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당신도 모르게 사라졌다…스마트폰과 바꾼 ‘6가지 기억’
해암도
2025. 9. 12. 12:41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느니 후각을 잃는 편이 낫다.” 2011년 글로벌 광고회사 맥켄에서 16~22세 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3%가 선택한 답변입니다. 현실 세계의 일거수일투족을 디지털 세상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세대다운 선택입니다. 전자기기를 위해서라면 오감 중 한 가지는 포기할 수 있다는 거죠. 문화비평가 크리스틴 로젠이 『경험의 멸종』을 쓴 이유입니다.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AI)의 시대, 경험은 어떻게 바뀔까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AI 시대 생존법’을 주제로 준비한 마지막 책을 통해 살펴봅니다.

오혜린 디자이너
AI 시대 생존법 4선
①“AI 시대,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인가”『넥서스』
②“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은 바뀌고 있다”『박태웅의 AI 강의』
③“교육·일자리 변화에도 살아남으려면”『나는 AI와 공부한다』
④“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행동하라”『경험의 멸종』
📖『경험의 멸종』은 어떤 책인가?
매 순간 기술과 함께하는 시대입니다. 모르는 장소에 갈 때면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길을 찾고, 약속 장소를 잡을 때는 인터넷에서 식당 리뷰와 별점을 확인하죠. 보고서를 쓰거나 파워포인트를 만들 때는 AI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죠.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 덕분에 실패를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잃은 것도 많죠.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온 저자는 디지털 기술이 삶의 특정한 가치를 소멸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지도를 보는 눈이나 우연히 맛집을 발견하는 기쁨, 창의력을 발휘하는 경험 같은 것 말입니다.
빅테크 기업은 기술이 삶을 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 준다고 광고합니다. 돈이 없어도 랜선으로 세계일주를 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계인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고요.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영상으로 본 것은 진짜 여행이 아닙니다. 24시간 타인과 연결된 세상이지만, 외로움과 고립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고요. 기술을 매개로 한 경험은 착시입니다. 저자는 경험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진짜 경험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경험이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과 실생활 모두에서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실제가 아닌지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기억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에서의 경험으로 채워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p.45
경험이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로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경험은 몸에 흔적을 남기죠. 산모의 튼 살은 출산의 기적을, 아이 무릎의 상처는 걸음마의 힘겨움을, 까맣게 그을린 피부는 여름휴가의 즐거움을 보여줍니다.
경험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경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시계가 발명된 이후 인간은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일하게 됐습니다. 자동차·기차·비행기의 등장은 지역 간 물리적 거리를 좁혔죠. 그리고 또 한 번 경험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몸소 체험하는 ‘직접 경험’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만든 건 디지털 기술입니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알고리즘, 온라인 플랫폼, 증강현실 등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경험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비대면 근무를 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SNS로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말이죠. 타인의 경험을 소비하는 ‘간접경험’도 인기입니다.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리액션 영상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인간은 직접 경험보다 정보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더 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먹방을 보면서도 식사 시간이 되면 밀키트를 데워 먹는 식입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 올라온 요약본을 보고는 전체를 봤다고 생각하고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삶을 배워갑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는 현실에서 몸을 움직여 부딪혀봐야 알 수 있죠. 그런데 기술로 매개된 경험을 통해서는 이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어요. 삶의 깊이가 얕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경험이 줄어드는 만큼 나의 존재 또한 점점 희미해지고 맙니다.

😒기술은 무엇을 앗아갔나
사회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잃어버린 가치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기 어려운 여섯 가지 경험을 살펴보겠습니다.
①사라지는 대면 소통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p.87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통은 새로운 표준이 됐습니다. 업무·회의·수업은 물론 친목 모임도 줌으로 진행되는 시대죠. 비대면이 익숙해지면서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과 얼굴을 맞대는 일이 줄어들면 감정을 읽는 능력이 퇴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을 읽고 공감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죠. 공감을 담당하는 미주신경계는 사용하지 않으면 저하됩니다. 아무리 SNS에서 활발히 관계를 맺어도 대면 상호작용이 줄어들면 타인과 소통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입니다.
