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별일 안해도 월 300만원 훌쩍”…‘자연인’ 택한 대기업맨 비결

해암도 2025. 9. 1. 21:26

구원투수, 추진력의 명수….
GS건설 재직 시기, 훈장처럼 따라다녔던 내 별명이다. 적자로 허덕이는 영업장에 박익수(64)를 보내면 어떻게든 흑자를 만들어낸다며 선후배들이 붙여줬다.

내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건 제주도였다. GS건설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자 회사는 나를 그곳으로 보냈다. 그들의 믿음대로 난 딱 3년 만에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하고 흑자 조직으로 바꿔놨다. 이후 나는 해당 리조트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급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조직생활은 노력과 헌신, 성과대로 인정받는 건 아니었다. 상사가 바뀌면 같은 사람, 같은 성과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지곤 했다. 최고의 성과를 인정받은 바로 이듬해부터, 나는 인사고과에서 2년 연속 최하 등급을 받으며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속상하고 스트레스 받은 걸 어떻게 다 말로 해요. 수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제가 맡아 키워온 사업 자체가 그냥 없어지질 않나, 팀이 해체되질 않나, 내가 키운 후배 밑으로 들어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하여간 별별 일 다 겪으면서 말 못할 병도 많이 얻었어요. 

하지만 ‘사직서’는 내 사전에 없었다. 내게 직장이란 반드시 만기 전역을 해야 하는 군대 같은 곳이었다. 강제 해고를 당하지 않는 한, 내 손으로 사표 쓰고 물러나는 일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나 할까.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소파에 앉아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넋을 놓고 봤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처받고 병 얻은 사람들이 산속에서 들어가 결국 치유되는 모습에 그냥 푹 빠져드는 거예요. 

그리고 2021년 6월, 스스로 정한 숙제인 ‘정년’을 마쳤다. 상사는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몇 년만 더 일해 달라”고 붙잡았지만, 모든 숙제를 마친 나는 홀가분하게 회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동안 홀린 듯 봤던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처럼 산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GS건설에서 정년퇴직하고 '자연인'의 삶을 꿈꾸며 산 생활을 시작한 박익수씨. 김경록 기자



퇴직한 지 5년째, 갑상샘 항진증·고혈압·지방간 등 온갖 병에 찌들었던 몸은 어느덧 깨끗해져 건강을 회복했다. 산에서 사귄 나의 ‘새 친구’ 덕분에 별로 하는 일 없이도 월 300만원의 수익은 쉽게 올리고 있다. 아직도 막역하게 지내는 회사 후배들은 내 산에 종종 놀러와 나의 새 친구들과도 만난다.

꿈에 그리던 자연인이 돼 넉넉한 수익도 올리는 내 인생 2막의 비결이 궁금하신가. 산 생활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수익도 보장해 준 새 친구의 정체, 직장생활의 팍팍함과 끝도 없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건강까지 되찾은 비결 등을 낱낱이 공개하겠다.

은퇴Who 〈목차〉

📌 탄광촌 소년, 호텔맨 되다
📌 산엔 염소, 시골집엔 민박… 월 300만원 수익 훌쩍
📌 회사의 인맥과 경험… 퇴직 후에도 최고 자산
📌 [은퇴 후 조언] “시니어들이여, ‘기회의 땅’ 시골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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㉑ ‘상탈’ 속옷 모델, 상무님이야? 손흥민과 광고도 찍은 65세
⑳ 척추 깨졌는데 마법 일어났다… ‘연봉 1억’ 마술사 된 소방관
⑲ 상무님은 다 계획이 있었다… ‘월 180만원’ 택배 뛴 사연
⑱ 억대 연봉? 홍어는 썰어 봐라… 두 번 사표 쓴 男 ‘피눈물 조언’  
⑰ “음주는 물론 마작도 배울 것” 대기업 임원의 ‘불량한 은퇴’

탄광촌 소년, 호텔맨 되다
 나는 완전히 ‘헝그리’ 출신이에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그냥 구호가 아니고 삶 자체였으니까요. 직장생활이 힘들긴 했지만, 솔직히 그런 번듯한 직장에 다닌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마음도 컸죠. 

아버지는 광부였다. 고향은 강원도 태백시의 탄광촌이다. 과로에 시달린 아버지는 과음을 하며 갈수록 일하는 날 수가 줄었다. 결국 위암에 폐암까지 겹쳐 오랜 기간 병고를 치르셨다.

