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회색지대] 영혼 맑은 그는 왜 조국·이재명을 종교적으로 수호했을까
● 멀쩡하던 사람도 금배지만 달면…
● 정치적 경쟁력 된 유별난 ‘조국 사랑’
● 운동권 ‘조직보위론’에서 변형된 논리
● 이재명 위해 이낙연 저격수 노릇까지
● 중요한 건 당내 헤게모니 장악뿐인가
● 금태섭을 향한 ‘인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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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던 사람도, 아니 자신의 분야에서 존경을 받던 사람마저, 여의도로 가 금배지만 달고 나면 싸움꾼으로 변한다. 국회라는 곳이 싸움꾼들의 집결지인가. 무슨 정책을 놓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우위를 점하려는 싸움도 아니다. 상대편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 싸움의 주요 콘텐츠다. 위에서 시켜서, 아니면 그런 집단 분위기에 휘둘려 그러는 걸까.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개인차가 있다. 팬덤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열정의 강도가 그 차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 평균적인 시민이 이름을 댈 수 있는 국회의원의 수가 얼마나 될까.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의원이 이름을 빨리 알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싸움이다. 예전과는 달리 언론에 잘 보일 필요도 없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독설 몇 마디만 올리면 그걸 정성스레 보도해 주는 언론매체가 넘쳐나니까 말이다. 풍토가 이렇다 보니, 처음엔 아주 착하고 성실해 보이던 의원들마저 독설로 무장한 전사로 변신하곤 한다.
그런 전사 그룹에 속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남국에 대해 좀 말씀드리고 싶다.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비판이 되겠지만, 그게 이 글의 주요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작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언론 탓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이전투구형 정치’의 틀을 만들었던 전 대통령 문재인을 포함한 정치권의 상층부 리더들에게 있다. 국민을 위해 착하고 성실하게 봉사할 수 있는 품성과 자질이 충만한 의원을 이전투구 전사로 내몰았으니, 그 책임이 얼마나 큰가. 정치권 전체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게 이 글의 목적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1982년생 김남국은 어떤 인물인가. 나는 그의 고교(광주 살레시오고) 시절 은사가 오마이뉴스(2020년 2월 23일)에 기고한 ‘내 제자 김남국 변호사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글의 내용을 믿는다. 이 글에 따르면, 김남국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며, 공부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천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전투구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뒹굴기에는 영혼이 매우 맑다.”
이상한 일이다. 왜 영혼이 매우 맑은 사람이 이전투구의 선두에서 싸움꾼으로 맹활약하게 됐단 말인가. 사실 이 궁금증은 문재인에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김남국 이상으로 영혼이 맑았던 문재인은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전투구를 미화했다. 문자 폭탄과 악플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하면서 그런 공격을 받는 사람들에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이런 무감각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상습적인 ‘내로남불’이었다. 반대편에겐 가혹할 정도로 엄했지만 우리 편에겐 무한대의 관용을 베풀면서 정의와 공정을 유린했다.
왜 그랬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서운 역설이지만, 나는 정치처럼 갈등을 먹고사는 분야에선 영혼이 맑은 사람일수록 내로남불의 동력이 되는 독선과 오만이 강한 동시에 그걸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사람들이 부도덕해지기 쉬운 걸 밝힌 이른바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는 개념이 적합하다. 평소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던 어느 진보 인사가 술 한잔 들어간 상황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외치는 뜻밖의 모습을 보인다면, 바로 그런 효과가 작동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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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은 변호사 시절 ‘조국 수호’(또는 ‘검찰개혁’)를 위해 집회에서 발언하고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19년 12월 31일 ‘김남국TV’에서 매일 밤마다 조국을 위해 기도한 후 잠자리에 든다고 밝혔으며, 서초동 집회에서도 “조 전 장관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매일 기도하면서 잠을 잔다”고 했다.
