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약은 불신·영양제는 진심?… 거짓 건강법에 속는 이유
해암도
2025. 6. 4. 05:43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유튜브·SNS의 자극적인 정보 맹신하며 조언 거부하는 환자들
육식 다이어트·단식 요법… 문해력 없으면 거짓 건강법에 속아
유행 따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 있어야 건강 지킨다

최근 들어 만성 질환이 있는 중·장년층을 진료하는 일이 매우 힘들어졌다. “유튜브 보면 고지혈약을 먹으면 뇌가 녹고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고지혈약엔 XX 영양제가 좋다던데요. 허리가 아픈데 XX 좋은가요? 현미나 콩에는 독소가 있다는데 먹으면 죽지 않나요?” 매일 수십 번 듣는 이야기다. 약은 불신하면서 영양제에는 혹한다. 바쁜 진료 시간 중 이런 논의로 진료실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반나절 진료하면 ‘약을 끊으시면 안 되며, 뇌 영양제는 별로 효과가 없고, 많은 비타민은 굳이...’ 이런 이야기를 10번 이상 한다. 진이 빠진다. 이미 혈관에 스텐트가 들어 있어서, 약을 끊으면 큰일이 날 사람도 많다.
어쩌면 모르는 약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약을 먹지 않고도 나아질 방법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에는 정보 분별력, 즉 건강 리터러시의 부족함이 숨어 있다. 이는 건강에 관한 정보를 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으로, 의사 설명을 제대로 파악하고 따르거나, 질병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낼 줄 아는 역량을 말한다.
미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보를 검색할 때 건강 리터러시가 낮은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가짜 치료법이나 영상을 더 자주 찾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건강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공신력 있는 지침이나 양질 논문 등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정보를 상대적으로 더 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미디어 환경을 살아가고 있다. 잘못된 건강 정보가 디지털 시대의 알고리즘을 타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자극적인 제목과 선동적인 내용의 영상일수록 클릭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이득이라, 근거 위주의 담백한 설명보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추천한다. 클릭 수 경쟁이 진실을 왜곡하고, 동료 평가를 거친 연구보다 조회 수 높은 가짜 뉴스가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숫자에 기반한 정보는 재미가 없다. 만성 질환에 대해 약 하나를 개발해 처방하기까지는 복잡한 검증이 필요하다. 메커니즘 실험, 동물 실험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고, 건강 지원자들 대상의 1상, 환자 대상의 2상과 3상 시험까지 거친다. 그 결과가 국가 차원에서 나중의 중병과 노쇠, 사망을 예방할 수 있어야만 정부는 지갑을 연다. 심지어, 의사는 이렇게 정부가 만들어 놓은 엄격한 기준에 맞춰서만 약을 처방하게 되어 있다. 이때 “이 약은 5년 내 심근경색 위험을 30% 줄일 수 있습니다”라는 정보는 막연하다. 하지만 “이 약 먹고 간이 망가졌다”는 무서운 영상은 강렬하다.
반면 건강 기능 식품이나 영양제는 이러한 검증 없이 팔 수 있다. 말 그대로 음식 범주라 치료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는 화려한 광고와 유명인 체험담에 기대어 효험을 믿고 지갑을 연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도 “나는 이것 덕분에 당뇨를 완치했다”는 한 사람의 간증은 기대를 심어준다. 효능을 지지하는 댓글 부대를 동원하기도 한다. 마케팅은 인간 심리를 교묘히 파고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결국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 결과보다 지인이나 유명인의 “써보니 좋더라”는 말 한마디에 지갑을 여는 것이 사람이다.
이러한 미디어 특성에 힘입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건강법이 유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든 것을 육류로만 구성하는 이른바 카니보어 식단이다. 일부 유명인은 이 식단으로 활력이 좋아지고 체중도 줄었다며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위험성을 지적한다.
하버드 보건대의 월터 윌렛(Walter Willett) 교수는 카니보어 다이어트에 대해 “단기간 체중 감량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채소와 과일을 끊으면 섬유질과 미량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지고, 심장병 등 만성 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한마디로 최악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고기만 먹고 모든 병을 고쳤다”는 식의 자극적 영상이 조회 수 상위를 차지한다. 이 밖에도 곡물이나 채소에 든 피트산 등 항영양소가 건강을 해친다며 특정 음식군을 아예 배제하는 식단, 혹은 식사 간격만으로 기적을 본 듯 포장하는 단식 요법 등 유행하는 건강법은 끊임없다. 대체로 과장과 왜곡을 거쳐 만병통치 해법처럼 포장하는 정보다.
이런 자극적이고 해로운 정보가 전국 의사들의 진료 시간을 잠식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건강법을 좇다가는 돈과 시간만 잃고 정작 필요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그럴수록,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근거가 확실한 정보, 이야기보다는 숫자를 보여주는 정보,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제시하는 정보를 활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쉽게 들리도록 가공한 영상보다는 기승전결이 있는 영상이나 텍스트 정보에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OECD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고령층 문해력 저하는 다른 주요 국가보다 두드러져, 세대 간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건강 리터러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정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건강 자산뿐 아니라 금융 자산을 지키는 데도 취약할 수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삶이 각박하여 복잡다단한 정보를 곱씹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뇌 구조, 선배 시민들이 머리와 몸을 쓰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 공경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마인드셋, 입시 경쟁에 지쳐 성인기에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심리가 조금씩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럴수록 문해력이 필요하고, 건강 리터러시가 중요해진다. 건강 리터러시를 기른다는 것은 유행 정보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중·장년층은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은 만큼 상업적 유혹도 쉽게 받는다.
하지만 잘못 따르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스스로 배우고 판단하는 현명한 환자가 되는 것이 늙기의 기술 중 하나다. 늘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 문해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정보 홍수 속에서 내 가족과 나의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무기는 화려한 광고나 간증이 아니라, 차분히 사실을 보는 눈과 평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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