고 새벽이 오면 정말 끔찍하고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억지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운동하겠다고 나서면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다시 털썩 소파에 눕는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이쯤 되면 수면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나는 버텼다. 배탈이 나거나, 독감에 걸리면 당연히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데도 말이다.

 

# 마침내 정신적・육체적 이상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다. 우선 자율신경 조절이 안돼 차가운 초봄 날씨에도 쉴 새 없이 땀을 뻘뻘 흘렸다.

 

맥박은 왜 그리 빨리 뛰는지.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한밤중에도 맥박이 벌떡벌떡 뛰었다. 혈압이 180, 심장박동수가 100을 넘어섰다.

 

간헐적으로 마음이 아프던 현상이 잦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오장육부 한가운데가 맹렬히 아프면서 순식간에 파김치가 되곤 했다. 체력은 급격히 저하돼 주말에 동네 뒷산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다.

 

결국 공황발작을 한번 겪고서 병원을 찾아가 수면제와 진정제 처방 등을 받았다.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약의 효력은 있었다. 머리도 맑아지고 맥박도 좋아졌으며 어두운 마음의 그늘도 걷혔다. 아랫배 통증도 사라졌다.

 

그때 비로소 불면(不眠)이 만병의 근원임을 깨달았다. 계속 24시간 심신이 쉬지를 못한다면 이것을 이겨낼 장사가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약기운을 빌어서 잠을 자게 됐지만 앞으로 불면증을 이겨낼 근원적 치유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본인 의사 오카모토 유타카는 <병의 90%는 스스로 고칠 수 있다>라는 저서에서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고치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의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고 싶었다.

 

불면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내 경우는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Burnout·소진)’상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나치게 일이나 목표에 집착해서 살다보니 에너지가 한도초과된 상태다.

 

비유하자면 24시간 ‘전시(戰時)’상황 속에 살다 심신이 지쳐 총체적 부실로 이어져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 불면증을 탈출하려면 무너진 신체 기능의 정상화가 급선무다. 나는 먼저 운동을 선택했다.

 

운동을 하게 되면 심폐기능, 혈액순환 등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면역기능이 향상된다. 아울러 긴장되었던 심신이 안정되며 기분이 좋아져 자신감과 행복감을 회복시켜 준다.

 

나는 아침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한시간씩 탔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곧 신체가 적응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운동이란 말이다. 주말에도 등산 등 유산소운동을 했다.

 

마침 그때가 2012 런던올림픽이 열리던 때였다. 지인들과 어울려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타고 팔당대교나 아라뱃길로 달렸다. 섭씨 33도 더위에서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신체를 혹사하다보니 오히려 머리와 마음은 쉴 수 있었다. 오랜만에 탈진상태가 돼 집에 돌아와 그냥 쓰러졌다. 아늑한 피로감이 몰려 왔다. 이렇게 운동을 통해 수면제 복용은 3개월만에 끝냈다.

 

신체 기능이 정상화됨에 따라 이제 약 없이도 잠을 잘 수가 있게 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평생 긴장하고 쫓기는 생활 습관과 심신 상태를 단번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몸과 마음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이전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또 은퇴 후 삶도 여전히 삶의 재난과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예기치 않은 어려운 일에 닥치면 어떻게 심신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신체적 운동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저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이완과 휴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을 고민하게 됐다. <계속>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조선일보     입력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