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한줄명상]
“진화론이냐, 아니면 창조론이냐”
#풍경1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사제가 되기 전에
공학도였습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다니다가 한국전쟁이 터졌고,
전쟁이 끝나자 신학대에 들어가 사제가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 추기경은 종교인이면서도
과학적ㆍ이치적 사고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공학도 출신에다 사제가 되기 전의 꿈은 과학자였다. [중앙포토]
저는 정 추기경께 ‘진화론’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난감한 질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흔히 창조론과 진화론은 결말이 나지 않는,
영원히 평행을 달리는 철로의 두 레일과 같다고도 하니까요.
더구나 추기경이라는 고위 성직에 계신 분이
괜히 대답을 했다가
괜한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추기경께서는 답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정 추기경은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묻습니다.
“과학인가, 아니면 종교인가?”
“창조론이냐, 아니면 진화론이냐?”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추기경의 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풍경2
정 추기경은 차분하게 답을 이어갔습니다.
“진화론은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진화론의 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등생물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시간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알아야죠.
시간은 빅뱅 때 생겼습니다.
빅뱅으로 인해 이 우주가 생겼고,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도 생겼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물론 빅뱅은 과학적 가설입니다.
그래도 시간과 공간, 빅뱅 등의 말은
천체물리학자와 인터뷰할 때나 듣는 과학적 용어였습니다.
한국 가톨릭의 수장인 추기경한테서
그런 설명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말입니다.
정 추기경의 설명은 이어졌습니다.
“그럼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요?”
과학적 설명을 잔뜩 늘어놓고,
그 설명에 본인도 공감한다고 하고선
느닷없이 가장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냐고 말입니다.
“하느님도 시간의 영향을 받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3차원적 존재이니까요.
누구나 태어났다가 소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매순간 변화합니다.
왜냐고요?
시간과 공간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흐르지 않는 시간이란 없으니까요.
그런데 신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시간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합니다.
영원의 속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멸하지 않습니다.
영원이라는 성질은
3차원적 시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속성입니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의 속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한 시점에 빅뱅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
이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계신 분이죠.
그래서 시작이 없고, 변화가 없고, 끝이 없습니다.
구약 성서에서 모세가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말이죠.
그때 모세가 들은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장14절)”
#풍경3
고(故) 차동엽 신부는 “나는 있는 나다”라는
탈출기 3장14절을 영어로 이렇게 풀었습니다.
“I will be who I will be.”
여기서 뒤에 나오는 ‘who I will be’는
‘자유(自由)’라고 풀었습니다.
앞에 나온 ‘I will be’는 ‘자재(自在)’라고 풀었습니다.
‘스스로 있다’ ‘스스로 존재하다’는 뜻이니까요.
결론적으로 차 신부는 ‘나는 있는 나다’라는 성경 구절을
“자유자재(自由自在)”한 하느님으로 풀어냈습니다.
차동엽 신부는 생전에 구약 성경에 나오는 "나는 있는 나다"라는 구절에는 자유자재하신 하느님이란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중앙포토]
기독교인은 하느님(하나님)을 종종 “야훼”라고 부릅니다.
그 명칭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세요?
“나는 있는 나다”라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각 단어의 첫 번째 자음을 모아 히브리어식으로 발음하면
“야훼’(YHWH)”가 됩니다.
거기에는 ‘자유자재하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풍경4
이렇게 비유해보면 어떨까요.
도화지 위에 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든,
시간이 흐르면 지워집니다.
우리가 그린 각자의 인생도
시간이 다하면 소멸하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도화지는 남습니다.
시간에 무너지지 않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도화지는 그대로 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그걸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 몸의 세포는 7년마다 모두 바뀝니다.
다 물갈이를 합니다.
만약 70세라면 육체가 열 번 바뀐 거죠.
그런데도 나는 나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의 육신이
‘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의 영혼이 ‘나’라는 겁니다.
그럼 오늘 태어난 아기의 영혼은
언제 만들어진 겁니까.
바로 지금 만들어진 거죠.
그래서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되는 겁니다.”
정 추기경은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자 택일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큰 창조론이 작은 진화론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이 창조론이라면,
진화론은 그 중의 일부 구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 추기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치에 대한 깊은 눈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대한
추기경의 마지막 멘트는
지금도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립니다.
“하느님에겐 1억 년 전도 ‘지금’이고,
1억 년 후도 ‘지금’이죠.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니까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여기’는
그저 흘러가는 ‘순간’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영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걸 얼마나 깊이 음미할 것인가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그래도 기운이 좀 나지 않나요?
도화지 위에서 사라지는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 그림 속에 이미 영원이 깃들어 있다니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차례입니다.
나의 삶에서
순간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그 순간 속에 깃든 영원을 맛볼 것인가.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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