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차량

100만 개의 거울로 보행자만 콕 집어 비춘다

해암도 2017. 2. 26. 09:24

[첨단 기술의 세계] 지능형 라이팅시스템

제논·LED에 이어 레이저를 활용한 헤드램프도 등장했다. 이 라이팅시스템은 조사거리가 LED의 두 배인 600m인 반면 에너지 소모량은 절반에 불과하다. [사진 아우디]

제논·LED에 이어 레이저를 활용한 헤드램프도 등장했다. 이 라이팅시스템은 조사거리가 LED의 두 배인 600m인 반면 에너지 소모량은 절반에 불과하다. [사진 아우디]

헤드램프로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주는 벤츠의 HD 디지털 라이트.

헤드램프로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주는 벤츠의 HD 디지털 라이트.

두 가닥 불빛에 의지해 어둠을 헤치는 한밤의 드라이브. 헤드램프 불빛이 닿지 않는 갓길 안쪽에서 보행자가 나타났다. 순간, 자동차의 헤드램프 속 일부 조명이 보행자를 표적처럼 겨냥해 가늘고 예리한 빔을 몇 차례 반짝였다. 덕분에 운전자는 보행자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보행자 역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의 위치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행자의 행동엔 거침이 없다. 이번엔 무단횡단을 할 참이다. 운전자는 즉시 차를 세웠다. 보행자는 유유히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없던 직사각형 무늬를 밟고 걸었다. 자동차의 헤드램프가 도로 바닥에 그린 가상의 횡단보도 표시였다. 헤드램프는 보행자를 계속 비춘다. 하지만 얼굴엔 그림자를 드리운다. 눈부심을 막기 위해서다.
 

카메라·레이더로 주변상황 확인
필요한 부분만 집중해 밝게 조명
상향등 켜도 다른 차 눈부심 없어
도로에 횡단보도·내비 표시도
BMW·벤츠 등서 대중화 초읽기

공상과학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이미 상용화를 마쳤거나 초읽기에 들어간 최신 헤드램프 기술 사례다. 전자는 BMW의 레이저 라이트, 후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HD 디지털 라이트다. 요즘 자동차 헤드램프의 진화 속도가 눈부시다. 제조사마다 이름과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목표는 같다. 상대방의 눈부심은 덜되 나의 시야는 최대한 밝히는 데 있다.
 
최신 헤드램프의 광원으로 각광받는 주역은 발광다이오드(LED)다. 조명 업계는 1970년대 초부터 LED를 생산했다. 당시만 해도 최대 밝기는 0.01루멘 이하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후 밝기를 개선하고 색을 다양화했다. 그 결과 LED는 전자 제품의 손톱만한 깜박이 조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가령 전광판과 신호등은 물론 자전거나 자동차의 조명으로 널리 쓰고 있다. 현재 자동차용 LED 기술을 이끄는 시장은 유럽이다. 헬라·오스람 등 유럽의 조명 업체가 꾸준히 연구를 거듭해 왔다. 유럽에서는 이미 신차 가운데 80% 이상이 LED 부품을 직간접 조명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LED 헤드램프를 처음 단 양산차는 일본의 렉서스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현대 신형 그랜저 같은 국산차에서도 볼 수 있다.
 
i8엔 600m 밝히는 레이저 조명도 달 수 있어
이제는 LED를 뛰어넘는 광원도 나온 상태다. 바로 레이저 헤드램프다. BMW가 2011년, 아우디가 2014년 공개했다. 레이저 다이오드가 쏘는 청색광이 헤드램프 속의 특수물질에 닿아 강력한 백색광을 낸다. 최대 밝기는 170루멘으로 기존 LED(100루멘)를 성큼 앞선다. 조사거리는 최대 600m로 LED의 두 배인 반면 에너지 소모량은 3분의 1 수준이다.
 
레이저 헤드램프가 내는 빛은 반듯하고 가늘며 멀리 비춘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원하는 특정 지점을 정확히 겨냥해 비출 수 있다. 또한, 광원의 너비가 10㎛으로, 1㎜ 안팎인 LED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가가 비싸서 BMW i8이나 아우디 R8 LMS 같은 일부 고급 차종만 단다. 그나마도 아직까진 상향등을 보조하는 제한적 용도로 쓴다. 한편, 헤드램프의 광원뿐 아니라 기능도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차의 앞뒤 기울임에 따라 불빛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헤드램프 레벨링 시스템’은 고전에 속한다. 1948년 프랑스의 시트로앵이 수동방식으로 처음 선보였다. 운전대 조작에 맞춰 불빛을 비추는 방향을 좌우로 바꾸는 기능도 등장한 지 오래다. 보통 ‘어댑티브 헤드램프’라고 부른다.
 
상향등을 켜 놓고 달려도 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땐 알아서 하향등으로 바꾸는 기능도 빠르게 진화 중이다. 이른바 ‘오토 하이빔’이다. 자동차 제조사마다 이 기능의 명칭과 작동원리는 제각각이다. 최근엔 하이빔을 유지하되 상대편 운전자의 눈부심만 없애는 기능까지 선보였다. 여러 개의 광원으로 구성한 LED 헤드램프를 쓰면서 가능해진 마법이다.
 
아우디가 신형 A8에 처음 달아 선보인 매트릭스 헤드램프가 대표적이다. 상하향등을 모두 LED로 소화하는 기존의 풀 LED 헤드램프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기술이다. ‘행렬’이란 뜻의 이름처럼 광원을 상하좌우로 촘촘하게 배열했다. 헤드램프의 하이빔 쏘는 부위에 네모난 5개의 반사판을 나란히 붙였다. 그리고 각 반사판마다 5개씩 총 25개의 광원을 숨겼다.
 
