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

‘안 빨간’ 비빔면 세상이 왔다

해암도 2022. 4. 6. 08:55

라면처럼 쉽게 해먹는 ‘들기름 비빔면’ 3면 3색
오뚜기 - ‘유명 맛집’ 손잡고 맛 재현
풀무원 - 함흥냉면처럼 쫄깃한 면
팔도 - 얇은 유탕면에 달콤한 소스

 
오뚜기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에 동봉된 김가루를 뿌리고 있는 모습. 김가루와 들깻가루를 듬뿍 뿌려 내는 인기 식당 레시피를 재현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간장과 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 ‘안 매운’ 비빔국수 경쟁이 뜨겁다. 갈수록 ‘더 맵게’를 외치는 한국 음식 시장에서는 신선한 도전이다.

 

매콤달콤한 비빔면이 주력 상품인 팔도는 지난달 ‘꼬들김’과 ‘꼬간초’ 를 내놓으며 안 매운 비빔국수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풀무원과 오뚜기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나란히 들기름 비빔면을 내놓으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팔도 비빔면과 진비빔면(오뚜기·2020), 배홍동(농심·2021)이 경쟁을 펼치고 있는 매운 비빔면에 이어 안 매운 비빔면 시장에서도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소스도 국수도 다른 3면(麵) 3색(色)의 비빔국수를 먹어봤다.

 

오뚜기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먹는 맛집 경기 용인 ‘고기리 막국수’와 제휴했다. 2012년 들기름 막국수를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원조 식당이다. 처음에는 메뉴판에 없었던 이 집 들기름 막국수는 최근 수년 동안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오뚜기 관계자는 “코로나 시국에 줄 안 서고 집 안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개발했다”고 했다.

 

‘안 매운’ 비빔면 3면3색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사 먹는 것처럼 면을 모두 덮을 정도의 고운 김가루와 참깨가 동봉돼 있다. 양이 넉넉한 들기름은 다른 제품과 비교했을 때 먹을 때 고소한 향이 도드라졌다. 메밀국수는 건면이다. 툭툭 끊기는 메밀면 특징을 비교적 잘 살렸다. 짭짤한 양조간장 소스는 들척지근한 맛이 없어 단정하다.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밀키트 시장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높은 재현도를 보여준다”며 “직접 가서 먹을 때의 가격(9000원)과 수고를 감안하면 훌륭한 대안”이라고 했다.

 

소면에 들기름과 간장만 넣으면 들기름 국수가 뚝딱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김가루와 참깨가루로 고소함을 더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포인트를 정확히 잡고 있는 제품이다.

 

풀무원은 지난해 오뚜기보다 1주일 앞서 ‘들기름 막국수’를 내놓았다. 기성 풀무원 제품 각 요소를 가져와서 들기름에 비벼 먹는 재구성 상품으로 느껴졌다. 면은 기존 함흥냉면 제품에서, 올리는 김가루는 우동용 제품 것을 가져온 것 같다. 단맛이 특징인 ‘비법 간장 소스’는 메밀 소바를 찍어 먹는 쓰유(다시간장)와 비슷한 맛이다. 쫄깃한 면발과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오뚜기 들기름 막국수(앞)와 팔도의 들기름 비빔 라면 ‘꼬들김’.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팔도는 각각 참기름·간장·식초(꼬간초), 들기름·김가루(꼬들김)를 특징으로 하는 제품을 내놨다. 비빔라면 명가라는 정체성은 면에서 드러난다. 기름에 튀긴 유탕면을 썼다. 특유의 흰 빛깔 라면이다. 팔도는 기존 면에 전분을 추가했다고 했다. 꼬간초는 샐러드에 뿌려 먹는 오리엔탈 드레싱에 국수를 비벼 먹는 느낌이었다.

 

꼬들김은 들기름과 김가루 양이 부족하고 단맛이 강해 본격적인 들기름 국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존 매운 비빔면은 새빨간 소스가 구미를 당기게 했는데, 간장 소스에 면을 비벼 먹다 보니 시각적 매력도 다소 떨어졌다. 대신 저렴한 가격이 미덕이다.

 

안 매운 비빔국수는 사실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음식이다. 동국세시기와 시의전서에 기록된 비빔국수 ‘골동면(骨董麵)’은 간장·참기름·깨소금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이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비빔국수로 전해진다. 고추장이나 김치를 넣어 비벼 먹는 매콤달콤한 비빔국수는 밀가루가 흔해진 6·25전쟁 이후 널리 퍼졌다. 안 매운 비빔면은 ‘오래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