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고령의 환자도 이제는 척추수술 받으면 10년 더 산다”
해암도
2023. 2. 13. 05:04
[명의를 찾아서] -우리들병원 이상호 회장
부산대 의대 국립의료원 신경외과 전문의
연세대의대 석⋅박사 파리제5대학 연수
“3D 정신, 어려운 걸 차별화해서 연마”
“남들 안된다 할 때 도전…척추 수술 지평”
“간호대라도 열어서 사회 기여하고파”

우리들병원 설립자인 이상호 회장(74)은 부산 우리들병원 원장이던 지난 1985년 돌연 프랑스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는 명의’라는 입소문으로 부산 병원에 하루 수백명 환자들이 줄을 서던 때였다. 이 회장은 그 당시 수술을 하면 할수록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은사인 연세대 의대 박수영 교수는 ‘프랑스에서 공부해보라’고 제안했다. 이 원장은 당장 파리 제5대학 데카르트 의대로 연수를 떠났다. 파리에서는 해부학 수업에서 의대생 1명당 시체(검체) 한 구가 돌아갔다. 시체 한 구를 갖고 수십 명이 나눠보는 한국 상황과는 너무 달랐다.
이 원장은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 척추 뼈가 아닌, 염증으로 부은 인대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경을 누르는 인대만 잘라내면 통증을 없앨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회장은 1년 6개월 만에 유학을 마치고 그 길로 현미경으로 인대 등을 제거하는 방법 개발에 들어갔다. 현재 전세계 척추 수술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척추 최소 침습 수술법’의 시작이었다.
이 회장은 소형 카메라가 달린 척추 내시경을 보면서 레이저를 이용해 신경을 누르는 인대와 디스크를 제거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1㎝ 정도로 절개 부위가 작아서 통증도 적고 간편하다. 그러나 이 회장이 이 수술법을 국내 도입한 1990년대만 해도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정형외과 교수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척추 내시경 치료는 고령의 척추 질환 환자들에게 쓰이는 대표적 수술법이 됐다.

우리들병원은 의사들이 부모님의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추천하는 병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서울 청담우리들병원에서 이상호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대한신경외과 서울경인지회장, 대한의학레이저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평생을 척추 수술의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북미척추학회(NASS)의 ‘더 파비즈 캄빈상 골드상’를 수상했다.
이 회장이 진료하는 청담우리들병원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 스마트병원’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선정됐다. 회장의 집무실 책장에는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글귀가 놓여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소절개수술과 최소침습수술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
“상한 척추 관절을 갈아내서 치료하는 것은 기존의 척추수술과 다를 게 없다. 과거에 등뒤로 크게 잘라냈다면, 최소침습수술은 5~6㎝ 정도로 작게 절개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작게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집어 넣은 다음 척추관절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작은 부분만 잘라내지 않는 것이 현미경 최소침습 수술이다.”
-상한 척추 관절을 잘라내지 않고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나.
“척추협착증수술의 경우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서 척추로 접근해 인대를 재건하게 된다. 척추관협착증은 한 군데가 문제가 아니라 다발성 즉 여러 곳의 신경이 눌려 통증이 심한 상태일 때가 많다. 미국 일본의 의사들은 신경을 협착 즉, 누르는 것은 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뼈를 잘라냈는데, 막상 해부를 해 보니 뼈가 아니라 ‘나쁜 인대’ 즉 염증이 생겨 부어오른 인대가 신경을 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증으로 부어오른 인대가 척추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건가.
“그걸 처음 발견한 건 내가 아니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신경을 눌러서 다리에 마비를 일으키는 것이 뼈가 아니라 나쁜 인대이니, 척추 뼈를 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퉁퉁 부어서 신경을 누르는 게 인대라면, 뼈는 그대로 두고 인대만 발라 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후유증은 어떤가. 뼈를 자를 때와는 다른가. 인대를 자르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나.
“뼈를 자르는 것과 인대를 자르는 것의 후유증은 비교가 안 된다. 뼈에는 신경이 있기 때문에, 뼈를 잘라내면 수술 후에도 다리가 저리다던지, 허리가 아프다든지 하는 후유증이 남는다. 현미경으로 인대를 잘라낸 것은 다르다. 뼈를 자르는 수술의 후유증 확률이 25%라면, 현미경은 4% 정도에 불과하다. 척추인대재건술에 삽입하는 인공인대는 시간이 지나면 본인 인대처럼 유연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고, 꾸준히 운동하면 척추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인대재건술로 허리를 고친 환자 1만 명을 분석해서 SCI급 국제학술지 스파인(Spine)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부산 우리들병원에서 ‘척추명의’로 명성이 자자했다.
“1985~1986년 부산 병원 1층부터 5층까지 복도가 대기 환자로 꽉 찼다. 척추 수술을 받겠다고 옥상에 텐트까지 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환자를 보기 어렵지만, 결핵이 척추에 걸리면 신경을 눌러 하반신 마비가 됐다. 이렇게 하반신 마비된 환자를 고쳤다. 등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옆구리와 배꼽으로 갑상선을 수술하듯이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가서 신경을 누르는 염증 부위를 잘라냈다.”

