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MZ가 추앙하는 칠순의 ‘지식돌’… “출생률 회복이 능사 아니다”
해암도
2024. 2. 5. 11:0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코로나 때 가을 하늘'을 언급하며, "그 짧은 기간 인간이 활동을 멈추니까 자연이 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했다. 또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자연이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의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꼰대 소리 안 들으면 다행일 나이에 ‘아이돌’ 소리를 듣는다. 일흔 살 진화생물학자를 ‘덕질’하며 추앙하는 이들이 MZ세대다. 67세에 시작한 유튜브가 돌풍을 일으켰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기후 위기, 민주주의, AI의 미래를 논하는 ‘최재천의 아마존’ 구독자가 68만명. 소멸 위기의 대한민국에 “애 낳으면 바보!”라고 선언해 파란을 일으킨 뒤 ‘떡상(급상승이란 뜻의 인터넷 속어)’을 거듭하는 중이다. 최근엔 “출생률이 회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구는 현재 포화 상태
-대한민국에서 애를 낳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선언해 인터넷을 달궜다.
“모든 생물은 번식을 못 하게 하는 게 어렵지, 번식하게 하는 건 쉽다. 어느 정도 환경이 괜찮으면 인간 역시 대책 없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고 사는 동물이다. 그걸 지금 못 하고 있는 거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젊은 세대의 이기주의를 탓하는 시각도 있다.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그들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머리를 조금만 굴려서 계산해보면 결혼은 물론 출산, 육아, 교육 등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우리 앞에 닥친 기후 재앙은 또 얼마나 절망적인가. 저출생은 지극히 진화적인 적응 현상이다.”
-대대적인 사회 개혁이 없다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경고일까.
“저출산 대책에 몇백 조를 썼다고 하는데 대부분 엉뚱한 사업에 들어간 돈이고 보육 환경을 바꾸는 데 든 예산은 별로 없다. 이제 와 돈만 퍼준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아이를 맘 놓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구조를 과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 제도, 복지 제도로는 어림없다.”
-출생률이 회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출산율이 0.7명대라는 건 그만큼 복구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앞으로 수십 년 걸려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해도 될까 말까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도 인구는 줄어야 한다. 교통난, 주택난, 물 부족, 환경오염은 모두 인구 과밀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인구 밀도는 선진국의 20배 수준이다.”
-지구가 포화 상태란 뜻인가?
“세계 인구가 10억에서 20억이 될 때까지 100년이 걸렸다. 그러나 60억에서 70억 되는 데는 11년 걸렸고, 80억에서 90억 되는 데는 9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다시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구로서는 재앙이고 딜레마다. 지구가 인류를 품을 수 있는 한계(human carring capacity)는 이미 넘은 지 오래다.”
-국가 단위로 보면 저출산으로 노동인구가 줄고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이민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 국경을 열고, 출입국을 쉽게 해 노동인구의 이동을 보다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초고령 사회로 가지 않으려면 이민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얘기를 출산율 1.08명으로 떨어진 2006년부터 줄곧 해왔는데 아무도 듣지 않더라.”
-지금이 국가 정책 기조를 바꿀 때라고 했다.
“적은 수의 국민으로도 인간답게 행복을 누리며 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강대국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덴마크나 벨기에처럼 적은 인구에도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며 사는 나라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과학자가 유튜브를 만나면?
-유튜브는 왜 시작하셨나.
“10여년 전 제인 구달 박사님과 ‘생명다양성재단’을 만들고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그런데 운영비 마련이 힘들더라. 기업 도움 받기도 쉽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어떤 분이 유튜브로 돈 벌어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이판사판인데 못 할 건 또 뭐 있나 해서(웃음).”
-유튜브를 시작한 게 67세였다.
“나는 과학의 대중화를 시작한 1세대다. 1994년 서울대에 와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 선배 교수가 ‘하버드에서 박사 했다고 데려왔더니 지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알아’ 하시더라. 미국에서는 연구비를 받으면 그 돈의 0.1%를 자기 연구 결과를 알리는 데 써야 한다. 일반인을 위해 책을 쓰거나 공개 강연을 하거나 신문 기고를 하는 방식으로. 의회나 청문회 참석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 지도교수님은 1년에 책 2권씩 쓰는 걸 당연히 여겼다.”
-유튜브도 과학 대중화의 일환인가.
“조선일보에 13년 동안 연재한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처럼 새로운 시대의 매체인 유튜브를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애 낳으면 바보다’ 발언이 화제가 되기 전에는 최재천이 유튜브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1년이 넘도록 구독자가 1만 명이 채 안 됐다. 찐팬들 몇천 명이 댓글로 서로 덕담 주고받으니 분위기는 좋은데 확장이 안 되더라.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웃음).”
-저출생 발언 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가.
“순식간에 구독자가 10만명이 됐다. 무서운 속도였다.”

◇기후 우울증 앓는 청년들
-젊은 층이 많이 구독한다던데.
“2030도 많지만 10대부터 70대까지 골고루 구독한다. 놀라운 건, 내 유튜브 채널에서 조회 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가 기후 위기와 환경 그리고 여성이라는 것이다.”
-‘기후 우울증’을 앓는 청년들이 많다고 하더라.
“물론이다. 나도 강연을 가면 ‘뭐 하러 여기 왔습니까? 클럽 가서 놀아야지.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라고 한다. 내일 당장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내게도 손녀가 있는데 거실에서 장난감 가지고 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고 혼잣말할 때가 있다. 팬데믹은 또다시 올 텐데 나야 한두 번 더 마스크 쓰다가 죽으면 끝이지만 이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나. 태어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했던 아이들이다.”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코로나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 70~80%가 백신 접종에 동참해야 집단면역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인류의 70~80%가 자연을 살리는 ‘에코 백신’을 실천해야 생태계가 복원되고 지구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자연의 회복력은 생각보다 강해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복원할 수 있다고 했더라.
“지난 십수 년 동안 미세 먼지 때문에 가을 하늘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 때 푸른 하늘을 봤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인간이 활동을 멈추니 자연이 제 모습을 보여준 거다. 공해 극심한 인도 뉴델리에서 40대 남자가 ‘이 동네에 태어나 살면서 에베레스트산을 처음 봤다’고 말하는 CNN 보도를 봤다. 순간 자연이 회복하는 속도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굉장히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제는 데이터다. 환경학자들이 지구가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는 열심히 기록했는데 자연이 되돌아오는 과정은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 교수들에게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빅데이터화해보라고 했다. 우리는 데이터도 없으면서 ‘자연은 한번 망가지면 끝이야’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한 건 아닐까. 어쩌면 희망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