매트릭스 LED 기술의 목표는 명확하다. 어둠 속에서 운전자에게 최대한 밝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빔을 아낌없이 쓴다. 자동 모드에 뒀을 때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30㎞, 도심에서 시속 60㎞부터 곧장 하이빔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주위에 민폐 끼칠 걱정이 없다. 상대방 눈부실 상황을 결코 만들지 않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 신형 A8은 카메라로 전방의 상황을 면밀히 감시한다. 마주오거나 앞서 달리는 차의 위치와 거리를 최대 8대까지 파악한다. 그리고 좌우 합쳐 10개 반사판의 50개 LED를 부분적으로 끄고 켠다. 그 결과 눈부시게 밝지만 함께 달리는 차 부근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지는 빛을 완성한다. 이 어두운 부분은 주위 차의 움직임에 따라 헤드램프 속에서 잽싸게 옮겨 다닌다.
 
또한, 갓길을 걷는 사람을 감지하면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는 하이빔 가운데 일부 LED로 정확히 겨냥해 세 차례 깜박인다.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서로의 존재를 경고하기 위해서다. 굽잇길에서 차가 감아돌 방향 비추는 어댑티브 헤드라이트의 기능도 기본이다. 방향지시등은 차가 움직일 방향으로 물 흐르듯 순차적으로 켜진다. 한 편의 조명 쇼가 따로 없다.
 
OLED 테일램프로 후방 디자인도 매끈하게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HD 디지털 라이트 기술을 공개했다. 벤츠가 눈부심 없이 최적의 시력과 최대 밝기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한 기술이다. 이 첨단 헤드램프의 핵심은 거울이다. 좌우 헤드램프 하나당 무려 100만 개의 초소형 거울을 심었다. 이 헤드램프를 단 차는 주행하면서 앞쪽의 카메라와 레이더로 주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한다. 그리고 좌우 합쳐 200만 개의 거울을 TV나 모니터의 픽셀처럼 활용해 각각 가장 이상적인 밝기 값을 1000분의 1초마다 계산한다. 픽셀이 조밀한 만큼 빛도 한층 세분화해 밝힐 수 있다. 가령 횡단보도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경우 얼굴 부위만 제외하고 비출 수 있다. 고화질 특성을 이용해 신기한 재주도 담았다. 이를테면 차 앞쪽 노면에 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위한 화살표도 표시할 수 있다. 도로를 건너려는 행인이 있을 경우 길바닥에 횡단보도 무늬를 비출 수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11월부터 HD 디지털 라이트의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동시에 한 쪽당 1024개의 LED를 심은 헤드램프도 공개했다. 벤츠는 “조만간 양산차에 달겠다”고 밝혔다.
 
차세대 조명 전쟁은 이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손을 뻗었다. BMW는 레이저 헤드램프에 기존의 LED 대신 OLED를 활용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전력소비가 LED보다도 적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좀 더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또한, 점 단위로 구성된 LED와 달리 OLED는 전체 표면에서 균일한 빛을 뿜을 수 있다.
 
첨단 조명 분야에서 BMW와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우디는 OLED 테일램프를 공개했다. 이 차는 테일램프의 윤곽이 따로 없다. OLED는 면 전체를 조명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 꽁무니를 표면의 굴곡을 고스란히 살린 디스플레이로 활용할 수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헤드램프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용 헤드라이트의 역사]
할로겐 램프에서 제논·LED로 진화
 
자동차용 헤드램프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1880년대 처음 나왔다. 호롱불과 비슷한 원시적 형태의 조명이었다. 아세틸렌이나 기름을 연료로 썼다. 전기로 불 밝히는 헤드램프는 1898년 처음 등장했다. 1900년대 초부터는 필수장비로 달기 시작했다. 현대적 개념의 헤드램프와 시동 장치를 갖춘 차는 1912년 미국의 캐딜락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헤드램프는 불 밝히는 광원(光源)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할로겐, 고압방전등, 그리고 LED의 순서다. 아직도 가장 대중적인 자동차 전조등은 1962년 나온 할로겐이다. 유리구 안에 텅스텐 필라멘트를 고정하고 할로겐 가스를 채운 구조다. 백열전구와 비슷하다. 1991년 처음 나온 고압방전등을 다는 차도 늘고 있다. 국내에선 HID(High Intensity Discharge)로 널리 알려졌다. 형광등처럼 필라멘트 없이 전자가 형광물질과 부딪혀 빛을 낸다.
 
고압방전등은 제논 헤드램프라고도 부른다. 구조물 안에 제논 가스를 채워 넣는 까닭이다. 명칭만 다를 뿐 같은 헤드램프인 셈이다. 바이(bi)-제논 헤드램프는 전조등과 상향등 모두 제논 방식이란 뜻이다. 고압방전등은 전력 소모가 할로겐의 40%에 불과하다. 반면 밝기는 3배 이상, 수명은 5배 이상이다. 색감도 할로겐보다 한층 희고 차갑다.


최근엔 LED가 자동차의 차세대 광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LED는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반도체인 ‘발광다이오드(Light-Emitting Diode)’의 약자다. LED 광원은 고압방전등보다 밝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여러 개를 묶어서 쓴다. 대신 전력 소모가 훨씬 적고, 수명이 10만 시간에 달한다. 구조도 간단하다. 그래서 디자인이 자유롭다. 습기 찰 염려도 없다. 다만 제논·LED로 갈수록 비싸지는 가격이 대중화의 걸림돌이다.
 
 
김기범 객원기자
로드테스트 편집장    [중앙선데이] 입력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