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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필요없어, 공기 청정의 개념을 바꿨다" 한국 스타트업의 세계 최초 혁신 기술

해암도 2025. 2. 28. 06:03

[스타트업 취중잡담] 공기 살균·정화 시스템 '에어썸' 개발한 어썸레이 김세훈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공기 살균·정화 시스템 ‘에어썸’ 개발한 어썸레이 김세훈 대표. /더비비드

 

 

창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세먼지로 뿌옇게 변해버린 하늘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이젠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위험성이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흡연자의 폐암 진단이 급증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미세먼지와 조리 매연을 지목하고 있다.

 

서울대 공학박사 출신의 어썸레이 김세훈(49) 대표도 ‘공기질’에 꽂혀있다. 어썸레이는 공기 살균·정화 시스템 ‘에어썸’을 개발한 8년 차 스타트업이다. 필터 없이 공기 중 오염물질을 걸러준다는 장점 덕분에 교육청 등 공공기관이나 건설·시공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전공 살릴 때까지, 네 번의 창업

대학원 시절 연구실에 콕 박혀 있었다는 김 대표. /김세훈 대표 제공
 

한성과학고를 졸업하고 1995년 서울대 재료공학부에 입학했다.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어 양껏 공부했어요. 같은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까지 밟았죠. 당시는 스타트업을 ‘벤처기업’이라 부르던 시기인데요. 벤처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학부생 시절부터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 몇 번의 창업을 경험했어요. 다만 모두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전공을 살릴 길을 찾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홀로서기를 결심했어요.”

 

창업 아이템은 탄소 나노 튜브(CNT)와 엑스레이(X-ray)였다. “대학원 시절 엑스레이(X-ray)를 만드는 기업의 컨설팅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차세대 엑스레이로 CNT를 활용하고 싶다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CNT는 원기둥의 나노 구조로 만든 탄소 소재로 강도·전도성이 뛰어난 신소재인데요. CNT와 엑스레이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늘 연구했던 주제였습니다. 그동안 왜 연구만 하고 활용할 생각을 못 했나 싶었죠.”

CNT를 실 형태로 제작한 모습. CNT를 섬유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기술은 어썸레이의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어썸레이
 

CNT의 형태를 잡는 일이 관건이었다. “그동안 CNT는 가루로만 만들어져 활용성이 떨어졌어요. 대학 시절 인연이 있었던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실처럼 뽑은 CNT로 엑스레이 전구에 적용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 만에 바로 의도한 결과가 나왔어요. 낮은 온도에서도 다량의 엑스레이를 낼 수 있는 이른바 ‘엑스레이튜브’를 개발한 겁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을 모아 2018년 7월 어썸레이(aweXome Ray)를 설립했다. “먼저 반도체 기업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정전기 제거용으로 엑스레이를 쓰고 있었는데요. 엑스레이튜브가 방사선 위험 없이 정전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으리라 판단했죠. 하지만 대기업의 의사 결정 단계는 너무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OK’ 사인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김 대표가 연구했던 CNT와 엑스레이를 활용해 개발한 엑스레이튜브. /김세훈 대표 제공
 

좀 더 뾰족한 전략이 필요했다. 엑스레이튜브가 정전기를 제거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창 뉴스에서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리던 시기였어요. 공기 중에 소프트 엑스레이를 쏘면 순간적으로 정전기가 생기면서 미세먼지·세균·바이러스 같은 입자성 물질에 정전기가 생깁니다. 이때 정전기를 모으면 입자들도 함께 붙잡히겠죠. 이론은 완벽했어요. 실험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준비물은 소프트 엑스레이, 정전기를 모아줄 집진판 그리고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를 구할 길이 없어 평소 담배를 즐겨 피우는 직원에게 연기를 모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 한 갑을 태우고 그 공기를 모았죠. 손바닥만 한 집진판 5개를 설치하고 공기를 통과시켰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세먼지 농도가 500㎍/m³에서 100㎍/m³으로 떨어졌어요. 공기살균·정화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했죠.”

◇고급 오피스텔부터 학교 조리실까지

김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처음 만든 시제품. /김세훈 대표 제공
 

시제품도 없는 상태에서 코트라(KOTRA) 건물 관리 담당자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필터 없이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기술을 찾고 있었다며, 2개월 안에 제품을 만들 수 있겠냐더군요. 무조건 된다고 했죠. 말 그대로 ‘뚝딱뚝딱’거리며 정해진 기한의 마지막 날 겨우 설치를 해냈습니다. 독립 설치형이 아니라 기존 공조 장치(AHU)나 전열교환기(환기장치)에 부착해 쓸 수 있는 형태였기에 가능했죠. 이날이 어썸레이의 공기살균·정화 시스템 ‘에어썸’의 생일입니다.”