2020년 4·15 총선을 2개월 앞둔 2월 중순 김남국은 총선 첫 출마 지역으로 민주당에서 ‘조국 수호’에 비판적이었던 금태섭의 지역구(서울 강서구 갑)를 택해 경선에 나가기로 했다. 김남국의 당시 표현에 따르자면, 금태섭은 ‘골리앗’ 김남국은 ‘다윗’이었지만, 결코 그렇게 볼 일은 아니었다. 당시 민주당과 지지자들은 ‘조국 수호’에 올인하고 있었기에 김남국의 유별난 ‘조국 사랑’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의 정치적 경쟁력이 됐다. 김남국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뜻이다.
‘조국 수호’에 올인하면서도 총선이 ‘조국 대 반(反)조국’ 구도로 흐르는 걸 경계하던 민주당은 3월 8일 김남국을 경기 안산 단원구을에 전략공천하는 타협책을 택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선 경선은 이미 ‘조국 대 반(反)조국’ 구도가 형성됐기에 금태섭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엔 변함이 없었다. 3월 12일 금태섭은 당내 경선에서 전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 강선우에게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금태섭은 “친문 그룹 등에 좀 서운한 마음은 없나”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죄송하고 감사하고 면목이 없다. 그게 전부다”라고 답했다.
4·15 총선의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로 두 정당의 격차는 8.4%포인트에 불과했지만, 민주당은 의석수 기준으론 거의 더블스코어 압승을 거두었다. 코로나와 K-방역이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민주당은 자기들이 잘해서 얻은 결과로 착각하면서 이후 더욱 거센 ‘팬덤 정치’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 선두 그룹에 안산 단원구을에서 당선된 김남국이 있었다.
승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김남국은 금배지를 달고 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이 초선 때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우리 당이 정책적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또 결정되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금태섭·박용진처럼 소신 있는 초선이 되겠다고 했다.
이에 금태섭은 페이스북에 “과분한 말씀이고 앞으로 잘하시기를 바란다”면서도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 용기 있게 자기 생각을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남국은 페이스북에 “금태섭 의원님께서 우리 당의 선배 정치인으로서 후배 정치인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태도를 보여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기적이고 표리부동한 자신의 모습도 함께 돌아보셨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에 진중권은 “어제는 금태섭을 닮고 싶다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이라며 “김남국 씨, 정신 줄 놓지 말고 그냥 존재에 어울리게 간신 하세요”라고 했다.
김남국은 금태섭이 전년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처리 과정에서 기권표를 던져 당론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6개월이 지난 5월 25일 경고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금태섭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강제당론이 지켜지지 않은 점에 대한 징계는 적정했다고 보인다”며 “정제되지 않은 개인의 소신 발언들이 국회 안에서 계속 쏟아진다고 하면 일하는 국회는 상상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게 정녕 젊은 30대 의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2020년 8월 6일 경기지사 이재명이 당시 여당 의원 176명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를 요청한 지 단 하루 만에 김남국이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을 연 24%에서 10%로 낮추는 이자제한법·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여권에서는 “이 지사를 너무 따르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김남국은 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료법 개정안)도 발의했는데, 이것 역시 이재명 주장과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김 의원 쪽에서 경기도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김남국=친이재명계’란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김남국은 언론 인터뷰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친이재명계’란 시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이 지사와는 중앙대 선후배 관계로 개인적 인연은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계파로는 어느 쪽에도 저는 속해 있지 않다.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면 이낙연 의원이든, 이 지사든 누구든지 지지할 거다.”
‘친이재명계’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을 텐데 왜 그렇게 강하게 부정한 걸까. 계파에 속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조폭처럼 맹목적 충성을 하는 게 문제일 텐데, 그에게 계파란 ‘맹목적 충성’과 같은 뜻이었을까. 이제 곧 우리는 그가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거칠거나 무책임한 발언을 자주 하는 걸 목격하게 된다.