이 회장은 척추뼈 모형을 손에 들어 인대와 신경 척추뼈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척추뼈를 보면, 디스크는 등이 아니라 배 쪽에 있다. 척추뼈가 뒤에 있으니 등으로 수술하면 쉬워 보이지만, 병변은 반대편에 있으니 그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척추뼈를 다 잘라낼 게 아니라면 뱃속 장기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잘라내는 방안을 고안해 낸 것이다.”
-배 속에 장기가 많은데, 배꼽이나 옆구리를 통해서 어떻게 칼을 넣는다는 건가.
“우리 몸 속 장기가 다치지 않게 손으로 밀어내면 된다. 내장이 있으니 수술이 어렵다고 보는데, 막상 사람 몸을 해부해 보니 척추뼈와 내장 사이에 지방을 포함해서 안전한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을 손으로 밀어내면서 들어가는 길을 본 것이다. 물론 척추 안쪽으로 대동맥과 대정맥이 흐른다. 이 혈관을 다치지 않으면서 병변을 없애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사람 몸이 그렇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건가.
“연세대 대학원에서 해부학 수업을 들었는데, 박수영 교수가 의학과 생리학의 본산이 프랑스로 가 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잘되던 병원을 팽개치고 1985년에 프랑스로 갔다. 의대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해부학 교실에 학생 한 명당 시체 한 구를 제공할 정도로 교육 환경이 좋았다. 그런데 그 당시 스웨덴 웁살라 의과대학에서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체를 해부했는데, 부어오른 인대를 잘라냈더니 신경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논문이 나왔다.”
-지금은 인대를 자르는 수술이 대세가 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척추수술을 받은 환자 케이스를 봤는데, 척추 관절 다섯개를 잘라냈더라. 뼈를 잘라내서 신경을 누르는 압력을 줄이는 감압수술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 큰 병원에서는 그렇게 시행되고 있다. 척추뼈 사이로 들어가서 인대만 잘라내도 신경이 퍼져서 걸을 수 있고, 다리 저림없이 허리가 펴지는데 말이다.”
-최소침습수술이 적합한 환자들은 어떤 환자인가.
“고치기 어려웠던 환자, 특히 80~90대 고령의 환자를 고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척추관협착증은 60대 이상 고령에서 생기는데, 이 병을 고친 환자는 10년 이상 생명이 연장된다. 수술을 통해 다시 잘 걸을 수 있게 되면서 90대를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 80세, 여성 85세인데, 이걸 1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다.”
-척추수술을 하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가. 관련해서 연구 결과가 있나.
“10년 생명 연장에 대한 것은 미국에서도 논문이 나왔다. 국내에도 관련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들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 20여명을 연구한 통계 조사로는 20~30년 수명이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능하다면 조만간 논문으로 만들어서 공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