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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었지만 늙진 않았다" 50년된 보드 타는 92세 서퍼

해암도 2021. 12. 29. 05:41

92세 현역 서퍼, 낸시 메언. [the Guardian 캡처]

 

세 밤 더 자고 나면 누구나 한 살 더 먹는다. 뉴질랜드 서부 스카버로우 해변가에 사는 92세 할머니 낸시 메언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낸시 할머니는 새해가 두렵지 않다. 외려 기대가 크다. 새해엔 그의 소원인 서핑 점프 동작에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다.

 

가디언이 27일(현지시간) 조명한 그는 일곱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이자 전직 교사이지만, 요즘 가장 애착을 갖는 타이틀은 ‘서퍼’다. 그는 따스한 남반구의 이 해변가에 매일 아침 서핑 보드를 들고 나타나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서핑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서핑은 바다 위에 서서 때로는 물살을 가르고 때로는 파도와 한몸이 돼야하는 스포츠다. 코어 근육과 체력, 균형감각이 필수다. 서핑의 기본 동작 중 하나가 보드 위에서 일어나 두 발로 중심을 잡고 파도를 타는 동작인데, 메언은 이 동작은 일찌감치 체념했다.

 

고령 때문에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이 해변가에서 그에게 서핑을 알려준 사이먼 브라운 코치는 가디언에 “낸시는 훌륭한 서퍼”라며 “일어서지만 않을뿐, 낸시가 파도를 타는 꾸준함은 놀랍다”고 말했다.

 

파도를 향하는 메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의 보드는 1970년대에 장만한 것. [the Guardian 캡처]

 

비결은 뭘까. 메언의 답은 간단했다.

 “즐기는 거야. 인생 전부가 다 그렇더라고. 물론 어렵지만, 즐기는 방법을 찾으면 돼.”   

화려한 장비도 없다. 메언의 서핑 보드를 두고 가디언은 “바다 위 부표 같이 낡았다”고 표현했다. 오랜 세월 바다에 떠있으면서 부식된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다. 그는 이 보드를 1970년대, 고무 장화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한 공장에서 저렴하게 ‘득템’했다고 한다. 처음엔 파란색 무늬도 있었지만 이젠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래시가드 역시 평범하지만 오래된 게 편안하다고 했다.

메언은 가디언에 “이 나이가 되어서 좋은 점이 있다”고 속삭였다.

 

 “젊은 서퍼들이 나를 존경한다고 해주거든. 내가 서핑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서핑한다고 하니 그런 거 아니겠어.”     

젊은 시절 메언은 모험가였다. 교편을 잠시 내려놓는 방학이면 파키스탄이나 시리아 같은 먼 곳까지 여행을 다니곤 했다. 지금은 집 앞 해변가에서 서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정원을 가꾸는데만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의 코치인 브라운은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낸시는 나이는 들었지만 늙지는 않았다.” 몸은 나이가 들었어도 마음만큼은 아직 젊다는 의미로 읽혔다. 곧 93세가 되지만 그에겐 아직 꿈이 있다.

 “파도 위에서 점프를 해봤으면 좋겠어. 계속 노력한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되겠지?” 

철봉은 식은 죽 먹기…74세 현역 마라토너

90대 할머니인 메언의 스토리가 멀게만 느껴진다면, 74세 마라토너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역시 가디언이 지난 가을 전한 라진더 싱 할아버지다. 인도계 영국인으로 터번을 머리에 두른채 백발 머리를 휘날리며 매일 달리기를 하는 그는 “인생은 60부터”라고 호탕하게 외친다.

74세 현역 마라토너, 라진다 싱 할아버지. [the Guardian 캡처]

 

독실한 힌두교도인 점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다. 그는 가디언에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항상 최선을 다해 뛰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격려해주시곤 했다”며 “지금도 류마티즘 때문에 고생하긴 하지만 아버지 말씀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삼촌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수리공 등으로 일했지만, 독실한 힌두교도인 아버지는 “런던행 비행기에서 옆에 (힌두교에서 금하는) 소고기를 먹는 사람이 옆에 앉는 게 싫다”는 이유로 인도에 남았다. 그러다 어느날 그는 “아버지가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보를 받는다. 의문사였다. 지금도 사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싱은 더 열심히 달린다. 뛰는 동안만큼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싱 할아버지의 트레이닝 루틴 중 하나. [the Guardian 캡처]

 

나이를 생각하면 무리이지만 지난 가을엔 첫 마라톤에도 도전했다. 그는 “내겐 스포츠가 가족 같은 존재”라며 “매일 달리면서 나는 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도전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고 가디언은 평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12.29