집안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5남1녀 중 장남인 나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했다. 인형공장, 금속공장 등을 전전하며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활비를 댔다. 동생 셋을 내 자취방으로 데려와 뒷바라지해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사실 제가 회사에서 끝까지 버틴 건 이런 기억들 때문일 거예요. 가장이 집안 경제를 책임지지 못하면 식구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지는지 누구보다 절감했잖아요. 제가 회사에서 속이 썩는다고 갑자기 나와버리면 가족들의 일상에 공포감을 주는 거죠. 그게 싫어서 마음으로 속은 시꺼멓게 썩어도 겉으로는 허허실실하면서 정년까지 버텼습니다.   


박익수씨는 "내게 회사는 군대처럼 반드시 만기 전역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며 정년까지 일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동생들은 학교에 보내고 나는 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18세 때였나, 한겨울에 남대문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종각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으로 걸어가는 길이 유난히 추웠다. 그때 내 눈에 플라자호텔의 화려한 외관이 들어왔다.

 2년 넘게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으리으리한 그 건물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근데 그날은 워낙 춥기도 했고 왠지 꼭 한 번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더라고요. 도어맨이 한눈 판 사이에 슬쩍 들어갔죠.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칼바람 부는 바깥 날씨와 달리 딱 기분 좋을 만큼 후끈한 온도, 잔잔한 음악, 화려한 조명….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싶었다. 말쑥한 차림의 직원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물었다.

 저는 지금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나중에 여기 꼭 취업하고 싶은데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직원은 나를 찬찬히 보더니만 “고등학교 과정 잘 마치고 국제관광공사에서 관광자격증을 따면 호텔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해 줬다. 그날 이후,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호텔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일하겠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뿐이었다.

꿈은 이뤄진다고 했던가. 나는 정말로 고교 검정고시 통과 후 자격증을 따서 웨스틴조선호텔에 입사했다. 이후 그랜드힐튼호텔을 거쳐 1993년 GS건설에 경력 공채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 대학·대학원도 졸업했다.

 아니 세상에, 탄광촌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간신히 살아온 내가 어떻게 호텔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입사할 수가 있겠어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게 하나씩 이뤄지면서 기적이 일어난 거죠. 이때는 인생이 막 고속 상승하는 기분이었다니까요. 그러니 회사에 준 임무가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할 수 있다’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박익수씨는 "임원 승진은 하지 못했지만 회사에서 가장 많은 팀장을 배출했다"고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직장에서 임원 승진은 못 했다. 하지만 영업 수주나 실적 압박 등 임원 수준의 역량과 책임을 요구받은 지 오래였다. 회사에선 총괄·총지배인 등의 직함을 주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속이 안 상했다면 거짓말이죠. 헌신하고 노력했으니 마음 다칠 일이 더 많았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탄광촌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감사하다’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또 다른 목표도 있었죠. 사업을 키워서 내 후배들은 다 팀장으로 올려주자는 거였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퇴직할 때까지 가장 많은 팀장을 키워낸 사람입니다. 하하. 

산엔 염소, 시골집에선 민박… 월 300만원 훌쩍 
퇴직 전 마지막 프로젝트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최고급 시니어 아파트 완공과 입주 업무였다. 일더미에 파묻혀 퇴근도 없고 연일 밤샘 근무가 이어졌다. “내 정년이 코앞인데 준비할 시간도 없구나”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산림청의 ‘귀산촌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광고가 눈에 쏙 들어왔다. 강의 제목은 ‘산에서 돈 버는 법’이었다.

 마침 제가 경매로 산을 하나 사둔 게 있었거든요. 강원도 춘천에 길도 없는 맹지에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시골집까지 합쳐서 1만5000평 정도가 1억원도 안 되는 헐값에 나왔기에 덜컥 사뒀어요. 언제가 됐든 산에 들어가 자연인처럼 사는 게 꿈이라 일단 사두고 까맣게 잊어버렸죠. 근데 이 광고를 보니까 ‘아참, 나 산 있는데 그걸로 돈 버는 법이 있으면 한번 배워볼까?’ 싶더라고요. 


박익수씨는 GS건설에서 정년퇴직한 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자신의 산에서 염소를 방목해 키우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없는 시간을 쪼개 가며 수업을 들었다. 임업경영체에 등록하고 농부로 인정받는 법, 농부가 받을 수 있는 각종 세제 혜택, 산에서 키우기 좋은 작물이나 가축은 뭔지 등 귀산촌 초보자에게 필요한 알짜 정보가 넘쳐났다. 막막한 은퇴 후 삶에 살 길이 보였달까, 수업을 듣는 내내 집중력이 샘솟았다.

그렇게 찾아낸 게 바로 염소다. 산에 넘쳐나는 게 풀이고, 이 풀을 자원으로 이용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저절로 염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에다 밭농사는 못 짓겠더라고요. 밭을 만들려면 일일이 풀을 메야 하는데 이미 건강이 망가진 몸으로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근데 풀을 밥으로 삼은 동물을 키우면 풀 자체가 자원이 되잖아요. 여러 가축을 생각하다 길들이기도 쉽고 배설물 양도 작아 위생적인 염소가 좋겠다고 판단한 거죠. 


