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동물에게도 지능이 있을까?

해암도 2022. 9. 25. 05:19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리뷰

모든 철학은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현대의 동물연구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현대의 진화생물학이라든지 대부분의 동물 연구는 찰스 다윈에 대한 긴 주석이다. 

책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내용을 거칠게 도식화하고 요약하자면, “인간과 고등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차이는 비록 크기는 하지만, 분명히 정도의 문제이지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찰스 다윈의 말에 대한 긴 주석이다. 그러니까 동물과 인간의 지능은 그 속성이나 종류가 다른 게 아니라, 단순히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는 다윈의 테제(thesis), 즉 “연속성 가설”을 여러 가지 실험이나 사례를 들어가면서 귀납적으로 증명하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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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나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을 비롯하여, 코끼리, 까마귀, 돌고래나 문어와 같은 해양생물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지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동물에게도 협력이 일어나고, 사회생활이 있고, 권력 다툼이 있고,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식)이 존재하며, 도구 사용 능력이 있으며,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관념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고, 문화가 있으며,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타 동물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앎을 측정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이 있으며, 목적의식에 따라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의지력이 있고 자제력이 있다.

 
 

책은 500쪽에 걸쳐 이러한 것들을 증명하는 작업이다. 이를 토대로, 동물에게는 확실히 인간과 비슷한 종류의 마음과 지적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단지 스펙트럼상에서 존재하는 정도의 문제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동물의 지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그 지능을 발견하지 못한 원인은 실험의 방법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동물의 지능을 평가하려면 그것에 적합한 방식이 필요한데, 인간적 관점에서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까 동물이 실험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이로써 지능 측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인원과 아이를 비교하는 실험을 할 때 아이에게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며, 엄마 무릎에 앉혀놓고, 아이가 친밀함을 느낄만한 상황을 계속해서 조성해주고(인간 종이 인간종을 테스트하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유인원에게는 낯선 인간 종이 테스트하는 환경을 강요하면서도 그들 유인원과의 유대를 차단한 상황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당연히 환경에 친숙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아이가 과제를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늑대와 개의 지능을 비교하면서 측정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당연히 인간에게 순응적이고 인간에게 비위를 맞추려는 개의 지능이 더 높게 측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 빙산의 일각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면 개나 늑대의 지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늑대가 더 야생적이고, 독립적이고, 인간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관점에서는, 즉 우리의 눈에는 더 지능이 낮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빙산의 일부만을 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동물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대신에 동물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성경들은 우리의 자연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동물을 몰아넣는다.” -p.431

 

동물과 인간은 여전히 진화하는 중

 

확실히 저자는 동물과 인간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도입하고 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되는 특수하고 독립된 종으로 볼 것이 아니며, 동물/인간이라는 이분법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과와 배 중에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듯이, 동물 종들도 지능을 일렬로 줄 세우고 거기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사과와 배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적어도 그것이 과학이 말하는, 바라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동물이 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하지만 동물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이는 동물과 인간의 진화가 각 종이 놓인 생태의 차이와 필요의 차이에 따라 진화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이 인지하는 각 생물의 주관적인 지각 세계는 아예 다르다.

동굴 벽에 거꾸로 매달려 초음파로 소통하는 박쥐가 보는 세계와 인간이 보는 세계가 같을까. 우리 인간은 박쥐의 공간인지능력이 훨씬 뛰어나고 박쥐가 반향정위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박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박쥐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없는 인간의 능력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다르게 진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은 그 기원을 따지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결국에 뿌리를 따지고 따지다 보면 아메바로 수렴하든 어떤 개체로든 수렴할 테니까) 진화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많은 정신 과정을 공유한다. 이것을 상동이라고 한다. 또한 각 개체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속성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진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상사 내지는 수렴적 진화라고 한다. 결국에 상동과 수렴적 진화는 공유된 정신을 낳게 되었다.

결국 정리하자면, 저자가 증명하려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지능이 연속적인 스펙트럼상에 있다는 연속성 가설이다. 그리고 그 연속적인 스펙트럼상에서 정도의 차이가 나는 까닭은 동물에게는 특정 능력을 더 발달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동물 연구 관점에서 인간의 진화심리학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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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책의 내용이고, 내가 궁금한 부분은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라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다른 생물들을 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동물과 인간의 마음과 지능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동물의 관점에서,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 심리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동물 연구의 관점에서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진화심리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영화 마지막에서 2편을 예고하는 쿠키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저자의 다음 작업은 동물 연구의 관점에서 성차에서 비롯되는 남녀 간의 갈등을 조망한다고 한다.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내용 중에 암컷 동물들은 대체로 어미를 롤 모델로 삼아 많은 것을 학습하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은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성차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대체로 동물 세계에서는 수컷이 더 공격적이고 경쟁 지향적이고 친화성이 낮다고 한다. 이러한 본성은 수컷 동물이 위계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설명한다고 한다. 반면에 암컷은 덜 공격적이고 관계 지향적이고 친화성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인간에게도 접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당연히 여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이 책의 핵심적인 전제인 연속성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고, 동물의 본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에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상동인 인지 과정들은 공통의 신경 메커니즘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동물과 인간이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비슷한 심리작용을 거친다고 한다면 무리가 되는 것일까?

근데 이런 문제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까닭은 동물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을 어디까지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가 매우 불분명하기 때문이고, 합의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를까’가 다시 문제가 되는데, 여기에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합의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성차’의 문제로 간다면, 젠더 이슈를 민감하게 건드리면서 많은 논쟁과 분란을 낳을 듯싶다.

 

동물 간의 일반법칙을 끌어내는 것보다 사례연구가 더 중요해질 것이며, 인간과 동물 모두를 지배하는 본성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종간의 세밀한 차이도 중요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은 어디까지가 같고, 어디까지가 다른가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가 연루된 동물연구는 어려운 학문 분야다. 저자 또한 “우리가 더 이상 본능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순수하게 유전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항상 환경이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페미니즘과 진화심리학은 각 진영에 대해 대립각을 세운다. 참고로, 동물 연구가 아니라 진화심리학은 아직 과학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한쪽에서는 인간의 독특성과 다름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있고, 한쪽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 둘은 항상 싸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책의 결론에서 좀만 더 깊이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민감한 이슈를 많이 건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급진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http://topclass.chosun.com/      김재열      입력 2022.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