②흐릿해진 손 글씨
컴퓨터가 제공하는 “엄청난 생산성”은 “키보드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p.106
디지털 시대에는 손 글씨 쓰기, 그림 그리기, 공예 작품 만들기 같은 경험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집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팔도 아프죠.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연구에 따르면 타이핑·덧쓰기·손 글씨로 아이들에게 글자와 도형을 가르친 뒤 자기공명영상검사(MRI)를 해보니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어요. 뇌의 읽기 회로가 활성화된 것은 손 글씨를 쓸 때뿐이었죠. 손 글씨를 많이 쓴 집단의 성적이 훨씬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죠. 한데 이 비효율적인 과정에서 창의력과 생각하는 힘이 자랍니다.
③잃어버린 기다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p.169
디지털 기술은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가 가능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죠. 전광판을 보면 버스와 지하철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있습니다. 온라인 기사에는 독자가 그 글을 읽는 데 걸리는 예상 시간이 표시되죠. 일상의 틈은 온갖 재미있는 콘텐트로 채워집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지루해도 스마트폰을 봅니다. 시간이 실제보다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죠.
이처럼 속도에 길들여진 삶을 살다 보면 주의력이 약해집니다.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해지면서 삶의 깊이를 더하는 데 꼭 필요한 공감하고 몰입하는 행위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죠. 장기적인 목표를 꾸준히 쫓기가 어렵고 참을성도 줄어듭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포기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분노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④단순해지는 감정
기술이 선호하는 속도는 단 하나, ‘지금 당장’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낸다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잃게 된다. p.185
SNS는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입니다. 실제 삶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도려낸 채 자랑하고 싶은 순간으로 도배되죠. 이는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을 조장합니다. SNS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제 불능의 질투를 비롯한 불쾌한 감정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디지털에서는 인간의 감정도 데이터가 됩니다. 감정 이면의 복잡한 심리 상태는 걷어내고 수치로 단순화되죠. 사용자 심박수가 높아지면 심호흡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입니다. 우울이나 슬픔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은 그 감정에 맞는 음악이나 영상을 보여주고요. 이제 감정을 해결하는 것까지 디지털에 아웃소싱하는 세상이 된 겁니다.
⑤기술이 매개된 쾌락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 미리 정해진 것이다. p.228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만들고 있어요. 유튜브 영상에서 추천한 대로 여행을 떠나고, 별점 높은 식당과 숙소를 찾아갑니다. 이처럼 매개된 쾌락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추천하거나 평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불안과 거부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나의 취향을 찾기보다는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좇게 되는 겁니다.
⑥사라진 공공 공간
우리가 장소를 사이버 공간과 교환할 때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적 유대관계까지 변화할 위험이 따른다. p.293
디지털 기술은 우리를 장소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고향이 어디인지, 어디서 사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죠.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태어난 장소를 떠나 연고 없는 곳에 가는 것을 단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게 단절입니다. 이처럼 개인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소멸되면서 우리의 정체성도 흐려지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제3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동네 카페나 술집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상대방 얼굴보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많고요. 몸은 특정 장소에 있지만 정신은 가상 세계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경험을 사수하라
역사학자 루이스 멈퍼드가 그의 저서 『기술과 문명』에서 언급했듯이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자 억압의 도구다.” 건전치 못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기술로 가능해진 매끄러운 삶에 다시 마찰을 도입해야 한다. p.325
특정한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저자는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강조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경험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입니다. 디지털의 편의성에서 빠져나와 의도적으로 대면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늘려야 해요.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때때로 귀찮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힙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몸짓에 공감하는 경험이 쌓여야 타인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는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례를 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공공행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길에서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긴 보행자가 있으면 뒤따라오는 모든 보행자의 통행에 지장이 생긴다고 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쾌한 경험을 선사하게 되는 거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면 달리기가 더 즐거워질까요? 주변의 소음을 듣지 못해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애플 워치의 심박수 모니터링 기능은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까요? 당신의 개인정보는 낱낱이 기록되고 있죠. 빅테크 기업들은 소비자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이익 추구라는 가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나아가 국가는 사회적 인프라를 강화해야 합니다. 도서관·공원 등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를 많이 만들어야 해요. ‘좋아요’ ‘팔로워’ 등 숫자로 인기를 정량화하는 공간이 아니라 순수한 사교가 일어날 수 있는 소통의 장소가 곳곳에 있어야 하죠. 그래야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고 경험을 나누며 인간다운 삶의 균형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