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처럼… 귀 불편하면 누구나 보청기 사용하는 시대 열겠다”
高價 일변도 보청기 시장에 균열 일으켜
‘예뻐서 귓속에 숨길 필요 없다’는 발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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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불편한 사람은 시력이 나쁜 사람만큼 흔합니다. 그런데 왜 보청기는 안경처럼 쉽게 구할 수 없을까요? 이런 의문이 저를 창업으로 이끌었습니다.”
보청기 시장은 대표적인 ‘하이엔드(Hi-end·가격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고가품)’ 일변도 시장이다. 한 짝을 맞추는데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천만원대를 넘어선다. 복잡한 청력 검사를 통해 만들어진 개인 맞춤형 제품인데다, 귓속에 숨길 수 있도록 ‘소형화’가 필요한 탓에 일부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통념이 굳어진 시장에 수십만원대의 무선 이어폰형 보청기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도전은 승산이 있을까. 27일 국내 처음으로 보급형 보청기 ‘올리브 스마트이어 플러스’를 출시한 올리브 유니온의 송명근(35) 대표는 “제품을 먼저 출시했던 미국과 일본에서 반응이 좋았다”며 “국내 시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했다. 최근 이비인후과의사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난청 인구는 1300만명 수준. 송 대표는 “그 중 보청기 보급률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며 “보청기 가격의 벽을 허물어 이 커다란 잠재 시장을 뚫어보겠다”고 했다.
◇“보청기, 왜 꼭 숨겨야할까요?”
송 대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13년 보청기 시장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고모부가 400만원짜리 보청기를 구매하고도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AS(애프터서비스)도 시원찮고 인터넷에도 뚜렷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불편함이 너무 많은 시장이었어요. 이보다 좋은 창업 기회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창업을 염두에 두고 시장 조사에 나선 송 대표는 예상보다 왜곡이 심한 보청기 시장 환경에 놀랐다. 글로벌 보청기 대기업 6곳이 시장을 좌우하고, 이들의 가격 담합으로 100만원(한 쪽·정가 기준) 이하의 보급용 제품은 아예 출시조차 되지 않았다.
송 대표는 보청기 시장이 경직된 가장 큰 이유로 ‘보청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꼽았다. 보청기를 귀에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들려면, 소리를 수집하고 증폭하는 전용칩도 그만큼 작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 반도체와 관련된 특허권과 생산 능력을 6대 보청기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 자체를 막고 있다. 오랜 기간 뚜렷한 제품 혁신이 없는데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결정적 이유다.
송 대표는 “여기에 귀 속에 들어가는 제품은 아무리 좋은 마이크를 써도 구조적으로 소리를 수집하는데 한계가 생긴다”면서 “보청기를 숨기려다 보니 비싸고 성능은 별로인 제품을 쓸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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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6년 올리브 유니온을 설립했을 때부터 ‘패션 소품처럼 예뻐서 드러낼 수 있는 보청기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일단 제품이 귀 밖으로 나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며 “칩의 사이즈가 커지며 소프트웨어 코딩만으로 전용칩 못지 않은 성능을 구현 할 수 있고, 가격도 그만큼 저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리브 유니온이 지난 2018년 내놓은 첫 제품 ‘올리브 스마트 이어’는 시중에 판매되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가격은 기존 보청기 시장 최저가 제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제품은 지난 한 해 미국과 일본에서 10만대 이상 판매됐다.
송 대표는 “성능을 크게 개선한 신제품 출시에 힘입어 올해엔 보청기 제품 판매량이 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 경제전문 포브스는 지난해 급속히 성장하는 보청기 시장을 다루는 기사에서 올리브 유니온을 기존 보청기 시장 독과점을 깰 수 있는 ‘라이징 스타’로 지목했다.
◇이어폰 같은 보청기, 스마트폰만 있으면 바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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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유니온이 27일 국내에서 출시한 ‘올리브 스마트이어 플러스’는 지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6월 사이 미국 클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진행한 사전 모금 이벤트에서 누적 28억원의 펀딩을 달성했다.
전작인 ‘스마트 이어’보다 가격이 비싸진 대신, 개인 맞춤으로 조절 할 수 있는 주파수가 16개 채널에서 64개로 4배 늘었다. 보청기는 난청이 있는 이용자가 잘 듣지 못하는 특정 주파수의 음량을 증폭시켜 소리를 골고루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주파수를 세세하게 쪼개는 만큼 개인 맞춤화 설정이 더 정확해진다는 뜻이다.
송 대표는 “일반 보청기는 전문 매장의 방음부스 안에서 청력 검사를 해야 하지만, 우리 제품은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청력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고 했다.
특정 주파수를 들려주고, 소리가 들릴 때 스마트폰 화면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증폭이 필요한 주파수를 체크한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보청기도 안경처럼 증세가 미미할 때 사용하기 시작해야 청력 악화를 방지할 수 있다”며 “그 동안 난청을 참고 살던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로라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