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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냄새에 홀렸나?...구미호가 된 코요테
해암도
2025. 5. 21. 09:55
공동묘지 파헤치는 이상 행동
늑대, 여우 등 갯과 맹수들은 사체도 가리지 않고 먹어

보름달이 휘영청 빛나는 깊은 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무덤가에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더니 아홉 꼬리를 펄럭이는 여우, 구미호로 돌변합니다. 놈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캥캥 소리를 내며 앞발로 무덤을 파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채 육탈되지 않은 시신의 뼈에 붙은 살점을 마구 뜯어먹습니다. 전설의 고향 등을 통해 어느정도 정형화돼있는 구미호의 모습이죠.
산짐승 그 중에서도 갯과 육식짐승의 식단 에는 사체도 포함돼있다는데서 연유된, 어느정도 팩트에 기반한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가 고파 눈이 뒤집힌 짐승이 동물 사체와 사람 시신을 구분할리가 있겠습니까. 이런 장면 어쩌면 한국에 특화된게 아닌, 상당히 세계 보편적인 서사일수도 있겠다는 장면이 최근 포착됐습니다. 우선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 SF 게이트 기사 내용입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소도시 콜마에 있는 공동묘지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던 에린 헤일리의 눈에 기괴하고도 섬뜩한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비석이 서 있는 무덤가에서 짐승 한 마리가 가열차게 흙을 파헤치고 있었어요. 코요테였습니다. 이 묘지를 다닌지가 26년째라는 헤일리는 코요테가 무덤가에 와서 흙을 파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종종 까마귀가 까아악 울고, 차들이 지나가면서 주의를 흩뜨리는데도 코요테는 한참동안 땅파는 걸 멈추지 않았답니다. 놈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다람쥐·마못·들쥐처럼 코요테의 주된 먹잇감인 설치류를 잡으려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10여분동안이나 한 장소를 파내려가는 것은 설치류를 사냥하는 갯과 맹수가 보이는 행동패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린게 아닐까요? 겹으로 흙을 파내려가면 모습을 드러내는 두꺼운 관, 그 굳게 닫힌 관뚜껑이 세월의 더께를 이겨내지 못하고 벌려진 작은 틈으로 새어나온 내음을 맡고 식탐이 발동한게 아니냔 말이죠.
다섯달 뒤 핼러윈 때나 어울릴법한 기괴한 장면이 신고되면서 묘지 관리사무소 측은 경비를 보다 강화할 모양입니다. 이미 앞서 소개해드린대로 코요테는 여러 식육류 맹수들 중 인간이 기반을 닦은 도시 생활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것인지, 나약한 것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공존을 모색한다’는 명목으로 코요테 박멸을 포기했어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갯과 맹수들이살아가고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이들의 사냥방식 하면 끈질긴 지구력과 엄정한 군기에서 비롯된 놀라운 협업으로 거대한 먹잇감을 쓰러뜨리는 협동 사냥을 떠올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의외로 꽤 많은 놈들이 이미 죽어있는 짐승의 몸뚱아리를 탐하는 스케빈저(scavenger)의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갯과 맹수의 맏형이자 제왕, 늑대부터 살펴볼끼요?
늑대의 사냥 패턴은 촘촘합니다. 말코손바닥사슴처럼 지구력이 뛰어난 초식동물들을 사낭할 때는 시속 45~50㎞의 속도를 유지하며 끈질기게 쫓아가서 지치게 한 뒤 뒷다리를 물어뜯어 자빠뜨립니다. 사향소·순록·와피티 등도 이런 방식으로 사냥하죠. 물론 굳이 팀플레이가 필요하지 않은 손쉬운 사냥감도 있어요. 다람쥐·토끼·도마뱀·물고기 따위죠. 이런 자잘한 먹거리조차 구하기 힘들 때 늑대들의 먹거리 구하기는 극과 극의 형태로 이원화됩니다.
우선 가장 위험한 먹잇감 곰에게 감히 덤벼드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후려치는 곰의 앞발에 머리뼈가 으스러지고 그 충격으로 입이나 항문으로 내장이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단 한 번의 타이밍을 잡아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곰을 겨냥한 위험한 사냥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면요?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립니다. 썩어문드러지는 뼈와 고기를 찾아 헤메는 스케빈저로 변하는것이죠. 이들은 나름대로 미식가의 면모도 보입니다. 즐겨먹는 식단에는 고래고기도 있거든요.