 
김세훈 대표(왼쪽)와 한원석 팀장이 브라이튼 한남 1층 천장을 바라보며 공기 정화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장에 숨겨진 공기 살균·정화 장치(오른쪽). /더비비드, 어썸레이
 

에어썸을 알리기 위해 건축·인테리어 박람회에 꼬박꼬박 참가했다. 그 결과 뜻밖의 고객사를 만났다. “당시 ㈜신영이 고급 주거용 오피스텔인 ‘브라이튼 한남’을 기획하는 단계였어요. 에어썸은 필터 폐기물 없는 친환경 공기 살균·정화 시스템이라는 점을 어필했어요. 집진판에 모인 오염 물질은 일반 필터처럼 바람을 막지도 않고, 1년에 한 번 정도 물로 헹궈내기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거든요.”

 

㈜신영에서 에어썸 도입을 결정했다. 2021년 9월 ‘신영한남동개발PFV의 브라이튼 한남 분양’을 알리는 기사에 ‘어썸레이의 공기 살균 정화 환기 시스템이 적용된다’는 내용도 함께 실렸다. “브라이튼 한남에 에어썸 대형 모델 9대를 설치했습니다. 지하 2층에 6대, 지하 1층에 2대, 지상 1층에 1대가 숨겨져 있죠. 실내 공기와 바깥 공기를 뒤섞어 환기해 주는 장치 사이에 집진판이 들어있어 미세먼지는 물론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까지 잡아내죠. 벌써 완공 후 분양까지 끝내고 입주를 진행 중입니다.”

삼각산중학교 조리실에 에어썸을 설치한 모습. /어썸레이
 

교육청에서도 공기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어썸레이의 문을 두드렸다. 문제의 원흉은 조리흄(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고농도 미세먼지)였다. “공기청정기는 주방에서 사용할 수 없어요. 수분과 유증기가 많아 몇 시간 만에 필터가 망가지기 때문이죠. 필터가 없는 에어썸은 가능합니다. 2021년 서울시와 공식적으로 테스트베드 사업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에어썸 설치 후 미세먼지·조리흄·이산화탄소·세균·바이러스가 모두 감소해 ‘성공’ 판정을 받았습니다.”

 

◇배추 저장 가능 기간 늘려주는 공기질의 변화

일반 환경에 둔 배추(왼쪽)와 에어썸으로 공기질을 관리한 환경에 둔 배추(오른쪽)를 비교한 모습. /어썸레이
 

세상에 없던 공기 정화 장치를 개발했지만 그로 인한 한계도 있다. “현시점에선 에어썸의 공식적인 성능을 인정받을 길이 없습니다. 공기 정화 장치에 필터를 끼우면 오염 물질이 끼면서 공기가 덜 통하게 되는데요. 필터 시험 기관에서는 그 막힘 정도를 기준으로 성능을 평가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에어썸의 성능은 빵점이에요. 공기가 하나도 막히지 않으니까요. 몇 년 전부터 ‘공기 투과 전후의 미세먼지 농도로 평가해달라’고 여러 기관에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어썸레이 하나를 위해 제도를 바꿀 순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받을 수 있는 테스트란 테스트는 다 받았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과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에서 에어썸 설치 후 미세먼지와 부유세균, 부유바이러스 모두 99.9%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외 여러 절차를 거친 끝에 2024년 2월 조달청의 우수조달물품으로 선정됐어요. 우수조달물품은 기술력·품질·성능이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를 지원하는 제도로 수의계약을 통해 물품을 공급할 수 있죠. 2025년 1월에 나라장터 종합 쇼핑몰에 등록 완료했습니다."

에어썸의 공기 정화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김 대표(왼쪽). 조달청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인증받은 AXR-AH250 실물 모습(오른쪽). /어썸레이
 

실내 공기질 개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에어썸을 설치할 계획이다. “김치공장의 배추 저장 창고에서도 에어썸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를 포집해 주니 배추의 저장 기간을 연장할 수 있죠. 수원·남양주에 있는 군부대 실내 사격장에 분진·중금속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사례도 있습니다. 모 통신사에서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데이터 센터 서버실에 에어썸 설치를 의뢰하기도 했죠. 앞으로도 다양한 파트너사를 만나고 싶어요. 어떤 환경이든 깨끗한 공기를 공급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박유연 기자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입력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