9월 7일 김남국은 법무부 장관 추미애 아들의 군복무 특혜 논란과 이를 향한 야당의 공세에 대해 “국민의힘에 군대를 안 다녀오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대 갔다 왔으면 이런 주장 못 한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니까”라면서 “제발 정치 공세는 그만 좀 하시고 그냥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좋겠다. 너무 시끄럽고 지친다”고도 했다.
그러나 추미애 아들 관련 의혹 제기에 앞장선 국민의힘 의원 신원식은 군 생활을 35년 동안 한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언론이 병무청의 현역 국회의원 병역 이행 여부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 현역의원의 병역면제자 수는 민주당 34명, 국민의힘 12명이었다. 자녀가 입영 대상이면서도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의원은 총 16명으로 집계됐다. 정당별로는 민주당이 14명, 국민의힘 2명이었다. 민주당 소속 176명 의원의 자녀 병역면제 비율은 7.95%로, 국민의힘(1.94%)보다 4배나 높았다.
10월 21일 김남국은 금태섭이 민주당에서 탈당한 것에 대해 “어느 이유로 보나 (금 전 의원은) 정치적 신념과 소신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자리와 이익을 쫓아가는 철새 정치인의 모습”이라며 “이제 여기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이 속했던 정당을 떠난다. 그냥 떠나는 것도 내가 못 먹는 우물 남도 먹지 말라는 못된 마음으로 침을 뱉고 떠난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분의 지금 태도는 유아적 수준의 이기적인 모습이다”라고도 했다.
이런 말을 하려면 “금태섭·박용진처럼 소신 있는 초선이 되겠다”던 자신의 4개월 전 발언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소신 발언으로 숱한 ‘문자 폭탄과 악플’ 테러를 당한 건 물론 결국엔 공천에서까지 탈락하는 보복을 당해야 했던 사람이 ‘자리와 이익’을 쫓았다니, 이게 웬 말인가. 이런 악담은 변신치곤 너무 살벌한 변신이 아니었을까.
2021년 5월 3일 김남국은 민주당 의원 전원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당내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의원 조응천을 향해 “문자 폭탄 이야기 좀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그는 “문자 폭탄 보내는 사람이 친문 강성만이 아니고, 저쪽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보낸다”며 “이게 바로 보수가 원하는 프레임인데, 도대체 왜 저들의 장단에 맞춰서 놀아줘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게 바로 보수가 원하는 프레임”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베스트 5’ 중의 하나일 게다. “조선일보 프레임에 갇혔다”거나 “보수 신문에 먹잇감을 상납하는 정치”라는 말도 쓰인다.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했던 이른바 ‘조직보위론’의 변형된 논리다.
조직보위론은 ‘진보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위’해야 하며, 따라서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이를 조직 밖으로 알려선 안 된다는 논리다. 바로 이 논리에 따라 운동권 내부의 많은 성폭력 사건이 철저히 은폐됐고, 피해자에겐 이중 삼중의 고통이 가해졌다. 민주당은 바로 이 ‘조직보위론’ 때문에 망가졌지만, 민주당엔 여전히 이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6월 30일 이재명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해 “선택적 정의를 행사하는 검찰에 피해를 입었을지라도 현행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조국 지지자들은 온라인상에서 해당 인터뷰 기사를 공유하며 “추미애(전 법무부 장관)를 지지하겠다” “기회주의적 발언”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7월 2일 국민의힘 의원 조수진은 김남국이 이재명 대선캠프에서 수행실장을 맡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앞뒤는 맞아야 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조국의 사진을 침대 머리 밑에 두고 매일 기도한다는 김남국이 조국을 결사옹위해 온 당내 주류인 ‘친조국 부대’와 거리를 두겠다는 이재명의 ‘그림자 수행’을 전담하는 수행실장을 맡은 건 너무 이상하지 않으냐는 추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즈음 출간된 책 한 권이 그 추궁에 대한 답을 주는 듯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 흑서’)의 공저자인 변호사 권경애의 ‘무법의 시간’에 따르면, 김남국은 2020년 9월 6일 검찰의 정경심 기소 발표 후 권경애에게 “정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한 것 같다. 사모펀드도 관여했고”라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는) 임명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후에도 “임명 안 할 줄 알았다”면서 “그래도 나는 진영을 지켜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남국은 “사실무근이다. 관련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거의 종교적 수준으로 ‘조국 수호’를 실천해 온 사람이 어떻게 해서건 조국과 거리를 두려고 애쓴 이재명의 최측근 인사로 활약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조국과 이재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행보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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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을 좋아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판자들은 이 말을 좋아했던 황우석 박사를 떠올리면서 불길하게 생각했지만, 지지자들은 불광불급의 상태가 가져올 수 있는 추진력과 파괴력을 사랑했다. 혹 김남국도 그런 불광불급의 원리에 따라 일단 맡은 일엔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건 아니었을까.