박익수씨는 "산에는 천지가 풀이라 풀을 식량으로 삼는 가축인 염소를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산·염소로 인생 2막 키워드가 정해지자 축산에 대해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대 농업최고경영자과정 축산과에 들어가 1년간 염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일단 산에다 염소 세 마리를 풀어놨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들이 낮이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시원한 동굴에서 놀고 온 산을 돌아다니며 산야초 실컷 뜯어먹은 뒤 밤이면 내가 지어놓은 막사로 내려와 잠만 거기서 자는 거다. 산 곳곳에 계곡물이 흐르고 풀이 널려 있으니 난 염소한테 물도 밥도 따로 챙겨줄 필요가 없었다.

 얘들이 새끼도 알아서 낳아 키우고 하면서 개체 수도 금방 늘더라고요. 근데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 정도로만 키우려고 30마리 정도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다 팝니다. 또 얘들 키우는 데 돈 드는 게 하나 없어요. 사료는 한 달에 딱 한 포 먹이는데, 먹이를 줘야 내가 주인인 줄 알아보고 따르거든요. 평소에는 산짐승이랑 똑같이 제멋대로 뛰어놀다가 제가 부르면 얼른 내려와서 졸졸 따라다녀요. 제가 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건강 관리 삼아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리는데, 그때마다 염소가 길동무가 돼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사료 한바가지 퍼서 산에 오르다 “미미야! 삼돌아!” 하고 부르면 “메에~” 하며 산등성이를 타고 달려내려오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염소를 친구 삼아 산에서 놀다 보니 건강도 부쩍 좋아졌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각종 병증이 씻은 듯 싹 사라졌다.


박익수씨는 "건강 관리를 위해 산을 수시로 오르내리는데 염소가 길동무를 해줘 심심하지 않고 즐겁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연소득 3000만원’이라는 목표 수익도 달성했다. 정년을 채우는 동안 아들·딸은 대학 졸업하고 취업해 독립했고, 전업주부이던 아내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자기 일을 시작했으니 내가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지금 매달 염소 새끼를 최소 두 마리씩은 파는데 마리당 50만원이거든요. 그리고 산이랑 세트로 구매한 시골집은 깨끗하게 수리해서 민박집으로 써요. 주말마다 예약이 꽉 차서 비수기 기준으로 월평균 200만원 넘게 들어오죠.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한 달 소득이 300만원은 수월하게 넘네요. 

회사의 인맥과 경험… 퇴직 후에도 최고 자산
‘네가 길어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마라.’

요즘 절감하는 격언이다. 회사 다닐 때 너무 억울하고 힘든 일이 겹치면 ‘어디다 고발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까지도 한 적이 있는데, 퇴직 후엔 회사에서 맺은 인연, 회사 업무를 통해 배우고 익힌 노하우 덕분에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직 중 내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시니어 아파트의 입주자들은 지금 내 중요 고객이 됐다. 이분들은 귀촌한 내게 수시로 연락해서 “시골에서 뭐 팔 거 없어? 내가 다 사줄 게 말만 해”라며 챙긴다. 또 내가 기르는 ‘산야초 먹인 염소’가 마음에 든다며 시시때때로 고기도 사가고 약으로 달여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박익수씨는 허름한 시골집을 민박집으로 개조해 월 2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박집에서 가장 반가운 고객은 직장 후배들이다. 아직 회사를 다니는 후배들은 종종 의기투합해 우리 민박집으로 우루루 놀러와 쉬기도 하고 염소와 산길도 걷다 간다. 후배들이 오면 나도 반가운 마음에 염소 전골을 한 냄비 끓여 몸보신도 시켜주고 회사 일이며 퇴직 후 삶에 대해 밤새 얘기를 나눈다.

 회사 사람들이 막 도와주니까 판로 개척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너도나도 ‘나한테 팔아’라면서 저를 응원해 주니 어찌나 고마운지 몰라요. 진짜 회사 다닐 때 멋대로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하하. 

호텔·건설·리조트 운영 등을 하며 익힌 업무 노하우도 인생 2막에 큰 자산이다. 이런 경험이 있으니 관공서나 한국전력에 건의해 길도 없는 맹지였던 산에 길을 내고 전신주까지 쫙 심을 수 있었다. 산 초입에 마을 이장님 집과 땅이 있는데, 내가 움직일 때마다 길도 나고 전기·통신 사정이 좋아지니 “박익수씨가 최고”라면서 나를 그렇게 좋아하신다.