갯과 맹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대 파벌인 여우의 식단은 어떨까요? 전세계 분포하는 여우들에게는 하나의 법칙이 통용됩니다. 사는 곳의 온도와 귀의 크기가 완벽하게 반비례하는 것이죠. 가령 더운 아프리카에 사는 페네크여우와 큰귀여우는 얼굴을 덮고도 남을 크기의 거대한 귀를 갖고 있죠. 그러다 북반구 온대 지역에 사는 붉은여우와 회색여우에 이르면 귀는 적당히 쫑긋한 크기로 줄어듭니다. 그러다 지구의 북쪽 끝 빙원에 사는 북극여우에 이르면 보일락말락한 크기고 쪼그라듭니다.
추운 곳에 사는 여우일수록 체온의 발산을 막으려다보니 이런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죠. 여기에 또 하나, 거칠고 황량하고 추운 곳에 사는 여우일소록 스케빈저로 살아가는 빈도수가 높아집니다. 여우는 공통적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귀가 커다란 페네크여우나 큰귀여우는 덩치는 작아도 제몸과 엇비슷한 토끼 등을 즐겨 사냥하는 용맹한 포식자 모습을 합니다. 그런데 북극여우의 경우 천상 ‘스케빈저’로 살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워낙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요.

기껏해야 살아있는 먹잇감이야 레밍이나 갈매기 따위의 바닷새인데 운이 좋아 잡는다고 해도 주린 배를 채우는게 좀처럼 쉽지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택한 전략은 ‘북극곰 스토커’입니다. 극지 최대의 사냥꾼 북극곰을 일정한 거리로 쫓아다니며 북극곰이 사냥해서 먹어치우고 남은 물범 또는 바다코끼리 등의 사체를 찾아먹습니다. 이렇게라도 배를 채우지 않으면,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존을 꾀합니다. 카니발리즘, 종족끼리 서로 잡아먹는것이죠. 썩어문드러가는 사체는 이 종족이 최소한의 짐승의 삶을 영위해주는 보루 같은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커다란 육식짐승을 졸졸졸 쫓아다니며 스토킹하다가 먹고 남은 사체라는 ‘떡고물’을 노리는 것. 어쩌면 강자도 약자도 아닌 어중간한 파워의 맹수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얼핏 비굴해보일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이렇게 스토커로 이름을 날리는 대표적인 놈들이 바로 앞에 소개했던 코요테, 그리고 대서양 건너 아프리카에서 코요테의 도플갱어처럼 살아가는 재칼입니다. 코요테와 재칼은 마치 표범과 재규어처럼 연결되지 않은 완전히다른 세상에 터전을 잡았음에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빼닮았습니다.

재칼의 스토킹 대상은 사자·표범·하이에나·치타 등 사바나의 A급 맹수들입니다.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살코기와 내장이 A급 맹수들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남은 몸뚱이. 살과 근육이 피와 엉겨붙어있는 갈빗살, 여전히 눈을 치켜뜬 사냥감의 머리와 이빨 등이 이들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죠. 재칼이 기껏해야 마음놓고 사냥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갓 태어나 영양 새끼나 쥐, 메뚜기 정도입니다. 천생 스케빈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코요테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람쥐·토끼·도마뱀·메뚜기 따위를 직접 사냥하기도 하지만 간에 기별이나 가겠나요. 하여 코요테에도 기본적으로 스케빈저 피가 좔좔 흐르고 스토커의 본능으로 끓어오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늑대·불곰·퓨마 등 아메리카 대륙의 A급 맹수들을 쫓다아니면서 그들이 사냥해 먹어치우고 남긴 잔해를 노립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재칼의 스캐빈저 동반자로 대머리수리가 함께 한다면, 아메리카에서 코요테의 동급 시체먹이 파트너는 까마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요테가 훑고 지나가 자잘해진 살점과 말라붙은 근육 조각들은 총총거리며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들이 몫입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갯과 동물들은 평생에 최소 한 번은 썩은 내 나는 시체더미로 배를 채운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