강성파 중에서도 거친 말이 비교적 적었던 김남국은 이재명의 수행실장이 된 이후엔 이재명을 위한 일에선 크게 달라졌다. 그는 이재명을 위해서라면 거친 욕설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경선 경쟁자인 이낙연에 대한 저격수로까지 맹활약했다.
9월 13일 김남국은 ‘중앙일보’가 주최한 ‘2040세대 좌담회’ 중 조국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그는 사흘 뒤 당시 상황에 대해 해명하면서 “(조국 사태가 화두로 올라)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더 이상 촬영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다”며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왜 눈물이 계속 멈추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한마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그런 순정파였기에 이재명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걸까. 김남국은 11월 19일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심지어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이 터지자 신나 했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이 후보가 ‘좋은 정책을 했던 것을 알릴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했다”며 그런 어이없는 말을 한 것이다. 이재명을 너무 숭배했기에 빚어진 해프닝이었을까.
12월 2일 이재명은 한국방송기자클럽토론회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그간에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또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대 상황에서 또 더불어민주당이 우리 국민들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또 실망시켜 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거듭 조국 논란에 대해 사죄했다.
이에 금태섭은 “‘조국 수호’에 앞장섰다가 지금 이재명 캠프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남국·김용민 의원님의 견해를 듣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도 반성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재명 후보가 그분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진심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쪽에서는 반성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지지자들 입맛에 맞는 얘기를 하는, 등 때리고 배 만지는 행태와 전혀 다를 게 없다.”
2022년 3월 9일 대선은 윤석열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금태섭의 민주당 비판이 옳았다는 걸 입증해 주었지만, 민주당은 진정성 없는 사과의 시늉만 냈을 뿐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김남국도 여전히 잘못된 길을 계속 헤매고 있었다.
3월 28일 김남국은 페이스북에 “아침 일찍부터 정성호 의원님과 함께 송영길 전 대표가 머물고 있는 경북 영천의 은해사를 방문했다”며 “지난 대선에서 당대표로서 헌신하고 희생했던 점들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민주당의 쇄신과 유능한 민생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 국정 운영을 책임질 윤석열 당선인의 행보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 회동은 ‘역사적 회동’이 됐다. 나중에 언론은 바로 이때 송영길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이재명이 송영길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을 보궐선거에 나가는 방안이 결정됐을 것으로 봤으니 말이다. 그냥 평범한 상식의 눈으로 보자면 그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었건만,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할 정도로 민주당은 상식을 잃었고 그 선두에 김남국이 있었다.
