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부채의 덫 일본 보라...韓, 반도체·한류로 버티지만 위기 올 수도”
해암도
2023. 2. 20. 09:56
[최형석이 만난 사람]
한국 마이너스 성장 빨리 올 수 있다 경고, 조동철 KDI 원장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는 지난해 연간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월간 기준 최악의 적자를 냈다.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고,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노동·자본 등 생산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물가 상승을 일으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은 2000년 초 5%대에서 최근 2%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대로면 한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 특유의 활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국내 최고의 거시경제·정책 전문가인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작년 12월 취임했다. 26개 국책 연구기관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처음으로 선임한 국책연구원장이다. KDI는 경제 분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국책 ‘싱크탱크(연구기관)’다.
조 원장의 전임자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설계한 홍장표 부경대 교수다. 조 원장은 취임사에서 “특정 이념에 경도돼선 안 되고 객관적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론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7일 본지와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갖고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해 한국의 국가 부채 문제가 갑작스럽게 닥쳐올 수 있다”며 “한국이 더 이상 국가 채무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일본처럼 국가 채무 비율이 치솟고, 상시 무역적자국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정치권도 국가부채 축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랏빚·무역적자, 일본 따라가는 한국
- 최근 한국 경제 성장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노령화 때문에 생산보다 소비를 더 많이 하고, 무역·서비스 수지 등을 포함한 경상수지에서 흑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5년쯤 뒤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대 경상흑자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영원히 무역흑자를 낼 것 같았던 일본이 무역적자를 지속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도래할 것이다. 일본은 2012~2022년 11년 사이 무역적자가 8차례나 됐다. 한국은 반도체·한류(韓流) 등 몇 개 수출 산업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모른다. 5년 뒤가 불투명하다.”
- 저출산·고령화, 성장력 저하가 국가 채무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국가 부채 비율 급증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60%대였던 국가 채무 비율이 100%까지 가는 데 10년도 안 걸렸다. 한국이 내부적으로 재정 개혁을 완수하지 못하면 외환위기 같은 외부 충격을 또 맞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부 개혁에 비해) 더 괴롭게 빚을 줄여야 할 처지가 되고 심하면 주권마저 훼손될 수 있다. 국회에서 통과 안 되고 있는 재정준칙을 한시바삐 법제화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91년 GDP의 62%였던 일본의 국가 채무 비율은 불과 8년 만인 1999년 130%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작년에는 260%를 넘어 빚더미에 짓눌린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완수해야
- 위기 돌파를 위한 방책은 무엇인가.
“생산성을 높여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기술·노사관계·경영혁신 등을 뜻하는 총요소생산성은 2010년대에 많이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 2% 이상이었던 증가율이 지금은 1% 아래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세면 2050년 이전에 경제 성장률이 0%대나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성장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교육·노동 두 부분만 개혁해도 한국은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 인구 정책으로 고령화 속도를 늦추고, 정년을 연장해 나이가 들어도 소득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 3대 개혁은 정권마다 추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연금개혁도 최근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정치가 늘 장애물이다. 지난 정부는 사회 개혁에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므로 (이번 정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진행될 것이다. 노동개혁의 경우 현 시점에서 해고 자유 등 고용 유연화까지 단숨에 달성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성과급·직무급 도입 등 임금 유연화는 의지를 갖고 추진되고 있다. 정년 연장을 막는 호봉제를 뜯어고쳐야 한다. 노동 시간 유연화도 상당히 진척됐다. 국회에서 연금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국회가 갈등 해결의 임무를 방기한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건너뛴 연금개혁을 이번에도 못 한다면 자손들에게 큰 부담을 안기게 된다.”
◇퍼주면 다른 곳서 반드시 구멍 난다
- 문재인 정부는 개혁 대신 재정 확대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좌파 정부는 예산 제약에 대한 개념이 없다. 어딘가에 퍼주면 다른 곳에서 반드시 구멍이 나게 돼 있다. 퍼주기 재원은 다른 곳의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걷든지 국채를 발행해서 조성된다. 이는 소비 위축과 금리 상승 부담을 초래한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경기 급락에 대응해 반복적으로 대규모 적자 재정을 집행했지만 침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국가 부채만 GDP의 200% 이상으로 증가했다. 경제학의 제1 원칙은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은 2010년대 30%대에 머무르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 재정 확장 기조로 작년 49.7%까지 높아졌고 올해는 49.8%로 전망된다. 조 원장은 “나랏빚이 계속 쌓여가면 국가 경제 기초 체력이 떨어지고 언젠가는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가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무엇이 문제였나.
“기업이 무한정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노동·자본·기술 등 자원의 제약에서 기업이 자유로울 수 없는데 수요만 늘린다고 성장이 이뤄질 수 없다. ‘마차(총수요)가 말(총공급)을 끌 수 없다’는 비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이다. 코로나가 터진 후 세계적으로 재정을 마구 풀고 금리를 낮춘 총수요 확장 정책의 결과는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