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그 본보기가 ‘괴테’
해암도
2023. 6. 9. 06:14
‘괴테 마을’ 조성 중인 전영애 교수, 동양 여성 최초 ‘괴테 금메달’ 수상
2023년 6월 1일 전영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경기도 여주에서 조성 중인 '괴테마을' 중 '젊은 괴테의 집'에 대해 소개했다./김지호 기자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독문학자 전영애(72)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일 장화 대신 캐주얼화를 신고 있었다. 장화는 스스로를 ‘노비’라고 칭하는 그가 가장 자주 신는 신발이다. 9년 전 이곳에 일반 시민들이 문학을 체험할 수 있는 ‘여백서원’을 지었고, 관리를 혼자 도맡아 왔다. 이번엔 그 뒤편에 자연과 어우러진 ‘괴테 마을’을 조성 중이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와 관련된 건물을 짓는다는 구상. 우선 ‘젊은 괴테의 집’을 최근 완공한 전 교수는 “괴테를 통해 꿈이란 허황된 게 아니며, 우리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 속 이 문장에서 ‘괴테 마을’이 시작됐다. 전 교수는 동양 여성 최초로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괴테 금메달’(2011)을 받은 괴테 권위자. ‘파우스트’를 비롯해 괴테의 책을 여럿 번역했지만, 특히 이 자서전을 번역한 다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철학자 등으로 다방면에서 성과를 낸 괴테의 삶에 주목하자고 말했다. “괴테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의 샘플이 괴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보여주려는 거죠. 괴테는 읽어도 소화하기가 어렵기에 그 입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전 교수는 “괴테는 지금 시대에 더욱 시사성이 있다”며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역작 ‘파우스트’를 예로 들었다. “악마가 ‘다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욕망’ 아닌가요.” 그러면서 ‘파우스트’ 속 주님이 악마에게 건넨 이 말을 강조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전 교수는 “‘잠깐 방황해도 괜찮다’는 값싼 위로가 아니라, 정교한 위로다. 70살이 되어도, 더 늙어도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약 1만평 규모의 괴테 마을에는 여백이 많다. 마을 초입에는 최근 완공된 ‘젊은 괴테의 집’ 외에 괴테가 살다 숨을 거둔 ‘바이마르 괴테하우스’를 본뜬 집과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조성할 계획이다. 각 장소에서 괴테의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젊은 괴테의 집’에는 ‘극복’을 주제로 한 도서관과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전 교수는 “사람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괴테를 보며 ‘바쁘시군요’라고 물었지만, 괴테는 ‘힘들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괴테는 힘든 순간을 참고 더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괴테가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숲길을 지나면, 풀과 꽃 내음이 가득한 언덕이 나타난다. ‘책 오두막’을 비롯해 자연 속 문학 체험 공간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