민주당 의원 민형배가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위해 탈당한 데 대해 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조응천은 4월 21일 “무리수”라고 평가하며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반면 김남국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이 법안을 기한을 지켜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절박함과, 입법 절차적으로 봤을 때 안건조정위를 통과시키지 못하면 법안 통과가 사실상 저지된다는 그런 어려움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이 대패한 6·1 지방선거 결과는 다시 민주당과 김남국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입증해 줬다. 무엇보다도 김남국이 선두에 서서 밀어붙인 검수완박 입법이 문제였다. 5월 2~4일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 통과 직후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부정 평가가 52%나 됐고, 긍정 평가는 33%에 그쳤다. 호남의 여론마저 부정적이었다. 무소속으로 전남 영광군수에 당선된 강종만은 “검수완박만 해도 현장에 가보면 ‘다수당 횡포 아니냐’ ‘소수 의견을 수렴해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한다’고들 하신다”며 “유권자를 ‘표 찍는 기계’로만 보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못 들은 것”이라고 했다.
6월 2일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윤호중·박지현과 비대위원들은 “6·1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남국을 비롯한 민주당 강경파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지방선거 패배의 이유를 민주당이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에서 찾으면서 성찰은 자신들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6월 3일)는 “6·1지방선거 패배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이재명 책임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정작 ‘검수완박’ 입법 강행 등을 주도한 당내 강경파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책임론’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며 “당내 주요 세력들이 당의 근본적 변화와 쇄신이 아닌 8월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권력 쟁탈전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김남국을 비롯한 처럼회 의원들이 생각을 바꾸기엔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로도 모자란 걸까. 아니면 그들에게 더 중요한 건 당내 헤게모니 장악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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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순 기준으로 민주당은 분당(分黨)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극심한 내분에 빠졌다. 온갖 비방과 독설이 난무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독설이라고 하면 민주당 내에선 정청래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는데, 그는 이 문제에선 의외로 온건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재명 책임론’에 대해 “10년 전에도 대선 패배 후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에게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한 의원들이 있었다”라며 “남 탓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이는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건설적 발언이 아닌가.
상처를 주는 건 물론 화해조차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강한 독설은 김남국의 입에서 나왔다. 김남국은 ‘이재명 죽이기 기획설’까지 꺼내고 말았으니, 이건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서도 해선 안 될 말이 아닌가. 김남국이 조국에 이어 이재명에 대해서까지 종교적 수준의 수호 의지를 갖고 있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히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민주당은 과연 이 모든 거친 내분을 이겨내고 살아날 수 있을까. 민주당은 그간 수없이 많은 사과를 했지만, 금태섭에겐 사과하지 않았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사과가 엉터리였다는 걸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금태섭에게 사과할 정도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살아날 길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윤석열 정권이 속된 말로 ‘개판’을 치는 하나의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정녕 한국 민주주의가 거대 정당들이 번갈아가면서 ‘대형 사고’를 치는 것에 의해서 굴러가야 하겠는가.
금태섭과 김남국! 나는 이 두 분이 민주당의 흥망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금태섭은 망했고 김남국은 흥했다. 그러나 문 정권이 위기에 처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문 정권의 상층부 인사들은 ‘조국 사태’는 물론 금태섭이 일관되게 비판했던 ‘독선과 오만과 내로남불’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함으로써 금태섭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김남국은 그런 사과에 동참하거나 반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모순에 너그러운 사람이 됐다.
김남국은 4월 4일 대선 패배 이후 심경에 대해 “마음의 정리가 아직도 안 됐다”며 “문득문득 막 혼자서 울고 그런다”고 했다. 나는 평소 눈물이 많은 김남국의 맑은 영혼과 착함을 믿는다. 그의 생각도 존중하련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 대한 엉거주춤한 자세와 모순에 대해선 그가 성실한 해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건 그가 금태섭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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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동아일보 입력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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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도 극찬한 이 동네 버스 정류장 “우리 區 작은 정책 전국 퍼질 때 희열” (0) | 2022.06.25 |
북한 정찰총국 前 대좌 증언...“2012년 北공작원 대거 남한행 (0) | 2022.06.19 |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왜 호텔욕실에서 숨졌을까 (0) | 202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