민박집도 마찬가지다. 구입할 당시만 해도 오랜 기간 전혀 관리가 안 된 상태여서 곰팡이 피고 악취도 심해 거의 폐가 수준이었다. 호텔처럼 럭셔리하게 꾸밀 순 없지만 기본을 충실히 갖춘 곳으로 운영하자 싶어 청결과 안전에 초점을 맞춰 손을 봤다. 날마다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고, 페인트칠도 직접 했다. 출입구엔 계단 대신 장애인도 쉽게 드나들 수 있게 진입 경사로를 설치했다. 계절별 침구, 각종 청소 도구 등은 비품 창고를 따로 마련해 정리해 두고 손님이 묵는 공간은 항상 최적의 상태로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 민박집을 이용한 분들이 ‘오래된 시골 집인데 호텔처럼 깔끔하게 정리됐고 맨발로 다녀도 먼지 한 톨 밟히는 게 없다’고 좋아하세요. 또 창고를 바비큐 장소로 개조해 에어컨과 연기 빼는 후드 장치를 설치하고 냉·온수 콸콸 나오게 해뒀더니 만족도가 엄청 높더라고요.  


박익수씨가 자신이 산에서 방목해 기르는 염소를 번쩍 안아올리고 있다. 김경록 기자



결국 회사는 내게 상처도 남겼지만, 훌륭한 인맥과 경험이라는 자산을 선물로 줬다. 이제 회사를 떠나 시골 산과 집이라는 내 자산을 온전히 경영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회사에서 익힌 경험과 지식이 오롯이 나만의 경영 전략으로 쌓여 있다. 퇴직 후엔 이를 잘 활용해 나만의 수익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 그래야 지금 회사에서 버티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거기서 배우고 일한 게 헛되지 않다’는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은퇴 후 조언] “시니어들이여, ‘기회의 땅’ 시골로 오세요!”

내가 싸구려 땅 사서 길 만들어 염소 키우고, 다 썩어가는 시골집으로 민박을 하자 후배들은 내게 “형님 사시는 모습이 진짜 큰 희망을 준다”고 부러워한다. 특히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병들었던 몸이 깨끗하게 치유되니 다들 신기해 한다. 나는 자신있게 권한다. “각박하고 복잡한 도시는 젊은이들한테 물려주고, 은퇴자들은 한적한 시골로 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자”고. 나의 시골살이 노하우에 대해 공개한다.

① 배우자와 합의가 최우선
난 퇴직 10년 전부터 아내에게 “정년은 채우겠다. 대신 그 뒤엔 내가 산에 가서 뭘 하든 시간을 달라”고 얘기했다. 사실 아내는 내가 50대부터 병들고 회사에서 큰 스트레스 받는 걸 지켜보면서 “그만두고 싶으면 오늘이라도 사표 쓰라”고 항상 내 편에 섰다. 그리고 내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본인도 사회복지사가 됐다. 내가 정년퇴직을 하자 정말 크게 치하해 주고 자유를 줬다. 현재 아내는 30분 거리의 아파트에, 나는 민박집 뒤 작은 독채에서 거주하면서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배우자와의 이런 합의가 없이는 시골살이를 시작하기 어렵다.

② 텃세? 극복하기 나름
지금은 내 든든한 지원군이 된 이장님이지만, 처음부터 마음을 열어준 건 아니다. 내가 염소를 키우는 산이 10만 평이 넘는데, 내 소유는 1만5000평뿐이고 산 초입부터 대부분은 이장님 땅이다. 산에서 염소를 키우려면 사료 싣고 차가 들어갈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장님이 절대 반대하셨다. 그래서 직장 다닐 때부터 주말마다 내려가 지게에 사료를 실어 지어 나르며 땀을 죽죽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몇 달이 지나자 이장님이 “뽀얗고 곱던 서울 양반이 까맣게 타서 너무 안됐다”며 문을 열어줬다. 귀촌한 사람은 ‘원칙대로 하자’며 따지고 들지 말고, 성실한 모습으로 원주민들의 환심을 사는 게 먼저다.


박익수씨가 자신이 키우는 염소와 산길을 걷고 있다. 김경록 기자



③ 나만의 테마를 정하라
내가 살아 보니 시골은 무궁무진한 곳이다. 나는 염소와 민박집으로 시골살이에 연착륙했는데, 앞으로 이곳에 한국판 ‘블루존’을 조성하는 게 꿈이다. 염소와 함께 하는 등산·트레킹, 염소 고기 음식점, 염소젖으로 만든 우유와 요구르트 등으로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최근엔 몽골에 가서 ‘염소 허르헉’(양이나 염소 고기로 만든 몽골 전통 찜요리)을 배워 오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확대해 마을 공동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많은 시니어가 나처럼 시골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이뤄가길 바란다.


에디터     박형수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