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120년에 한번, 꽃·열매 보는 조릿대…들쥐떼에겐 ‘세기의 밥상’
해암도
2022. 9. 15. 07:09
[애니멀피플]
일본·한국 2010년대 개화 맞아…일, 들쥐 연구
‘조릿대 개화때 들쥐 번성’ 전설 같은 얘기 입증
밀도 최대 10배 이상 증가, 개화 이듬해도 유지

조릿대는 120년을 주기로 꽃을 피우고 일제히 죽는다. 왜 그런지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들쥐의 잔치가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2015년 설악산에서 일제히 개화한 조릿대. 조홍섭 기자
대나무와 키 작은 대나무 종류인 조릿대는 수십 년∼백수십 년 주기로 일제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죽는다. 대나무가 왜 이렇게 독특한 생활사를 보이는지는 수수께끼이지만, 조릿대가 대량의 씨앗을 맺자 이를 먹이로 삼아 들쥐가 대발생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지무라 히사시 일본 나고야대 교수 등 이 대학 연구진은 2017년 절정에 이른 일본 조릿대의 일제개화가 산림성 들쥐 개체군의 대발생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생태적 과정’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조릿대가 일제히 개화하면 들쥐가 늘어 나무와 농작물을 해치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왔지만 실제로 조사하기는 매우 힘들다. 마쓰시타 레이코 제공.
대나무의 개화는 워낙 장기간을 주기로 일어나 생태적 영향을 조사하기가 어렵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들어 전국 각지에서 조릿대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120년 만의 일이었다.
운 좋게도 연구자들은 아이치 현의 대학 연구림에서 2011년부터 들쥐의 개체군 동태를 조사해 왔는데, 마침 이곳의 조릿대가 일제 개화해 들쥐 개체군이 개화 전과 후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조사할 수 있었다. 가지무라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대나무가 개화하면 들쥐가 대번성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알려져 왔을 뿐이었는데 이번에 이를 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릿대가 개화하고 말라죽으면서 영양가 풍부한 씨앗을 맺자 인근의 들쥐들이 몰려들어 번식해 대발생하는 과정. 스즈키 하나미 외 (2022) ‘생태학적 과정’ 제공.
조사지에는 3종의 들쥐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애초 개체수가 극히 적었던 한 종을 제외하고 나머지 2종의 등줄쥐 속 들쥐는 조릿대가 개화해 영양분이 풍부한 씨앗을 맺자 급증했다.
큰일본들쥐의 밀도는 2017년 전년도보다 10배 이상 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주변 지역의 들쥐들이 조릿대가 일제히 결실한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번식해 대발생을 불렀다”고 밝혔다.
보통 도토리 등 해거리를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들쥐는 이듬해 개체수가 다시 원래로 돌아간다. 그러나 조릿대 개화지의 들쥐는 2년이 지나도 늘어난 상태를 유지했다.
주 연구자인 이 대학 박사과정생 스즈키 하나미는 “증가한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수의 씨앗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들쥐 개체군의 구성도 젊은 암컷이 많아 번식 여건이 양호했음을 가리켰다”고 말했다.

조릿대 개화로 개체군 밀도가 10배 이상 늘어난 큰일본들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나무가 수명이 길면서도 왜 평생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지는 오랜 수수께끼이다. 유력한 가설은 들쥐 등 포식자가 다 먹지 못할 만큼 다량의 씨앗을 맺어 일부가 살아남게 한다는 ‘포식자 포만 가설’이다.
평소엔 땅속줄기를 통한 복제(클론)를 통해 동일한 유전자의 개체를 늘리다가 일정한 주기로 개화해 유성생식을 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연구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조릿대가 일제히 개화했다.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조릿대의 전국적인 동시 개화 현상이 2013년 시작돼 2015년에 절정을 이뤘다며 개화를 촉발한 요인은 2014년과 2015년 연이은 봄 가뭄으로 누적된 스트레스라는 가설을 제시했다(▶2015년, 전국의 조릿대가 일제히 꽃을 피운 이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