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병원에서 항생제를 과잉처방하는 이유
해암도
2023. 3. 28. 06:22
항생제의 탄생, 과잉, 그리고 현재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의대에 다니다가 독일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병을 치료하는 임무를 맡는다. 1차 세계대전이 지속되던 동안 수많은 부상병과 수술 장면을 목격한 도마크는 “이런 상황에서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감염 없이 해내 환자가 상처 감염으로 죽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균의 파멸적인 광기에 맞서겠노라고 맹세한 뒤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발명한다.

이후 1990년대 미국에서는 전국의 보건 관련 비용을 지불하는 정부 산하 최대의 단일 기관인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 는 폐렴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을 바로잡을 생각으로 폐렴 증세가 있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무조건 2시간 안에 항생제를 투여하도록 규정을 정했다. 폐렴 환자를 돕겠다는 의도로 마련된 이 조치는 결정적인 진단이 나오기 전에라도 얼마든지 즉각적으로 항생제 처방을 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자 항생제 처방을 받은 폐렴 환자들 사이에서 클로스트리듐디피실리균에 감염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체의 장에서 상존하는 이 균은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처방함에 따라 인체에 유익한 균이 다 죽고 나면 결장을 자극해 설사를 유발하는 슈퍼박테리아다. 연구자들은 그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부터 폐렴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의사들이 항생제 처방을 하게 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오랜 기간 연구해온 의료사회학자 줄리아 심차크는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와 환자 사이를 바쁘게 오가야 함에 따라 그들에게 요구되는 주의력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고 분석한다. 장시간의 교대 근무로 몸은 피곤하고 밀린 일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 때문에 점점 더 시간에 쫓긴다. 2만 건이 넘는 1차 진료를 연구한 어느 논문에서는 의사나 임상간호사가 정해진 일정을 따라잡기가 점점 더 어려울 정도로 업무가 밀린다거나 피로를 느낄 때 불필요한 항생제를 처방하는 건수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아는 어떤 의사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으면 항생제 처방을 할 때에 비해 시간이 네댓 배는 듭니다. 환자에게 왜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2010년 OECD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항생제 소비량은 31.4 DDD(일일 상용량. 성인 1천명이 하루에 31.4명분의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다)로 벨기에와 함께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2014년 기준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28.4DDD로 전보다는 약간 감소했지만 OECD 평균 20.3DDD에 비해서는 약 1.4배로 여전히 높고,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인 MRSA 즉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내성률은 73%로, 네덜란드 2.4%, 영국 14%, 미국 51%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 성장과 함께 주거 환경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면서 세균성 감염은 급감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감기는 세균성 감염이 아니라 대부분 피로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감기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충분한 휴식과 심리적인 안정을 통해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도록 면역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참고자료 : <포사이트> <감염의 전장에서> <감기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